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일기
유치원에서 《바람이 불었어》라는 동화책을 읽어 준 적이 있다.
그날은 우리 반 아이들 사이에 아들도 함께 앉아 있었다.
이야기는 아주 단순하다.
바람이 불자 사람들의 손에 들려 있던 손수건, 신문, 모자, 가발, 빨래가 모두 하늘로 날아간다.
그리고 바람이 멈추자, 모든 것이 그냥 땅으로 떨어진다.
독후활동으로 과학 실험을 해 볼 생각으로 산 책이었지만, 만 세 살 아이들에게는 아직 이르겠다 싶어 그날은 그저 책만 읽어 주고 덮었다.
아이들은 재미있게 들었고, 아들도 재미있게 듣는 듯했지만 더 이상의 말은 없었다.
나 역시 그저 한 권의 동화를 읽어 준 것으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한참이 지난 어느 날이었다.
가방 속에서 손수건이 두 개나 나와 하나를 방바닥에 그냥 두었다.
빗자루를 들고 방을 쓸려고 하는데, 아들이 그 손수건을 냅다 천장으로 던지며 말했다.
“하늘로 올라갔대. 손수건이.”
그리고 몇 번이고 다시 던지며 말했다.
“바람이 불었대. 그래서 손수건이 올라갔대.”
나는 순간 멈춰 섰다.
한 번 읽어 준 그 책을 기억하고 있었구나.
이번에는 방바닥에 있던 과자 통을 번쩍 들어 올리더니, 또다시 던졌다.
“모두 올라갔대.”
과자 통이 툭 떨어지자,
“그냥 떨어졌대.”
그 말 속에는 분명 ‘바람이 멈추었을 때’가 담겨 있었다.
그날 우리 집 거실에는 작은 바람이 불었다.
손수건이 날고, 과자 통이 날고, 방바닥에 있는 것들이 하나씩 하늘로 올라갔다가 떨어졌다.
그러다 과자 통 뚜껑이 사라졌다. 옷장 위에 올라가 버린 것이다.
떨어지지 않았다.
아들의 얼굴에 당황한 기색이 스쳤다.
바람이 멈추면 다 떨어져야 하는데...
잠시 후, 이번에는 식탁 위의 숟가락 두 개를 가져와 던질 준비를 했다.
이것도 안 떨어지면 어쩌지?
나는 얼른 옷장 위에 얹힌 뚜껑을 떨어뜨리며 말했다.
“빈아, 다 떨어졌네.”
그제야 아들은 숟가락을 제자리에 갖다 놓았다.
그 날, 나는 깨달았다.
“이 활동, 지금 아이들에게 맞을까?”
“이건 아직 어려운 개념 아닐까?” 하고 망설이는 사이,
아이들은 이미 자기 방식으로 이해하고,
몸으로 실험하고,
놀이 속에서 개념을 완성하고 있다는 것을.
놀이가 곧 배움이라는 말은
교과서 속 문장이 아니라
거실 바닥에서 증명되고 있었다.
혹시 우리는
아이들이 ‘준비되지 않았다’고 너무 쉽게 단정하고 있지는 않을까.
혹시 우리는
배움을 설명으로만 확인하려 하고 있지는 않을까.
아이들은 듣고 끝내지 않는다.
아이들은 던지고, 떨어뜨리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하며 배운다.
나는 뒤늦게 생각했다.
이런 활동을 유치원에서도 해 볼걸.
아이들은 이미 준비되어 있다.
우리가 그 바람을 잠시만 지켜봐 준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