헛소문

by 도리

출장 간 사람 다시 잡아와서 물어볼 수는 없는 일이지만

딱 한 명. 경태형한테만 말했었는데

이건 누가 봐도 뻔한 일이었지.


"너 그만두냐고 인마!"

"아니.. 그게 아니..."


"이 새끼 웃긴 새끼네? 야! 담배 들고 따라 나와봐"


내 말은 들으려고도 안 하고 화를 내며 흡연실로 향하는

팀장님 뒤를 조용히 따라갔어.

지은 죄도 없는데 말이지.


흡연실에 들어서자 뭔가 화를 삭이는 듯이 눈을 감은채

담배를 피고 계시는 팀장님.

잠시 후 눈을 뜨더니 조금은 진정된 목소리로 묻더라고


"설명해 봐."

"네?"


"설명해 보라고. 새로운 프로젝트 이제 시작인데


메인 개발자 퇴사 소식이 들려오면 관리자입장에서

어떨 것 같냐? 이건 또 뭐지? 싶지 않겠어?"


메인개발자라는 말에 순간 뭐라도 된 것처럼 기분이 좋아졌다가


'메인개발자는 무슨.. 메인은 김 과장이잖아..'


라는 생각이 들자 다시 가라앉다 못해 우울해지더라고.


"그냥 경태형한테 처가얘기 했을 뿐인데..."

"처가? 경태? 이제야 조금은 이해가 되네. 넌 왜 걔한테

쓸데없는 말을 하고 다니냐? 처가 얘긴 뭐야?"


"..."

"하아.. 도리야. 너 지금 신입이라고 믿기지 않을 만큼

되게 잘하고 있고, 이번 시연회 성공시킨 게 누군거 같냐?

나? 아니야. 니가 만들었기 때문에 나는 그 만든 걸로

이런 게 있다고 사람들 앞에서 자랑했을 뿐이야."


처가얘기를 묻는 팀장님 말에 쉽게 말을 못 잇자, 팀장님은

나를 격려해 주기 시작했어. 그 말은 그동안 억누르고 또 억눌려왔던

자존감, 자신감을 올려주기에 충분했지.


"그런 놈이. 그만둔다고 회사에 소문이.. 하~나 경태 이 자식을..

아무튼 소문이 쫙 퍼져있으니 내가 기분이 어떻겠냐? 왜?

처가에서 너 그만두래?"


"사실은.."


경태형에게 했던 것과 마찬가지로 처가에서 있던 일을

팀장님께 다 털어놨어.

입에 담배를 문체 곰곰이 듣고 계시던 팀장님.

아빠의 말이 끝나자마자 질문세례를 퍼붓기 시작하더라고


"프로젝트 끝나면 내려와라? 이게 맞는 건가?"

"저는 일단 생각해 보겠다 했는데..."


"너네 처가 입장도 이해되고 네 입장도 이해가 되네. 어쨌든

너는 가기 싫다는 거잖아?"

"가기 싫다기보다. 여기서 더 열심히 해서 뭔가 이뤄보고 싶습니다."


"뭔 소리여? 가고 싶다는 거야? 안 가고 싶다는 거야?

입장을 확실히 해!"


팀장님은 그런 분이셨지. 말을 빙빙 돌리거나 어렵게 말하는걸

매우 싫어하시는, 꾸미지 않은 있는 그대로를 말하는 걸 좋아하는

솔직히 내 마음이 어떤지, 뭐가 맞는 건지 잘 모르겠기에

두리뭉실하게 얘기하는 아빠가 짜증 난다는 듯이

언성을 높이는 팀장님이었어.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애가 답답한 소리 하네? 야! 이미 프로젝트는 시작됐는데

메인 개발자가 모른다고 하면 어떡하냐?"


"메인개발자는... 과장님..."

"누구? 김세찬이? 야 그 새X가 한 게 뭐가 있어? 니가 다한 거 아니냐?

너 인마 너 뭔가 착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너 이 프로젝트에서

시다바리 아니야. 김세찬이를 떠나서 과장이 몇 달 동안 못한 거

신입이 며칠 만에 해냈다. 이게 흔한 걸로 보이냐?"


팀장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니


'아.. 내가 아주 쓸모없는 건 아닌가 보다.'


