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이런 거 좋아하는지 어떻게 알았지?
가끔 주변에서 지인들이 ‘나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모르겠어. “라고 얘기할 때가 있다. 그때 나는 유튜브 구독 영상과 추천 영상에 뭐가 뜨는지 보라고 한다. 그 수많은 채널들 중에 구독까지 눌렀다는 것은 분명 나의 관심사가 있다는 뜻이고, 추천 영상은 알고리즘이란 녀석이 이런 나의 취향들을 기반으로 기가맥히게 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내 올려준 것들이기 때문이다. 이쯤 되면 다른 사람들 추천 영상으로 뭐가 뜰까 궁금한 것은 나만의 오지랖인가. 그래서 이번엔 (아무도 안 궁금하겠지만) 정리 덕후의 추천 영상엔 무엇이 뜨는가에 대해 이야기해 보겠다.
나는 외국의 정리 수납 영상들도 즐겨 보는데, 이때 꼭 빠지지 않고 나오는 것이 'restock(재고 보충) ASMR'이다. 냉장고 안을 싹 비운 후 다시 식재료들을 채워 넣는다든지, 간식 바구니를 과자들로 줄 맞춰 채우거나, 유리 항아리에 캡슐 세제들을 채우는 영상 같은 것을 말한다. 그런데 이 물건들을 채우면서 나는 부스럭거리는 소리나 박자감 있게 탁탁 놓는 소리가 ASMR('autonomous sensory meridian response'의 준말로 청각, 시각, 촉각 등을 이용하여 뇌를 자극해서 심리적 안정을 유도하는 것.) 효과가 있다. 이럴 때 느껴지는 소름 돋게 좋은 느낌을 ‘팅글(tingle)’이라고 하는데, 'ASMR' 영상들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런 ‘팅글’이 느껴지는 영상들을 틀어놓고 잠에 들기도 한다. 나 역시 바구니에 채워지는 과자 봉지의 부스럭거리는 소리와 각종 유리병에 이런저런 가루를 쏟아붓는 소리를 듣고 있자면 마음이 편안해지면서 어느새 눈이 감긴다.
무언가를 채워 넣는 것도 좋지만, 잘 정리된 곳에서 하나씩 빼내어 곱게 포장하는 영상 역시 나의 최애 영상들이다. 이런 영상들은 대부분 숏폼이 주를 이르는데, 이 영상들을 보기 위해 주로 10대들이 많이 쓴다는 ‘틱톡’까지 가입한 걸 보면 나는 역시 어쩔 수 없는 정리덕후인가 보다. 대부분 집에서 작게 운영하는 문구류나 액세서리 쇼핑몰 운영자들이 이런 영상을 제작하는데, 처음은 컴퓨터로 주문을 확인하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다음은 각종 미니미한 서랍들에서 주문받은 물건들을 하나씩 꺼내고 귀여운 스티커나 간식들을 보너스로 넣어 하나하나 곱게 포장한다. 이때 바스락거리는 비닐 소리와 종이 포장지 소리가 앞서 말한 ‘팅글’이 최대로 느껴지는 부분으로 꽤 중독성이 있다. 마지막은 포장한 것들을 조심스럽게 상자에 담고 스티커로 봉한 후 택배 비닐에 담아 마무리한다. 글로 쓰고 나니 이게 뭔 영상인가 싶지만, 외국에서는 조회수가 꽤 높은 영상 카테고리 중 하나이다. 한번 찾아보시라.
