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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파수꾼 Aug 12. 2020

< 위주 >

2020. 6. 6. D+209

갑자기 우울해지는 때가 있다. 이성의 고삐가 풀린 채 내가 아닌 듯, 나인 듯하는 존재가 활을 거꾸로 들고 화살을 걸친 시위를 밀어낸다. 과녁은 따로 지정하지 않아도 된다. 조준하기 위해 심호흡을 가다듬지 않아도, 한쪽을 찡긋 감은 눈을 오른 주먹 옆에 두지 않아도 화살은 품 속 과녁에 꽂힌다. 최후까지 도망치며 버틴다 한들, 그래 봤자 아홉 뼘 몸뚱이. 이성의 마지막 흔적까지 추적해 꿴 화살의 궤도는 검은 담즙을 머금은 채 처음부터 정해진 곳으로 향한다. 중력의 축복을 받았을까, 꿴 존재들과 함께 낙하한다. 두 번, 세 번, 시위가 춤을 출 때마다 바닥에 쳐 박히곤, 점점 더 깊은 곳으로 고꾸라진다.


어젯밤도 그랬다. 불현듯 찾아왔고, 활시위를 연거푸 밀어냈다. 검은 담즙에 취해 화살 비를 퍼부었다. 머리와 몸뚱이를 연결하는 뒷골목은 꽉 막혀 답답함에 숨이 막혔고, 삼장법사의 주문이 시작됐는지 긴고아가 머리를 조였다. ‘쿵쿵’ 천지를 흔드는 북소리가 최신형 고성능 우퍼를 단 듯 뇌를 울렸다. 온몸을 휘젓곤 가슴과 뒷목을 차례로 지나 뒤통수에 다다른 화살이 블랙홀을 향해 고꾸라졌다. 얼굴은 검게 변하고 일그러졌으며, 눈코입귀는 서로 붙잡은 채 아슬아슬 매달려 있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추락이 시작됐다.


오후까진 정말 행복했다. 아이의 모습이 담긴 초음파 사진에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동영상 파일을 전해 받곤 ‘일시정지’와 ‘재생’ 버튼은 연신 눌러대며 스크린숏을 찍어댔다. 양 손과 발, 손가락과 발가락을 보며 눈이 휘둥그레졌고. 눈코 입이 담긴 사진을 보곤 킥킥댔다. 한신이 지나가도 될 정도로 벌어진 가랑이에 무언가 튀어나온 부분이 있는지 꼼꼼히 살펴봤다. 은하수를 따라 세상의 온갖 아름다움을 훑는 상상의 열차에 탄 듯 흥분했고 황홀했다.            

활과 화살이 눈에 들어온 계기는 뚜렷하진 않았다. 손을 뻗으니 활과 화살이 갑자기 생기는 아폴론의 능력이 발현됐던 것일까, 퇴근 후 집 안을 휘 둘러보곤 집안일을 시작했다. 저녁 식사를 차리고, 빨래를 했다. 설거지를 하고, 음식물쓰레기는 처리하고. 이것저것 정리정돈을 했다. 그러다 문득 히포크라테스를 마주쳤다. 그는 내게 차 한 잔을 건넸고, 물었다.  


‘무얼 하고 있는가?’, ‘무얼 해야 하는가?’, ‘무얼 할 예정인가?’, ‘무얼 해야만 하는가?’


답이 선뜻 나오지 않았다. 아니, 질문을 맞닥뜨리기 전까지 생각이 멈춰있었던 것 같았다. 말문이 막혔다. 작년 이맘때가 생각났다. 내년 이맘때도 생각났다. 3년 전 이맘때가 생각났다. 3년 후 이맘때도 생각났다. 답답했다. 그가 건넨 차를 마셨다. 건강한 빛깔이었고, 빛깔과 꼭 같은 맛이었다. 혀를 달구곤 식도를 타고 온 몸에 퍼졌다. 쓰고, 또 쓰라렸다.


