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생활 9년 차, 남편도 이제 나의 정리 덕질 생활에 협조적인 편이다. 그러나 언제나 좋은 일들만 있었을까. 신혼 때는 각 잡아 놓은 옷들 사이에 대충 말아 처박아 놓은 티셔츠들 때문에 싸우기도 하고 내 기준 20번도 더 말한 것 같은데 여기저기 벗어놓은 옷가지들을 보며 내 말을 무시하는 건가 싶어 퇴근하기 무섭게 쏘아붙이기도 하였다. 그렇지만 모든 부부들이 그렇듯 우리도 서로에게 적응해 갔고, 나 역시 원만한 부부생활을 위해 협의점이 필요했다. 일명 ‘엉망 존’을 허락한 것이다. 이곳만큼은 남편이 아무리 엉망으로 만들어도 터치하지 않겠다는 일종의 ‘DMZ' 같은 곳이었다.
우리의 첫 신혼집은 방이 두 개뿐인 작은 빌라였다. 안방에는 침대를 두었고 남는 방 하나는 자연스럽게 창고방이 되었는데 남편은 이곳에 업무를 볼 책상이 꼭 필요하다고 했다. 그렇게 남편의 책상이 놓이면서 이 방은 자연스럽게 남편의 동굴이 된 듯했다. 창고방이라 이 물건 저 물건 쌓여있다 보니 남편이 조금 더 보탠다고 티가 나지 않았다. 깨진 유리창의 법칙처럼 엉망인 그 방은 더욱더 엉망이 되어갔다. 늘 작은 방을 떠올리면 머리가 지끈지끈 아파왔다. 몰아서 청소를 몇 번 하다 지쳐 남편에게 방 좀 치우라고 잔소리를 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남편이 주저하는 듯하더니 처음으로 이곳만큼은 좀 편하게 쓰고 싶다는 이야기를 꺼냈다. 처음엔 좀 당황스러웠다. 아니, 나 좋자고 그동안 깔끔 떤 게 아닌데. 뭐야. 그 말투는. 그런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집안 모든 공간에 나의 통제가 미치지 않는 곳이 없었다. 나에게 맞춰주고 있긴 했지만 평생을 정리라곤 해본 적이 없는 남편에겐 이 집이 조금 숨이 막혔으려나. ‘그래. 방이 두 개니 안방 하나는 내 방, 작은 방은 남편 방이라고 생각하자.’ 나 역시 집안의 평화를 위해 한 발자국 양보해야 했다. 그렇게 우리 집의 첫 번째 ‘엉망 존’이 생겨났다. 작은 방의 모든 정리와 청소의 책임은 남편에게 넘어갔다. 나는 하숙생의 방처럼 그곳만큼은 과감하게 정리와 청소를 건너뛰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안 보는 게 상책이라며 작은 문은 꼭꼭 닫아두는 것뿐이었다.
그렇게 방 하나였던 첫 번째 ‘엉망 존’은 얼마 뒤 책상 하나로 작아졌다. 아이가 태어나 짐이 늘자 남편도 양심상 방 하나를 자기의 ‘엉망 존’으로 달라고 하진 못했던 것이다. 대신 가로길이 800mm의 작은 책상 하나가 남편의 놀이터가 되었다. 방 하나도 못 본척했는데 책상 하나 모르는 척하는 것쯤이야. 술 병뚜껑과 색색별로 스무 개쯤 나뒹굴고 있는 펜들을 봐도 나는 콧방귀 한 번 뀌지 않았다. 그런데 변화는 나에게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쯤 되니 신기하게도 자연인이던 남편이 슬슬 정리인의 기질을 보여주기 시작한 것이다. 나도 귀찮아서 은근슬쩍 대충 꽂아놓은 채로 하는 책 정리를 그렇게 하면 제대로 안 된다며 죄다 빼서 정리하질 않나. 중고거래 하려고 빼놨다가 귀찮아서 그냥 버릴까 싶은 물건들도 바로 사진 찍어 하루 안에 다 팔고 와 매너 온도가 펄펄 끓었다. 분명 결혼 초기엔 야생의 냄새가 폴폴 날리던 남편에게서 같은 종족의 냄새가 나기 시작한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정리 여제 곤도 마리에님의 ‘인생이 빛나는 정리의 마법’ 책에서 이런 말이 나온다.
자신이 이상적이라고 생각하는 생활에 ‘왜’를 반복해 질문해 나가면 단순한 결론에 이르게 된다.
결국 물건을 버리는 것이나 물건을 갖는 것은 전부 자신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결혼과 동시에 내 맘대로 즐기던 정리의 행복은 사라졌다. 대신 나는 함께 하는 정리의 행복을 배울 수 있었다. 이른바 정리 인생 시즌 2를 맞이하게 된 것이다. ‘엉망 존’은 이 시즌 2의 화려한 시작이자, 나에겐 ‘배려의 정리’를 알려준 소중한 공간이었다.
그렇게 세월이 지나 이제 남편의 ‘엉망 존’은 입고 잤던 옷들을 걸기 위해 부엌 의자 하나와 출근 준비를 위한 물건들이 놓인 작은 서랍장 상판뿐이다. 그리고 내가 하는 일이라곤 남편이 미처 다 넣지 못한 안경닦이 천을 보관함에 제대로 넣는 일뿐. 또 한 가지 달라진 점이 있다면, 나에게도 ‘엉망 존’이 생긴 것이다. 당장 치우지 않으면 눈에서 레이저 빔을 쏘며 가시 세운 고슴도치마냥 하루종일 틱틱거리던 나는 그것이 공간이 아니라 마음의 여유가 없어서였음을 알게 됐다. 그래서인가. 옛날 같으면 이삿짐들이 눈에 거슬려 2주 안에 모든 것을 정리했을 텐데 이번 이사는 두 달이 넘어가는데도 아직 마음에 차게 정리를 하지 못했다. 그런데 뭐 어떤가. 오래 걸리면 오래 걸리는 대로 조금씩 사부작사부작 정리하는 즐거움도 있다.
부부는 닮는다고 하던데. 우리는 이제 조금 평균에서 만난 느낌이다. 나의 정리가 ‘강박’이 되지 않은 것은 어찌 보면 남편의 ‘엉망 존’의 역할이 크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제 우리는 제법 손발이 잘 맞는 ‘정리 크루’가 되었다. 우리의 정리 역사를 살펴보니 이것은 서로 내주고 양보하며 닮아간 우리 부부의 역사와도 닮아있는 것 같다.
새삼 감사함을 느끼며 오늘은 남편이 좋아하는 치킨을 시켜줘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