라는 생각과 함께, 나를 이렇게까지 믿어주고 격려해 주고 위로해 주던 사람이

있었나 싶은 게. 눈물이 찔끔 날 것 같더라고.


"그래서 뭐 얼마나 힘든데? 집은? 전세 아니야?"

"월세.."


"아 그래 월세. 야 처음엔 다 그렇게 시작하는거여. 월세 얼만데?"

"50.."


"... 니 월급이 얼만데?"

"120..."


"... 처가 들어가면 꽁이고? 그치?"

"그렇죠..."


"하아..."


월세 금액을 들은 팀장님은 한숨과 함께 담배연기를 내뱉고는

잠시동안 아무 말도 하지 못하셨어.


"너 혹시 빚도 있냐?"

"네.."


"가지가지하네 진짜 얼마?"

"500 정도요.."


"난 또 몇천이라고 빚이야 뭐 다들 조금씩 있는 거니까.

연체만 없으면 되지. 연체는 없지?"

"..."


"... 있냐?"

"2달..."


"이거 정신이 있는 놈이야? 없는 놈이야 이게?

가 이 새X야! 그냥 처가로 들어가 살아!"

"네.."


팀장님의 호통소리에 다시 기가 팍 죽어서 흡연실 출구 쪽으로

발걸음을 내딛는데 뒤에서 팀장님이 또 큰 목소리로 부르는 거야


"가란다고 진짜가 인마!"


가라 할 땐 언제고 또 불러 세우나 하는 생각에 짜증 섞인 눈으로

고개를 돌려 바라본 팀장님은 주머니를 뒤적거리더니

지갑을 꺼내더라고.


"애기 옷이나 사줘. 애 낳았다는 소린 들었는데 아무것도 못해줬네"


팀장님이 건네신 5만 원짜리 10장.

한 달 월세금과 같은 큰돈에 눈은 휘둥그레지고 손은 덜덜 떨렸지.


"티.. 팀장님 무슨 돈을.. 너무 많습니다."

"너 주는 거 아니야. 니 아들 옷 사주는 거지. 하~나 어쩐지

어제 돈을 뽑아 놓고 싶더라니... 야 그거 원래 우리 아들 학원비야.

오늘 베란다에서 자야겠네..."


"그래도.. 너무 많은데요.."

"부담되면 갚아. 지금처럼 실력으로. 너 그거 갚기 전엔 못 나간다?"


건네받은 돈을 손에 들고 주머니에 넣지 못하던 아빠.

어떻게 해야 할지 사고가 정지됐다. 딱 그 말이 그 당시 아빠의

상태를 정확히 표현하는 말일 거야.


놀람과 감사함에 미동도 못하는 아빠를 보던 팀장님은

그제서야 화난 표정을 풀고 살짝 웃으시더니


"아니면~ 투자라고 생각하자. 내가 너한테 투자한 거니까.

너 망하면 나도 같이 망하는 거야 알지? 사이좋게 망하기 싫으면

똑바로 해!"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열심히 하겠습니다.

이 말조차 입 밖으로 나오지 않더라.

팀장님이 떠난 흡연실. 몇 분 동안 그 자리에 서서

그렇게 숨죽여 울었는지 몰라. 누가 들을까, 누가 볼까 걱정하면서

말이지.


얼마나 있었을까? 이제 사무실로 들어가야지 하고 흡연실 문을

여는데. 아니나 다를까. 정현이가 나오길 기다렸다는 듯이

흡연실 앞에 딱 서있는 거지.


"왜.. 또.."

"너 뭐야? 왜 그만둬? 나 다 들었어!"


"하아.. 다 들었다며.."

"뭐야? 진짜 그만둬? 왜? 언제? 나한테 말도 없이?"


"정현아.. 사실 너한테 부탁할 게 있는데 하나만 들어줄래?"

"뭐? 뭐든지 말해봐 친구가 다 들어줄 테니까! 누가 너 괴롭혀?

경태 씨? 김 과장?"


아빠의 진지 한 말투와 눈빛에. 같이 목소리를 줄이며 가까이

다가와 속삭이듯 말하는 정현이. 그런 정현이에 귀에 작게 속삭였어.


"너 너무 시끄러워.. 다른 데 가서 놀아.. "

"아.. 나 시끄.. 뭐? 시끄러워? 뭐야? 내가 시끄러워서 그만두는 거야?"


