내 눈엔 니가 제일 나은 인간 같다.
현재 방영 중인 jtbc 드라마 <괴물>에는 좀 특이한 모자 관계가 나온다.
경찰 서무관 박정제는 살인 누명을 쓴 친구 동식을 빼내기 위해 20년 전 알리바이 증언을 한 적이 있다. 그리고 다시 20년 뒤 이번에는 동네 친한 동생인 오지훈이 억울한 누명을 쓰자 그의 알리바이를 입증하기 위해 가장 강력한 용의자가 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알리바이를 밝힌다.
그렇게 살인 누명의 위험을 자처한 박정제.
그의 엄마 도해원은 도의원이다. 여러 도시 총괄의 집합체인 ‘도’의 의원. 엄청난 권력을 가진 여자.
사실, 이런 여자 캐릭터가 없진 않았다.
강력한 출세욕의 화신인 여자,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정치적인 야망이 있고, 또 그런 자리에 있는 여자. 그 와중에 모성애는 또 지독한 여자. 바로 떠오르는 여자 캐릭터, 다들 있을 것이다. 그리고 여기 나오는 도해원이라는 인물도 그런 여자들의 연장 선상에 있다. 그 설정이 나쁘다는 뜻은 아니다. 좋게 말하면 고전적이고, 솔직히 말하면 좀 진부한 설정이다.
여하튼, 그녀는 자신의 자식을 지키기 위해 아들인 정제가 민정이(피해자)를 데려다주는 것이 찍힌 블랙박스를 교묘하게 편집해서 용의자 선상에서 제외시키는데 그 당사자인 아들, 박정제가 스스로 자신이 그 자리에 있었음을 밝히고 유치장에 갇힌다. 어머니이자 도의원인 도해원이 달려와 외친다.
네가 왜 거기 있냐고. 담당 형사가 형평성 때문이라고, 이전에 다른 순경도 들어가 있었다고 공손하게 그녀를 달래자, 그녀는 당당하게 외친다.
-이봐요. 걔랑 우리 아들이랑 같아요? 형평성이고 나발이고, 사람이 다르잖아. 어떻게 사람이 다 같은데!
형사가 기분 나빠서 한마디 하려고 하자, 그녀는 갑자기 세상 평범한 어머니들이 아무 죄의식 없이, 앞뒤 인과 관계를 확인하지도 않고 흔히 자동적으로 하는 그 말을, 동정심을 유발하려는 의도를 가득 담아 말한다.
-우리 아들은요, 절대로 그런 짓할 애가 아니에요. 사람을 해치다니. 마음이 너무 약해서 벌레 한 마리 못 죽이는 앤 데.
정제가 말한다.
-죽이는데. 사슴도 죽이고.
엄마가 왜 그러느냐고 오열하자 그가 묵묵히 대꾸한다.
-이제 할 만큼 하셨으니까 들어가세요. 잠 좀 자게.
무슨 생각으로 그러냐는 엄마의 다그침에 그가 말한다.
-죄 지었으니 벌 받는 거죠.
jtbc <괴물> 7회 중에서
실랑이 끝에 니가 무슨 죄를 지었냐는 담당 형사와 엄마의 말에 ‘민정(죽은 피해자)이를 마지막으로 만난 죄’라고 말한다.
그게 어떻게 죄냐고, 피해자 마지막으로 만났다고 다 범인이냐고 눈물로 애원하는 엄마에게 그럼 지훈이는 왜 여기 갇혀서 떨었어야 했냐고 따진다. 가능성으로 보면, 자신이 여기 있는 게 맞다면서.
박정제는 이 드라마에서 메인 히어로가 아니지만, 나는 이 인물의 훌륭함을 꼭 짚고 넘어가고 싶다.
흔히 ‘느그 아버지 머하시노?’라는 물음은 ‘대단한 아버지’를 두면 그의 영향력에 따라 자녀가 받을 벌이 좀 더 가벼워지기도, 좀 더 무거워질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예로 들 수 있는 사례가 너무 흔하지만 나는 최근 ktx 안에서 방역수칙을 어기고 이것저것 게걸스레 먹다가 승무원에게 저지당하자 ‘우리 아빠가 누군지 알아?’ 한 여자가 생각난다. 엄청나게 대단한 아버지를 두신 분이면 전용 리무진 또는 비행기를 타시지. 그녀는 아마도 무례를 저지른 후 아버지의 힘으로, 곤란한 상황을 수차례 해결한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평범한 시민은 저런 행동을 하지 않는다. 선을 넘을 정도로 무례하게 굴지도 않는다. 대부분의 시민은 기본예절이라는 게 어떤 것인지 알기 때문이기도 하고, 대부분의 시민의 부모님은 극한의 무례한 상황에서 자녀를 무한하게 쉴드 해줄 수 있는 엄청난 공권력을 소유한 부모님들이 아니기 때문이기도 하다.
평범한 우리들은 우리 앞길, 사고치면 우리가 알아서 헤쳐나가야 하기 때문에 문제 될 일을 되도록이면 만들지 않는다.
문제가 생기면 그 문제해결을 내가 해야 하기 때문에.
그런 노력과 비용을 들이지 않기 위해서. 그거 아니라도 신경 쓸 일이 너무 많아서.
그래서 공직에 있는 사람들의 자녀가 ‘별로인 사람’으로 성장하는 경우가 보통 시민의 자녀들이 ‘별로인 사람’으로 성장할 확률보다 좀 더 높아진다.
좀 사고를 쳐도, ‘아버지가 해결해주겠지, 어머니가 해결해주겠지, 우리 집안이 어떤 집안인데’ 하는 마인드맵을 그리면서 성장하느라. 내가 일으킨 문제를 내가 아닌 누군가의 노력과 비용으로 해결이 되니까.
그런 아들, 딸들이 흔한 세상인데 자신이 진짜로 죄를 지었는지 안 지었는지도 모르면서, 고위공직자인 엄마의 쉴드를 받지 않겠다고, 지은 죄 있으면 벌 받겠다고 엄마 좀 가라고 소리치는 아들이라니, 많이 신선했다.
부모의 보호막을 덮어쓰고 살지 않으려는 인간. 보호막을 발로 걷어차버리는 인간.
부모가 쓰레기 위에 갖은 개수작으로 깔아 둔 예쁜 꽃길 말고, 폼나지 않더라도, 진흙탕이 됐든 뭐가 됐든 온갖 오물을 묻히며 살더라도 오롯이 자신의 힘으로 살겠다고 하는 인간, 좀 멋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