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 모임에서 시나리오를 썼다고 하면 생기는 일
우리 동네에는 자매가 운영하는 동네책방이 있다.
책방 사장님이 유독 가게에 대한 애정이 남달라서 책 혹은 소설, 시, 작사 등 글 혹은 창작에 관련된 모임을 많이 기획해놓았는데 올해 초부터 내가 꾸준히 참여하는 글쓰기 모임이 있었다. 이 모임의 내용은 간단하다.
정해진 시간에 대화하지 않고 자신의 글쓰기.
매달의 코로나 정책에 따라 조금 일찍 시작하고 일찍 끝내기도 했지만 주요 골자는 화요일 오후 7:30에 모여 2시간 동안 모인 사람들이 각자 자신의 글을 쓰는 것이다. 쓴 글을 공개하거나 돌려 읽지 않는다. 모임 종료 15분 전쯤 이런 내용을 쓰려고 했고 썼다, 혹은 쓰려고 했는데 별로 쓰지 못했다 정도를 공유한다. 만족할 만큼 썼다, 거의 못 쓰고 생각만 했다, 집에 가서 더 써야 할 것 같다. 뭐 이런 내용.
그 모임에서는 단편소설을 쓰는 젊은 대학원생도 있었고, 자기가 살아온 인생에 대한 에세이를 쓰는 프로그래머도 있었고, 직업과는 관계없는 그저 개인적인 관심사에 대해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그 인터뷰를 블로그에 올리는 직장인도 있었다. 나 같은 경우는, 브런치에 쓸 글의 틀을 잡거나 그동안 써놓은 시나리오의 책 출간을 목표로 그 책의 서문/ 작가의 말을 쓰는 경우가 많았다. 그렇게 시나리오집 한 권을 출간했다. 저자명에는 분명히 내 이름 석자가 쓰여있다.
지난달 모임의 마지막 날, 서로 어떤 글을 쓰는지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가 쓰는 글의 종류, 그리고 그걸로 책을 출간했다는 말을 들은 한 분이 이렇게 물었다.
-아, 그럼 전업작가세
까지 말했는데 그분의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내가 말했다.
-아니요, 아니요, 아니요!!
다급한 대답에 다들 민망해하며 웃었다.
그냥 책 한 권 냈으니 작가라고 해도 누가 문제 삼지 않을 수도 있는데 왜 그렇게 빠르게, 질문이 끝나기도 전에, 질문을 끊어가면서까지 부정했는지 나조차 사실은 그 이유를 정확하게 알 수 없으면서도 ‘아니, 그게 사실은요.’ 라고 말하며 설명을 했다. 사실 잘 모르면서.
사실 오래 작가 지망생이었다, 한 7년 반 넘게. 그렇게 오랜 시간 들였던 내 노력이 세상 바깥에 나와보지도 못하고 노트북 안에만 갇혀있게 하기에는 지난 시간의 노력이 억울해서, 예전에 써놓은 것을 출간할 수 있게 다듬어서 책으로 내는 것뿐, 공모전에 당선되거나 내 시나리오로 계약을 한 적이 없으니 정식, 혹은 전업 작가가 아니고 그러니 당연히 내가 쓴 시나리오는 내 생계수단이 아니니 전업작가라고 할 수는 없는 게 맞다고. 평범한 회사원이라고.
(이 부분은 말하지 않았지만) 물론 솔직한 마음으로는 어느 날 영화배우나 영화업계의 누군가의 눈에 띄어 내 시나리오가 마음에 들거나 해서 계약하자고 연락이 와주면 좋겠지만, 이건 굳이 비유하자면 로또에 당첨되길 바라면서 꾸준히 확률을 분석하고 로또를 사고 그 로또가 되길 비는 것과 비슷한 맥락의 일이다.
물론 글쓰기에 대해서는 로또 번호 분석해서 로또 사는 것보다 더 체계적이고 다양한 방식으로, 전문적으로 오랫동안 공부를 해야 한다.
