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공모전에서 떨어지면
나는 정말 사랑한다면, 모든 고난을 극복할 수 있고 그래서 사랑한다면 어떤 반대에도 견딜 수 있다고 생각하는 부류는 아니다.
그래서 예전에 만나던 남자 친구들한테 종종 내가 지금 준비하는 시나리오 공모전에서 떨어지면 잠수 타도 원망하지 않겠다고 말한 적이 있다. 내 목표는 공모전 당선이었고, 그게 아니라면 사실 크게 답이 없는 게 내 상황이기도 했다.
정말 사랑해도 힘든 건 힘든 거고, 진짜 둘이 만나서 답이 안 나온다 싶으면 힘들어도 헤어져야 하는 게 맞다고 지금도 생각한다.
특히 꿈이 있는 여자와 꿈이 있는 남자가 만나면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이 빈번해진다. 꿈을 이루는 덴 노력과 시간이 많이 드는데, 노력과 시간을 들이다 보면 노력의 퀄리티를 높이다가 돈도 꽤 들어간다. 그러고도 생각보다 결과가 잘 안 나올 때가 많다. 그러다 보니 각자가 느끼는 안 풀리는 상황에 대한 서운함과 답답함이 항상 주변을 맴도는데, 그 마음이 좀 가라앉으면 안 좋은 상황도 이젠 내 차례! 하듯 짠, 하고 나타난다.
그리고 서운함, 답답함, 안 좋은 상황을 헤쳐나가며 상대방에 대한 배려를 해야 하는 연애라는 것을 해나가기란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도저히 안 될 것 같았던 순간이 있었다. 만나면 서로 힘든 얘기만 하는 순간이 길었고, 누가 누구의 힘듦을 더 받아줄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헤어지는 게 낫다는 걸 그 역시 알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헤어지자고 말하는 순간, 그가 의외의 말을 했다.
-너, 이렇게 나랑 헤어지고 나서 내가 진짜 잘 되면 너 얼마나 후회하려고 지금 이렇게 헤어지자고 그래?
글이든 음악이든 사진이든 뭐가 됐든, 창작이라는 분야는 모 아니면 도, 라는 게 좀 심한 세계이고 사람 일은 정말 모르는 거니까 나랑 헤어지고 잘 풀릴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상상도 못 할 만큼 진짜 잘 풀릴 수도 있겠지. 하지만 지금이 너무 힘든데 어떻게 하란 말인가.
-오빠, 나랑 헤어지고 잘 되면 가슴 아프긴 하지만, 나랑 헤어져서 잘 풀린 걸 수도 있어. 그때 가서 다시 만나자고 안 할게. 내 그릇이 여기까지니까.
라고 대답했다. 사실 하고 싶은 말은 마음속에 더 있었다. 오빠와 헤어지고 내가 잘 풀릴 수도 있어. 이때까지 지지리 안 풀리던 내가 잘 풀리면 그건 그동안 오빠가 내 앞길을 막고 있어서였던 것일 수도 있어.라고 하고 싶었지만 헤어지는 마당에 그렇게까지 말하지는 않았다.
그 말을 한 사람도 딱히 내가 아직 풍문으로 들리는 바가 없고, 나는 내가 더 잘 알다시피 그냥 그렇다.
그냥 헤어질 때 '만약 ~하면 어떡하려고 그래?'라는 말은 좀 별로라는 생각이 들었다.
헤어지면 헤어지는 거지, 헤어진 연인이 잘 되었기 때문에 잘 풀리고 나서 만나려고 한다면, 어쩌면 그 상대방 앞길을 다시 막아서는 걸 수도 있고, 당연히 그건 사랑이 아닐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