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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똑선생 Nov 22. 2020

모든 교육의 시작은 '듣기'입니다.

중요한 것에 앞서 기본을 잊지 말자.

미술 시간이었다. 동기유발 후 준비물을 나눠주고 활동을 설명했다.


“각자 자신의 경험을 떠올려보고 그중에 제일 기억에 남는 것을 골라 그리면 됩니다. 각자 속도가 다를 수 있으니 다 끝낸 사람은 책 읽어도 돼요. 자 이제 시작할까요?”


활동 설명을 해준 뒤 각자 표현활동을 시작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누군가 말한다.


“선생님, 이거 다하면 뭐해요?”

“다했으면 책 읽으면 돼요.”


조금 뒤 또 다른 누군가가 말한다.


“선생님 다했는데 이제 뭐해요?”


몇 명이 같은 질문을 반복한다. 같은 질문에 같은 답을 한다.



초등학교에서 아주 흔한 풍경이다. 아이들은 자신의 질문이 아닌 경우 주의 깊게 듣지 않는다. 그리고 사전에 활동이 끝나고 시간이 남으면 책을 읽어도 된다고 했음에도 기억하지 못한다. 

아이들이 머리가 나빠서가 아니다. 초등학생들의 주의 집중력이 짧은 이유도 있을 것이고 발달 단계상 자기중심적인 성향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일반적인 이유 말고 특히나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집중해서 듣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 바로 스마트폰이나 인터넷의 자극적인 정보에 지나치게 노출된 아이들인데, 그런 아이들의 경우 초등학생들의 발달단계상의 특징만으로 이해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흘려듣는다. 

갈수록 이런 아이들이 많아지는 탓에 나는 교육의 방향을 조금씩 달리하고 있다. 아무리 좋은 이야기라도 듣지 않는 상황에서는 효과가 없다. 그렇기에 모든 교육의 최우선에 ‘듣기’ 교육을 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우리 반 아이들을 처음 만나는 3월부터 듣기 교육을 지속적으로 한다. 



내가 하는 듣기 교육은 간단하다. 

첫 번째, 말하는 사람을 쳐다본다. 
두 번째, 고개를 끄덕인다.
세 번째, 대답을 한다.


상대방의 눈을 마주칠 때 그 사람의 소리를 온몸으로 들을 수 있다. 들을 때 말하는 사람을 쳐다보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인데 수업 중에 아이들은 교사나 발표자를 잘 쳐다보지 않는다. 다른 곳을 쳐다보거나 손장난을 하거나 낙서를 하는 아이들이 그런 행동과 동시에 교사나 발표자의 말에 집중하기는 어렵다. 쳐다보지 않는 아이들에게 질문을 하거나 무슨 이야기가 오가고 있는지 아냐고 물으면 열에 아홉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한다.

그래서 먼저 ‘보기’ 지도를 한다. 누군가 말하면 우리 반은 자동적으로 그 사람 쪽으로 눈이 향한다. 어쩌면 보는 것 자체가 말하는 사람에게 듣는 사람으로서의 예의다. 입장을 바꿔서 내가 발표할 때 다른 친구가 나를 바라보고 내 이야기를 귀담아듣는 것은 참 기분 좋은 일이기에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바른 듣기 태도를 가져야 한다.


말하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됐다면, 그다음은 리액션이다. 누군가의 이야기가 공감이 되었다면, 혹은 이해가 됐다면 고개를 끄덕이거나 대답을 한다. 일상의 대화에서도 누군가의 말에 “아~”, “정말?”, “맞아!”, “그래서 어떻게 됐어?”와 같은 리액션은 대화의 윤활유가 되어준다. 거꾸로 이런 리액션을 함으로써 상대방의 이야기에 더 집중하게 되기도 한다. 


대화의 기본임에도 이 세 가지를 습관화하려면 한 달은 족히 걸린다. 첫 한 달은 학습 내용보다도 태도를 중요시하고 지도한다. 듣는 태도가 좋은 상태에서 수업 내용의 공부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태도가 좋으면 40분 분량을 20분 이내에도 할 수 있다. 40분 분량의 수업이 1시간을 해도 안 끝나는 이유는 아이들의 태도가 좋지 않기 때문이다. 듣는 태도부터 바로잡아야 하는 이유다.

더불어 아이들이 공부가 재미없어지는 것도 수업을 듣지 않기 때문이다. 수업 시간에 딴생각을 하다가 수업을 들으려고 정신을 차리면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니 재미없어지고, 안 듣다 보니 몰라서 못 듣기 되는 악순환이 벌어진다. 아이들이 일단 수업에 참여하고 활동에 적극적으로 임하다 보면 재미는 절로 생긴다. 방관자일 때와는 달리 참여자로서의 재미가 있기 때문이다. 참여하다 보면 재미있어서 더 적극적으로 변하고 수업 내용을 더 많이 이해하게 된다. 이는 성적 상승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듣기 지도를 최우선으로 한 결과는 어떨까? 한 학급의 수업 태도를 객관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바로미터가 바로 전담 선생님의 반응이다. 처음에는 여느 아이들처럼 우왕좌왕 제각각이었던 아이들의 변화를 전담 선생님들이 감지하기 시작한다.


“선생님 반 태도가 너무 좋아요.”

“2반 수행평가 결과가 좋더라고요.”

“애들이 열심히 해서 너무 재미있었어요.”

“준비한 게 빨리 끝나서 게임을 한 번 더했어요.” 


특별히 공부법을 지도하지도 않았고, 수업 시간에 집중하고 적극적으로 참여하면 사탕을 주겠다고 보상을 걸지도 않았다. 다만 듣기 교육을 우선시했을 뿐이다. 나는 아이들을 수년간 지도하면서 확신한다. 듣기만 잘되어도 다른 교육의 속도가 빨라진다는 것을.


가정에서도 마찬가지다. 영어를 가르치고 학원을 여러 군데 보내며 시간을 채우는 것보다 우선해야 하는 것이 ‘듣기 교육’이다. 집에서 부모님 말을 귀담아듣지 않고 학교에서 교사이 말을 흘려듣는데 수업 시간에 집중하고 중요한 내용을 파악할 리 없다. 중요한 것들을 입력하려면 입력 기관의 성능이 좋아야 한다. 그렇기에 입력 기관의 성능을 높이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우리는 항상 중요한 것을 생각하느라 정작 기본을 잊곤 한다. 교육에서의 기본이 어쩌면 ‘듣기’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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