"그만두긴 누가 그만둬. 하는 데까지 해봐야지."

"경태 씨가 너 그만둔..

어? 경태 씨! 얘기 좀 해봐요 얘 그만둔다며? 어딜 도망가! 야!"


출장에서 돌아오는 건지 엘리베이터에서 내리는 경태형을 쫓아가며

따지듯이 묻는 정현이와 남자화장실로 도망가버리는 경태형을

보고 있자니 어느새 나도 모르게 살짝 미소가 지어 지더라구.


자리에 앉은 뒤로도 팀장님께 받은 돈을 주머니에 넣어놓고

몇 번이나 만지작 거렸는지 몰라.

혹시 잃어버릴까. 없었던 일이 되지 않을까. 두려운 마음에 말이지.


5분 정도 지났을까?

경태형이 두리번거리며 자리에 앉더라고.


"야 정현이 애 안 왔냐?"

"네.. 아! 형 무슨 소문을 어떻게 낸 거예요?"


"나? 아무 말도 안 했는데?"

"거짓말.. 나 그만둔다고 소문내고 다녔다던데?"


"그건 니가 얘기한 거잖어"

"내가 언제 그만둔데요?"


"에이~ 그게 그 얘기지..."

"하아.. 개XX"


"너 이 새끼 형한테 또 욕했지. 이번엔 정확히 들었다? 개XX?"

"아니요.. 게시판.. 여기 게시판 버그 있는 거 같은데..."


"너 게시판 그거 앞으로 내 앞에서 하지 마!"


퇴근시간.

시연회 이후로 당장 급하게 해야 할 작업이 없던 아빠는

퇴근하면 바로 집으로 가던 평소와는 다르게 들릴 곳이 있었어.

바로 은행이었지.


그 당시에도 편의점이나 기타 ATM기에서 이체가 가능했지만

아빠는 은행에서 이체하는 걸 선호했어. 수수료가 제일 쌌거든.


팀장님께 받은 돈을 입금하고 대부업체로 두 달 치 이자를 송금했지.

괜히 갖고 있다 또 돈이 어떻게 나갈지 몰라 이렇게 하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 이제 돈에 관련되서는 아빠도 아빠를 믿을 수가 없었거든.

받은 돈이 너무 많아서 그런가. 이체하고도 몇만 원이 남더라고.

핸드폰을 꺼내 전화를 걸었지.


"어~ 어디냐?"

"나? 동방이지. 취업준비 때문에 죽겠다. 너네 회사 자리 없냐?"


준영이 삼촌이었어. 전에 준영이 삼촌이 돈 빌려줬던 얘기 했었는데

혹시 기억나니?


그 이후로 준영이 삼촌은 묻지 않았어. 재촉하지도 않았어.

그냥 평소처럼 아빠와 장난치면서 마치 없었던 일처럼.

그게 정말 어려운 거거든..

그런데 준영이 삼촌은 그렇게 아빠 옆을 지켜주고 있었지.


"우리 오랜만에 소주나 한잔할까?"

"소주? 우리 또 한잔만 할 거면 안 마시잖아? 안주는 뭐먹을려?

뭐 사갈까?"


아빠가 돈이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는 준영이 삼촌은

이번에도 아빠가 술 한잔 얻어먹고 싶어서 전화를 걸었다고

생각했던 걸까? 기분이 나쁠 수도 있는 상황인데도

농담처럼 말을 건네고 있었지.


"아니야 오늘은 내가 살게. 뭐 먹고 싶냐?"


뭐 먹고 싶냐는 말에 갑자기 정적이 흐르는 게 뭔가 잠시 생각하는 듯

하더니


"그래? 좋네! 너 대학 다닐 때 끓여줬던 김치찌개 그거 지금도 가끔

생각나는데 오랜만에 도셰프 요리 한번 대접해 봐"

"해봐는 새끼야 명령이고~ 알았어 언제 올 건데?"


"뭘 언제야? 지금 가방 챙기고 있는데 빨리 가서 만들고 대기해"


알고 있었어. 내가 부담될까 봐 그냥 집에 있는 걸로 먹자는

준영이 삼촌의 배려를 말야. 고맙고 미안해서 더 말을 못 했는지 몰라.


'치킨 한 마리 정도는 사줄 수 있었는데...'