그는 대답을 못하는 내 모습에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답은 이미 정해져 있다는 듯 나를 눌러봤다. 생각을 확장하지 못하던 차에 그가 보내는 주문은 온 신경에 침투했다. 삶에 대한 조언이었다. “제일 먼저, 이름을 잃게 될 것이다. 자기 자신을 감추고, 그렇게 서서히 잃어버려야 한다. 스스로의 부재를 추구해야 하고, 부재의 존재를 받아들여야 한다. 자신을 위한 일에는 무기력해야 하며, 욕망은 오로지 새 생명을 위해 발현돼야 한다.”   


사실 이미 2년 전, 내 이름은 내가 아닌 사람의 그것으로 대체됐다. ‘ㅇㅇㅈ 남편.’ 여성 중심의 이벤트이기 때문인지, 결혼식을 준비하는 내내 이름을 잃었었다. 그 이전에는 다른 이의 이름도 아닌 숫자로 불린 적도 있었다. 하지만 그때마다 스스로를 잃지 않기 위해서라도 또박또박 이름을 되뇌며 대답했었다. “132번 훈령병 ㅈㅅㅇ!”


밤새 앓다 점심 먹을 때가 돼서야 차츰 회복하곤 그가 제시한 답들을 곱씹어봤다. 괜한 저항감이 들었다. 삶의 주체성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주문의 저주에서 벗어나려 온갖 논리를 내세워 보았지만, 오히려 부정할 수 없는 순간의 도래는 숙명과 같이 밀착해왔다. 그렇게 내려놓으려던 순간에, 정성스러운 마음을 내게 전해주었던 한 공무원이 떠올랐다. 


여느 날처럼 차 한 잔을 곁에 두고 꿈을 장황하게 떠들었다. 가만히 듣던 그분은 가볍게 입을 뗐다. “저는 아이들이 건강하고 바르게 자랐으면 하는 마음뿐 이예요.” 차분하고 단단했다. 나는 별거 아니라는 듯 반응했다. “저도 아이가 생기면 그렇게 꿈이 낮아질 수 있겠네요.” 그분은 찰나의 순간도 허락지 않고 받아쳤다. “낮아진 게 아니라 다른 거죠.”


주체적이었다. 새 생명과의 삶이 완전히 새로운 삶은 아니라는 듯, 스스로의 표정, 본연의 모습이었다. 본인의 부재를 추구하지 않는 듯했다. 여전히 자신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고, 나도 그분의 이름을 불러 소통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그분은 굳이 스스로 이름으로 대답하며 애쓰지 않았다.


무엇이 두려웠던 것일까. 왜 스스로 허상을 만들고, 검은 담즙을 스스로 들이키고, 활시위를 밀어젖혔던가. 블랙홀은 결국 스스로 만들어 낸 허상이었던가. 내년 이맘때의 삶은 완전히 새로운 삶이 아니다. 처음 경험해볼 일들이 있긴 하겠지만, 나의 삶이 새 생명의 삶에 종속되진 않는다. 지금과 같이 내 이름으로 삶을 살아갈 수 있고, 꿈을 향해 계속 발을 내딛을 수 있다. 선택만 있을 뿐이다.


미시감. 밤에 빌려줬던 낮의 시간에서 깨어났을 때, 눈앞의 세상은 보다 차분했고 편안했다. 빗나간 화살을 함께 맞던 품에 파고들어 사과와 함께 이해를 갈구했다. 그리고 부탁했다.

“내 위주, 뭐든 내 위주로 할 거야.” “응, 자기 하고 싶은 대로 다 해”

“나 ‘뚱이 아빠’ 아냐, 뚱이가 ‘내 아들’이야. 그러니 자기도 ‘뚱이 엄마’ 하지 마.”

“알겠어. 내겐 당신이 0순위야. 나는 1순위, 뚱이는 2순위.”

“응, 나도. 뚱이야~ 내 1순위 괴롭히지 말고 편안히 자라다가 나와.”

아내가 아가 목소리로 답했다. “네네! 뚱이 아부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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