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도 모르게 내 자궁 값에 계산기를 두드리고 말았다
삶의 기본값은 사람마다 다르다.
10대와 20대 중반까지 초중고, 대학교를 나와서 취업을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알콩달콩 혹은 아등바등 살아가는 게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의 루트인 것처럼 보인다.
나는 저 삶의 루트보다는 작가가 되는 삶을, 글 써서 먹고 사는 삶을 원했다. 20대 중반부터 그 일을 갖기 위한 구체적인 노력의 시간도 꽤 길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록 글을 써서 돈을 버는, 그런 작가가 되지는 못 했지만.
그래도 작가가 되기 위해 몸부림친 시간이 아깝지는 않다. 덕분에 생각보다 의외의 만남에서 격려도 많이 받았다.
29살에 작가가 되겠다고 서울에 올라가겠다고 했을 때, 염려와 응원의 비율은 9:1이었지만 역시 올라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많은 사람들이 이제 돈 모아서 얼른 결혼도 하고 더 늦게 전에 아이도 낳아야 하지 않느냐고 했지만 귀 기울이지 않았다. 그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고 서울에 올라온 덕분에 아래에 쓴 글에 나온 것과 같은, 제대로 배운 남자도 만나볼 수 있었다.
https://brunch.co.kr/@ddocbok2/351
안타깝게도 저 글 속의 친구와는 잘 되지 않았다. 저 술자리 이후 친밀감이 높아져서 대화의 분위기도 엄청 좋아졌고 우리는 선 넘지 않는 선에서 야한 얘기도 주고받았는데 그러다 저 친구의 말실수가 내 심기를 건드리고 말았다. 그 친구가 곧바로 사과를 했으나 아무래도 기분이 풀리지 않아서 사귀고 싶지가 않았다. 시간을 갖자고 했으나 아무래도 호감이 살아날 것 같지 않아서, 결국 만나지 말자는 쪽으로 정리가 되었다.
저 일이 있고 몇 주 지나지 않아 오랜 친구를 만나기 위해 그 친구가 살고 있던 지방에 갔다가 친구 이모가 하는 가게에서 술을 먹게 되었다.
그곳에서 내 친구와도 안면이 있고, 이모의 단골이라는 어떤 남자와 인사를 하게 되었다.
나는 친절한 타입은 아니지만 그래도 술자리에서만큼은 리액션이 좋은 편이다. 게다가 내 친구가 리액션이 별로 없다 보니 분위기가 쳐지게 하기 싫어서 리액션을 더 열심히 했는데 그게 자기한테 친절하게 하는 것처럼 보였나 보다. 그 남자가 혹시 남자 친구가 없으면 자신과 만나볼 생각이 없냐고 물었다. 없긴 하지만 나보다 14살이나 많은 남자와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나이도 나이지만, 외모도 내 기준의 마지노선에 못 미쳤다.
어른에 대한, 친구 지인에 대한, 친구 이모 단골에 대한 예의로, 하는 말에 열심히 맞장구를 쳐드린 것뿐이었다. 어차피 서울 올라가면 다시는 만날 일이 없지만 단념하시라는 의미로 나는 위의 글에서 했던 말을 이 남자에게도 그대로 읊었다. 어린 친구한테 할 때는 미안했었는데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남자니까 확실히 미안하지도 않았다. 어딜 감히, 라는 생각도 들었다.
-아, 제가 작가가 꿈이라서 글 써서 벌어먹고 살기 전까지는 결혼 생각이 없어서요. 아이 낳을 생각도 별로 없고 그래서 모아둔 돈도 별로 없어요.
그러자 그 남자가 아주 아쉬운 듯이 말했다.
-진짜요? 하.. 저는 결혼하면 무조건 아들은 하나 낳아야 하는데, 진짜 아이 낳을 생각이 없어요?
뭘 이렇게 건너뛰실까. 사실은 아이 낳을 생각만 없는 게 아니라 그 남자와 결혼 생각도, 14살이나 많은 남자를 만날 생각도 없었다.
지금 생각해보니 저런 대화를 처음 보는 자리에서 했다. 이런 말을 한 것도 어이가 없다.
