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산삼액기스라고 부른다.
얼마 전 종료한 ‘2021 퍼블리셔스 테이블’에서 옆 테이블, 혹은 얼굴을 트기 시작한 독립책방 사장님들과 인사를 하면서 여러 간식을 주고 받았다.
행사장 내에서의 취식은 물 외에는 불가해서 받은 간식들을 먹지 못하고 다 들고 왔는데 짐정리하다가 이름도 거창한 ‘산삼배양근 진액’이라는 걸 발견했다.
홍삼도 아니고 인삼도 아니고 무려 산삼.
산삼이라.. 도대체 산삼성분이 얼마나 들어갔을까 하며 뒷면을 확인해보니 산삼배양근추출액이 고형분으로 0.1%이상, 정제수와 산삼을 배양한 뿌리가 10%라고 나와있다.
그러니까 대체로 무엇으로 이루어진 거냐면 정제수, 당귀, 갈근, 작약… 감초가 83.4% 이다. 결론적으로 산삼 성분은, 고형분 0.1%, 정제수랑 뿌리에서 짠 즙 10%정도인 것이다.
약초가 들어간 양의 지분으로 보자면 ‘산삼액기스’가 아니라 ‘당귀갈근작약블라블라액기스’가 바른 말일 테지만 산삼은 이 건강상품의 정체성으로서 당당하게 대표를 차지하고 있다. 분량과 상관없이 다른 것들을 다 제압할 만큼, 가장 중요한 성분이니까.
글을 일주일에 2-3일 정도, 그것도 3-4시간 남짓 겨우 쓰다 보면 작가 타이틀을 갖고 있는 게 괜히 죄책감이 들 때가 있다. 남한테 무슨 피해를 준 것도 아니고 작가라는 직업이 엄청난 것도 아니고 내가 이걸로 돈을 많이 번 것은 더더욱 아닌데, 그냥 그럴 때가 있다.
하루 8시간, 일주일 중 5일, 그러므로 40시간을 일하니까 직장인 타이틀은 당연한데 일주일에 2-3일, 3시간 조금 넘게 글을 쓰면서 작가, 라고 생각해도 되나 싶은 것이다. 누가 나보고 ‘진짜 작가냐’고 묻는 것도 아닌데 그냥 혼자 ‘내가 작가라고 생각해도 되나’ 싶은 것이다. 그냥. 괜히.
그런데 산삼액기스를 보니 그래도 되는 것 같다.
작가답게 책상에 쳐앉아서 다른 어떤 것도 하지 않고 글을 씀, 이라는 상황이 비록 내 인생의 시간에서 10% 지분밖에 없을지도 모르지만 나라는 인간을 가장 나답게 느끼게 해주는 부분이고, 사실 밥벌이는 아니지만 내가 인생을 제대로 살고 있다는 느낌을 주는 중요한 부분이다. 그리고 정말 중요하다면 지분이 10%든 5%든, 그리고 당장 돈이 되든 안 되든 좋은 포지션을 마련해주는 게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답게 사는 시간이 일주일에 3시간 밖에 안 되도 나는 ‘산삼액기스의 산삼 역할처럼, 직장인 세계에서 작가답게’ 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