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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시은 Jul 11. 2021

아, 그럼 전업작가세요?

글쓰기 모임에서 시나리오를 썼다고 하면 생기는 일

우리 동네에는 자매가 운영하는 동네책방이 있다.


책방 사장님이 유독 가게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서 책 혹은 소설, 시, 작사 등 글 혹은 창작에 관련된 모임을 많이 기획해놓았는데 올해 초부터 내가 꾸준히 참여하는 글쓰기 모임이 있었다. 이 모임의 내용은 간단하다.


정해진 시간에 대화하지 않고 자신의 글쓰기.


매달의 코로나 정책에 따라 조금 일찍 시작하고 일찍 끝내기도 했지만 주요 골자는 화요일 오후 7:30에 모여 2시간 동안 모인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글을 쓰는 것이다. 쓴 글을 공개하거나 돌려 읽지 않는다. 모임 종료 15분 전쯤 이런 내용을 쓰려고 했고 썼다, 혹은 쓰려고 했는데 별로 쓰지 못했다 정도를 공유한다. 만족할 만큼 썼다, 거의 못 쓰고 생각만 했다, 집에 가서 더 써야 할 것 같다. 뭐 이런 내용.




 모임에서는 단편소설을 쓰는 젊은 대학원생도 있었고, 자기가 살아온 인생에 대한 에세이를 쓰는 프로그래머도 있었고, 직업과는 관계없는 그저 개인적인 관심사에 해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그 인터뷰를 블로그에 올리는 직장인도 있었다.  같은 경우는, 브런치에  글의 틀을 잡거나 그동안 써놓은 시나리오의  출간을 목표로  책의 서문/ 작가의 말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시나리오집  권을 출간했다. 저자명에는 분명히  이름 석자가 쓰여있다.


지난달 모임의 마지막 날, 서로 어떤 글을 쓰는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쓰는 글의 종류, 그리고 그걸로 책을 출간했다는 말을 들은 한 분이 이렇게 물었다.


-아, 그럼 전업작가세


까지 말했는데 그분의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내가 말했다.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


다급한 대답에 다들 민망해하며 웃었다.


그냥 책 한 권 냈으니 작가라고 해도 누가 문제 삼지 않을 수도 있는데 왜 그렇게 빠르게,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질문을 끊어가면서까지 부정했는지 나조차 사실은 그 이유를 정확하게 알 수 없으면서도 ‘아니, 그게 사실은요.’ 라고 말하며 설명을 했다. 사실 잘 모르면서.


사실 오래 작가 지망생이었다, 한 7년 반 넘게. 그렇게 오랜 시간 들였던 내 노력이 세상 바깥에 나와보지도 못하고 노트북 안에만 갇혀있게 하기에는 지난 시간의 노력이 억울해서, 예전에 써놓은 것을 출간할 수 있게 다듬어서 책으로 내는 것뿐, 공모전에 당선되거나 내 시나리오로 계약을 한 적이 없으니 정식, 혹은 전업 작가가 아니고 그러니 당연히 내가 쓴 시나리오는 내 생계수단이 아니니 전업작가라고 할 수는 없는 게 맞다고. 평범한 회사원이라고.


(이 부분은 말하지 않았지만) 물론 솔직한 마음으로는 어느 날 영화배우나 영화업계의 누군가의 눈에 띄어 내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거나 해서 계약하자고 연락이 와주면 좋겠지만, 이건 굳이 비유하자면 로또에 당첨되길 바라면서 꾸준히 확률을 분석하고 로또를 사고 그 로또가 되길 비는 것과 비슷한 맥락의 이다.


물론 글쓰기에 대해서는 로또 번호 분석해서 로또 사는 것보다 더 체계적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전문적으로 오랫동안 공부를 해야 한다.


스토리텔링, 캐릭터 설계, 기승전결 이런 것들. 로또 번호 분석만큼이나 상당히 지겹고, 시간 오래 걸리고, 하지만 로또 번호 분석보다는 훨씬 재밌었다가 힘들었다가… 뭐 그렇다. 쓰다 보니 정말 비슷하다. 글을 쓰는 자체로 분명 성취감이 있기는 하지만 그 이후에 확실한 보상이 있다고는 할 수 없다. 있을 수도 있지만 없을 확률이 훨씬 더 크다.


그래서 노력의 방식, 체계적인 공부가 필요한 측면, 이런 거 다 제치고 훗날의 보상 측면에서만 보자면 로또도 글을 쓰는 것과 비슷하다. 보상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노력하고 꿈꾸는 동안 행복하다는 것, 무엇보다 아주 간혹 보상이 있을 수도 있지만 없을 확률이 더 크다는 측면에서 말이다.




집에 가는 길에 곰곰이 생각했다. 질문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왜 그렇게 다급하게, 그것도 3번이나 반복해가며 부정했을까. 내가 작가라고 한다고 해서 누구한테 손해 나는 것도 아니고, 누가 뭐래도 비록 어디 공모전에 당선되지 못했어도, 나는 내 작품 자랑스러운데 말이다. 실제로 전업작가가 아닌 부분이 가장 크겠지만 글로 돈을 번 적이 없다는 사실이, 아마 다른 사람들에게 전업작가로 잠시라도 보이길 거부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무엇을 했다면 그걸로 돈을 버는 것, 그게 가장 중요했다.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는 동안 필요한 책을 사고 카페에 가서 글을 쓸 수 있게 해 주고 내 생활을 유지시켜준 건 적으나마 월급 꼬박꼬박 나오는 직장 생활이었다.


그래서 조금 더 특별해 보일지도 모를 작가라고 정의되는 것보다 특별할 것 없어도 내 삶을 굴러가게 만들어준 직장인의 직함에 무게를 더 실어주는 게 바람직한 것 같아서, 작가의 직함에 힘을 실어주는 게 싫었던 거다. 한 번도 시나리오 덕분에 돈을 번 적은 없어서, 아주 짧은 기간 동안이라도 글을 쓴 걸로 생계를 유지할 정도의 돈을 번 적이 없어서, 내 기준 작가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기 싫었던 것이다. 사실 잘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사람들에게 설명했지만, 결국 제대로 설명하긴 했던 거다.


회사원, 그게 내가 힘을 실어주고 싶은 내 모습이었다.




사실은 ‘세상이 정한 작가의 기준’은 우리의 생각보다 러프하고 관대하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작가의 기준은 ‘예술 전반에 걸쳐서 작품을 쓴 주체’라는 게 전부다. 그걸로 돈을 벌어야 한다,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조항은 없다. 작가로 돈을 벌기는 어려우니 작가의 위치만이라도 그렇게 엄격하게 제한을 두지 않은 것일까.


그러니 세상의 기준으로 치면 작가이긴 하다. 그런데도 책 한 권 냈으니 작가,라고 말하는 부분에 있어서 앞으로도 감정적 장벽을 뛰어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세상이 뭐라 하건 말건 역시 내 기준은 글로 돈을 벌어야 그때부터 작가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나에 대해, 왜 세상의 기준보다 더 엄격하게 구는지는 모르겠다. 그게 큰 문제도 아니고, 그거에 관심 갖는 사람도 없지만, 그래서 여전히 나는 그냥 직장인의 직함이 더 좋다. 작가 직함이 싫어서가 아니라, 직장인의 생활이 고마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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