스토리텔링, 캐릭터 설계, 기승전결 이런 것들. 로또 번호 분석만큼이나 상당히 지겹고, 시간 오래 걸리고, 하지만 로또 번호 분석보다는 훨씬 재밌었다가 힘들었다가… 뭐 그렇다. 쓰다 보니 정말 비슷하다. 글을 쓰는 자체로 분명 성취감이 있기는 하지만 그 이후에 확실한 보상이 있다고는 할 수 없다. 있을 수도 있지만 없을 확률이 훨씬 더 크다.
그래서 노력의 방식, 체계적인 공부가 필요한 측면, 이런 거 다 제치고 훗날의 보상 측면에서만 보자면 로또도 글을 쓰는 것과 비슷하다. 보상이 있을지 없을지 모르지만 노력하고 꿈꾸는 동안 행복하다는 것, 무엇보다 아주 간혹 보상이 있을 수도 있지만 없을 확률이 더 크다는 측면에서 말이다.
집에 가는 길에 곰곰이 생각했다. 질문이 채 끝나지도 않았는데 왜 그렇게 다급하게, 그것도 3번이나 반복해가며 부정했을까. 내가 작가라고 한다고 해서 누구한테 손해 나는 것도 아니고, 누가 뭐래도 비록 어디 공모전에 당선되지 못했어도, 나는 내 작품 자랑스러운데 말이다. 실제로 전업작가가 아닌 부분이 가장 크겠지만 글로 돈을 번 적이 없다는 사실이, 아마 다른 사람들에게 전업작가로 잠시라도 보이길 거부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무엇을 했다면 그걸로 돈을 버는 것, 그게 가장 중요했다.
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는 동안 필요한 책을 사고 카페에 가서 글을 쓸 수 있게 해 주고 내 생활을 유지시켜준 건 적으나마 월급 꼬박꼬박 나오는 직장 생활이었다.
그래서 조금 더 특별해 보일지도 모를 작가라고 정의되는 것보다 특별할 것 없어도 내 삶을 굴러가게 만들어준 직장인의 직함에 무게를 더 실어주는 게 바람직한 것 같아서, 작가의 직함에 힘을 실어주는 게 싫었던 거다. 한 번도 시나리오 덕분에 돈을 번 적은 없어서, 아주 짧은 기간 동안이라도 글을 쓴 걸로 생계를 유지할 정도의 돈을 번 적이 없어서, 내 기준 작가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하기 싫었던 것이다. 사실 잘 모른다고 생각하면서 사람들에게 설명했지만, 결국 제대로 설명하긴 했던 거다.
회사원, 그게 내가 힘을 실어주고 싶은 내 모습이었다.
사실은 ‘세상이 정한 작가의 기준’은 우리의 생각보다 러프하고 관대하다.
인터넷에 검색하면 작가의 기준은 ‘예술 전반에 걸쳐서 작품을 쓴 주체’라는 게 전부다. 그걸로 돈을 벌어야 한다, 생계를 유지해야 한다는 조항은 없다. 작가로 돈을 벌기는 어려우니 작가의 위치만이라도 그렇게 엄격하게 제한을 두지 않은 것일까.
그러니 세상의 기준으로 치면 작가이긴 하다. 그런데도 책 한 권 냈으니 작가,라고 말하는 부분에 있어서 앞으로도 감정적 장벽을 뛰어넘기는 쉽지 않을 것 같다.
세상이 뭐라 하건 말건 역시 내 기준은 글로 돈을 벌어야 그때부터 작가라고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나에 대해, 왜 세상의 기준보다 더 엄격하게 구는지는 모르겠다. 그게 큰 문제도 아니고, 그거에 관심 갖는 사람도 없지만, 그래서 여전히 나는 그냥 직장인의 직함이 더 좋다. 작가 직함이 싫어서가 아니라, 직장인의 생활이 고마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