지금 생각을 또 해보니, 저렇게 말하면 안 되었다. 그냥, 나이가 너무 많으셔서 별로라고 말을 했어야 했는데 사실은 내 상황이 안 좋아서 그쪽을 만나기 싫은 게 아니라 그쪽 나이가 마음에 안 들고, 그쪽 외모도 마음에 안 들고, 거기다 결혼이라는 것이 두 사람의 결합이 아니고 무조건 아들 하나 낳아야 한다는, 그에게는 중요한 삶의 기본값이 내 마음에 안 들어서 만나기 싫다고 말했어야 하는데.
그땐 그럴 용기가 별로 없었다. 무례할 것 같기도 했고, 이번 술자리만 끝나면 되는데 싶어서 경제적인 이유를 들어 저 사람 입을 다물게 하는 게 제일 합리적일 것 같았다.
-저는 아이 낳을 주제가 안 돼요. 저는 저 하나 먹여 살리기도 바빠요. 글 쓰느라 돈을 전-혀 못 모았거든요. 아이 낳으면 돈이 얼마나 많이 드는데요.
-돈 없는 건 뭐.. 제가 많아요, 돈이.
친구 이모가 이 상황이 재미있어 보였는지, 주방에서 장난치듯 진짜 돈 많아! 하며 맞장구를 쳐주셨다.
나는 이때부터 아무런 감흥이 들지 않았다. 리액션은 끝났고 갑자기 내 반응이 미적지근해지자 그 남자는 자기 말을 못 믿어서 그러는 줄 알았는지 내 친구에게 말 좀 해달라고 했다. 내 친구는 내가 이 남자의 이런 수작이 불쾌해서 기분 잡친 것을 눈치채긴 했지만, 그 남자의 재촉에 마지못해 집에 돈 많으신 건 맞아, 건물 몇 개 있으셔,라고 중얼거렸다. 더 큰 한 방이 필요했다.
-아, 맞다. 제가 돈만 못 모은 게 아니라, 빚도 있어요. 한 삼천 만원쯤. 몇 백 더 있을 수도 있고.
남자들이 간혹 마음에 드는 여자에게 부를 과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걸 들은 적이 있다. 나는 반대로 잘 보이기 싫은 남자가 나한테 호감을 보이면 빚이 있다고 말을 하곤 했다. 빚이 없어도.
대화가 이어지긴 했는데 쓰는 것도 지겹다. 돈도 많고 나이도 많은 그 아저씨는 삼천 만원 정도 갚아주는 건 일도 아니라고, 결혼만 하면 삼천 정도 되는 차도 두어 대 뽑아 줄 수 있다고 했다. 대신 자기 집안은 아들은 꼭 낳아야 한다면서.
이런 식으로 계산기 두드리는 건 아니지, 하면서도 '와, 그럼 그동안 매달 생리할 때나 쓰던 자궁 덕분에 아들 낳으면 구천만 원쯤 누릴 수 있게 되는 건가' 싶긴 했다. 내 자궁으로 그럴 수 있단 말이지, 라는 생각을 1초쯤 했으나 그러기 싫었다. 쌩으로 구천만 원을 준대도 못 할 것 같았다. 육아가 장난도 아니고, 물론 결혼할 생각도 없지만 만약 한다 치면 아무리 어리다고, 맨몸으로 들어온 며느리를 그 아저씨의 엄마가 퍽이나 좋아라 하겠다.
게다가 그 아저씨는 클 때 제대로 못 배우셨지만, 클 때 제대로 배운 남자들이 동시대 어딘가에 살고 있다.
한 여자의 몸은 그 여자 자신의 것이고, 그 여자의 인생은 그 자신의 거라고. 그러니 그걸 임신과 출산에 쓰든, 꿈에 쓰든 존중해줘야 한다고 배운 남자들. 그렇게 배운 남자를 이미 한 명 놓치긴 했지만 클 때 그렇게 배운, 그게 삶의 기본이라고 배운 남자들이 존재한다는 걸 알게 된 이상, 돈이고 나발이고 아들 타령이나 하는 나이 많은 남자를 만나고 싶지는 않았다. 삶의 기본값이 아예 다른 사람을 만나고 싶지 않았다.
친구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친구가 물었다.
-너 진짜 그렇게 빚 많아?
-아니. 그냥 그 아저씨 만나기 싫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