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을 밟아버릴 정도의 재능이란 사실상 없죠

슬프지만 그게 현실이에요.

by 시은

가끔 소설가들이 한예종에 특강을 나가기도 한단다. 그 특강에 나간 경험이 있는 소설가가 다른 특강에 와서 자신의 경험을 말해준 적이 있다.


-여기에 현재 한예종에 다니시거나, 다니셨거나 했던 분들은 없죠?


객석에서 아무 답이 없자 그가 말했다.


-제가 봤을 때는, 이제는 재능’만’ 있다고 성공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간 것 같습니다. 오지 않을 것 같아요. 예전에는 그게 가능했던 때도 있었는데 이제는 아닌 것 같아요.


얼마 전에 한예종 특강을 간 적이 있는데 거기서 졸업 작품을 틀어주고 코멘터리를 해주는 창작 수업이 있었습니다. 비슷한 줄거리의 두 작품이 있었는데, 편의상 A작품, B작품이라고 할게요.


A작품은 학생이 아르바이트해서 겨우겨우 500만 원 모아서 찍은 작품이었고요, B작품은, 그 작품 연출한 학생 아버지가 성형외과 의사래요. 그래서 3000만 원 주면서 찍고 싶은 대로 찍으라고 했대요. 가난해도 꿈을 잃지 않고 혹독하게 아르바이트해서 치열하게 찍었을 A작품이 훨씬 더 훌륭했다고 말해주고 싶지만 모든 면에서 B작품이 훨씬 더 좋았어요. 그 자리에서 차마 솔직하게 말해줄 수는 없었지만….

A작품은.. 괜찮은 배우 섭외, 괜찮은 공간 섭외 어려웠겠죠. 배우 연기들이 매끄럽지 않더라고요. 연기 공부한 친구들을 섭외했는지 그냥 친구들인지 출연료 지급이 어려웠을 테니 출연료를 받지 않을 사람들에게 부탁했겠죠. 게다가 아르바이트도 했다고 했으니 시간에 쫓겨가며 한 창작이 쉽지 않았을 거고요.

하지만 B작품은 잘 모르는 사람이 봐도 전문적인 배우 연기에, 공간이며, 조명도 그렇고 그 짧은 영화에 음악도 꽤 신경 쓴 티가 나더라고요. 별 거 아닌 거 같죠? 결국 디테일이 생명인 산업에서 별 거 아닌 게 승부를 가릅니다. 제가 한 말은 아니지만, 디테일이 퀄리티다, 이런 말 있잖아요. 결국 그 퀄리티를 보장해주는 건 결국 여유에서 나오는 거구나, 이런 생각이 좀 들었어요. 속된 말로, 돈 들어가니까 단편영화라고 해도 화면 때깔부터 달라요. 그 후엔? 연기의 퀄리티가 또 다르고요.


여기에 오신 분들 중에는 아마 작가가 되고 싶어서 이 특강에 오신 분들도 있으실 것으로 압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해도 소설 쓰실 분들은 쓰시겠지만 그래도 돈이 너무 없고 경제적으로 힘드시면, 작가가 되려고 안 하셨으면 좋겠어요. 작가라는 직업 자체가, 생계를 유지할 정도의 수입을 버는 건 아니거든요.


돈이 없어도 어느 정도 재능 있는 창작자가, 시스템적으로 경제적인 도움을 받고 기술적으로 거친 시기를 거쳐 세련되게 성장하면 좋겠지만 그럴 일은 잘 없어요. 그래서 비슷한 재능의 두 창작자가 있다고 할 때, 자본을 무시할 수 있는 정도의 재능은 사실상 없는 것 같아요. 물론 예외가 있을 순 있겠지만 확률적으로는 거의 없어 보여요. 그래서 결국 환경 좋은 사람이 자신이 원하는 세계에 들어갈 확률이 높을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슬프지만 그게 현실이에요.

keyword
작가의 이전글경제학적인 관점에서, 작가란 누구인가/무엇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