어쩌면 치킨 한 마리 가격도 부담이 돼서 더 못 밀어붙인 것도

있겠지만 말야.

집에 들어서자마자 옷을 대충 벗어던지고 주방으로 향했지.


도희가 집으로 돌아간 후 또 오랜만에 해보는 요리.

김치를 꺼내 썰고, 도희가 사주고 간 참치를 까고.

물세는 월세에 포함돼있으니 몇백 원 정도 할 가스비만 빼면

공짜나 마찬가지인 안주였어.


"히야~ 냄새 좋네. 이거지"

"왔냐?"


"오셨지. 야.. 여기 신혼집 아니냐? 예전 니 자취방 생각나네..

치우고 살아. 누나 돌아오면 다시 도망가겠다.."

"아! 나 술 안 사 왔다."


"이 새끼 일부러 그랬어. 그럴 줄 알고 내가 사 왔다"


올 사람도, 같이 살 사람도 없는 집. 그냥 그대로 방치해 둔지

오래돼서 그런가. 너저분하고 보일러실에서 새어 나온 담배냄새가

여기저기 베인건지 살짝 냄새도 나는.. 그래 그 당시 우리 신혼집은

담배 좋아하고 술 좋아하는 대학생 자취방 딱 그 모습이었던 것 같아.


김치찌개가 완성되고 자연스럽게 시작된 술자리.

무슨 할 말이 그리 많은지. 대학 다닐 때 추억애기부터 시작해

드라마 이야기, 음악이야기, 그러다 정치인도 좀 까고

이 애기 저 얘기 하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10시를 가리키더라.


"오랜만에 또 이렇게 노니까 좋네 옛날 생각도 나고"

"그래~ 좋네~ 준영이 넌 요즘 어떠냐?"


"나 4학년이잖냐? 다들 취업 나가고 나만 남았어.

요즘 취업 왜 이렇게 힘드냐?"

"세상에 쉬운 게 어딨냐?... 없더라 그런 거.."


"이거 왜 이렇게 약해지셨나?"

"세상이 그렇게 만들더라"


"맞짱 떠 너 깡 좋잖아. 맘에 안 들면 치고 박아.

니가 무릎을 꿇던 세상이 무릎을 꿇던 누구 하나 꿇지 않겠냐?"

"결국에 꿇는 게 나일까 봐 무서워서 그러지... 그런데

백수인 너한테 들을 소린 아닌 것 같다?"


"... 이 새낀 왜 가만있는 백수한테 XX이야..."


무슨 말을 하고 싶은지 알 것 같았어. 준영이 삼촌은 자기 방식대로

아빠를 위로하고 있었던 거지. 하지만 사실이 그랬어.

결국 지는 건 아빠일 게 뻔히 보여서 싸우려고도, 부딪혀보려고도

하지 않고 그저 회피하고 도망가는 게. 그리고 결국

그랬던 내 모습을 후회하는 게 전부인 20대 후반의 그때 아빠는

겁쟁이였단다.


"오늘 잘 먹었다? 다음에도 잘 부탁해 도셰프?"

"잘 먹었다니 다행이네. 조심히 들어가고 조만간 또 보자"


"그래 연락 좀 자주 하고. 요즘 자기 나한테 소홀해진 거 같아?

우리 헤어져"

"꺼져 미친놈아"


결코 가볍지 않은 농담을 건네고 어둠 속으로 사라지는 준영이

삼촌의 뒷모습. 사람과 헤어질 때 그 뒷모습을 보는 게

예전이나 오랜 세월이 지난 지금이나 익숙해지지 않는 아빠지만


그날.


아빠는 아쉽다거나 허전하다거나 그런 생각보다는


나 그만둔다고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짓던 정현이,

격하게 위로해 주시던 팀장님,

그리고 언제라도 부르면 달려와주는 준영이.


이들에게 받은 만큼, 아니 10분의 1이라도 되돌려 줄 수 있을 만큼,

그래... 그만큼 성장해야 한다고 나 자신에게 소리치고 있었어.

그게 얼마나 힘든 건지, 얼마나 어려울지 가늠은 안되지만 말야.


'그래 맞짱 한번 떠보자. 가만히 있다 얻어맞는 것보다

한대 정도는 때려보는 게 낫겠지'


준영이의 조언도 잊지 않은 채로 말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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