아줌마도 좋아하는 ‘다꾸’, ‘폰꾸‘, ’탑꾸‘ ’폴꾸‘의 세계
정리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무언가를 적고 꾸미는 것을 좋아하는 걸까? 알고리즘이 슬쩍 보여준 이 영상들 역시 취향 저격 제대로였다. 나는 한동안 이 ‘꾸미기’ 시리즈에 빠져 또 눈알 빠지게 영상들을 찾아보았다. 일단 설명을 좀 하자면, ’ 다꾸‘는 ’ 다이어리 꾸미기‘, ’폰꾸‘는 ’ 폰 꾸미기‘, ’탑꾸‘는 아이돌 가수들 앨범에 들어있는 ’ 포토카드‘를 넣는 ’ 탑로더’를 꾸미는 것을 말하며, ‘폴꾸’는 ‘폴라로이드 사진 꾸미기’를 말한다. 나 역시 초등학교 시절 다이어리에 이런저런 사랑에 관한 손발 오글거리는 시구절을 옮겨 적거나, 좋아하는 가수들 사진을 잡지에서 오려 붙이며 ‘꾸미기 위한’ 다이어리를 써본 적이 있다. 이 전통은 아직도 이어져 내려오는가 보다. 10대 아이들이 주로 하긴 하지만 일명 ’ 짬바‘가 다른 성인들 역시 많다. 이 영상들과 ‘정리’의 상관관계를 따져보자면 일단 뭔가를 꾸미려면 쟁여야 할 것들이 많다. 각종 스티커들과 메모지, 그리고 전용 문구들, 그리고 요즘은 잘 꾸민 결과물들을 판매하기도 하기 때문에 포장지, 비닐, 박스 등이 필요하다. 물론 이것들을 잘 쟁이려면 잘 수납해야 한다. 그럼 또 나와야 하는 게 내가 사랑하는 서랍이고, 바구니고 뭐... 뻔하지 않은가. 그러니 내가 이 꾸미기 영상들을 보고 각종 다이어리를 사고 스티커를 사모으는 것은 정리 덕질의 일환으로 봐야 한다. 변명이 아니고 진짜 그렇다.
앞에 것들이 만족감만을 주는 영상들이라면 나에겐 스트레스를 동시에 주지만 절대 끊지 못하는 영상들이 있다. 바로 ‘청소’와 관련된 영상들이다. 다음에 더 자세히 이야기하긴 하겠지만 대부분 사람들이 ’ 정리‘를 잘하면 ’ 청소‘도 잘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것들은 엄연히 다른 분야이다. 솔직히 말하면 나는 쓸고 닦는 것은 잘하지 못한다. 특별히 더럽다고 얘기할 만큼도 아니지만 그냥 하루에 한 번 청소기 돌리는 그런 평범한 정도이지, 거울과 유리창에 지문 하나 없는 그런 깔끔한 집과는 거리가 멀다. 그래서 이런 각종 청소 영상들을 보면 엄청난 동기 부여가 되지만 다음 날이면 베란다 틈새 청소 대신 흐트러진 하부장 정리를 선택하게 된다. 그러나 ’ 청소‘역시 언젠가는 제대로 덕질해보고픈 분야이기에 스트레스 반, 만족감 반을 느끼며 반짝반짝하게 쓸고 닦는 그녀들의 영상을 본다.
이 밖에도 각종 봉투에 목적에 따라 현금을 나눠 담고 오직 현금으로만 생활하는 영상이라든가, 크고 작은 팬트리 정리 영상, 각종 아이디어 상품들로 편안한 삶을 즐기는 중국 언니들의 영상들이 나의 추천 영상으로 뜬다. 덕질은 언제나 그렇듯이 세계를 넓혀 가며 즐겁게 변형한다.
물론 귀 얇은 나는 이렇게 발 넓은 알고리즘 덕분에 한 달 쓰고 마는 다이어리를 사고, 필통에서 나올 생각이 없는 스티커 붙이는 끝이 뾰족한 집게를 사기도 한다. 현금 생활 해보겠다며 산 지폐 정리함은 어느새 다른 용도로 쓰고 있고, 내일은 반드시 스테인리스 냄비들을 모두 빛이 나게 닦겠다며 전용 세제를 사지만 우리 집 냄비들은 여전히 누렇다.
그런데, 그러면 또 어떠한가. ‘아 이건 좋은데, 이건 좀 귀찮구나.’ ‘이건 내가 제대로 배워보고 싶다.’ 같은 생각을 하며 나를 또 알아가는 과정이 될 수 있지 않은가. 너무 큰돈과 시간이 드는 것이라면 좀 고민해 봐야겠지만, 가볍게 사직할 수 있는 거라면 일단 따라 해보는 것도 나쁘지 않다.
나는 ‘정리’와 ‘미니멀리즘’을 사랑하지만 무조건적인 ‘절약’과 ‘무소비’를 지향하진 않는다. 부단히 말하지만 나의 정리는 좋아하는 것들만 남기기 위함이지, 무소유나 상업화된 이놈의 세상을 이겨먹겠다는 고귀한 철학이 있어서가 아니다.
그런 점에서 나는 많은 사람들이 ’이 나이에 무슨’, ‘아휴, 다 늙어서 애도 아니고.‘, ’ 쓸데없이 돈만 들지.’라고 생각하며 내가 무엇을 좋아하고 잘하는지에 대해 관심을 끊는 것이 참 안타깝다. 무엇을 좋아하는지 알고 있는 것만으로도 삶은 조금, 아니 많이 재밌어지는데 말이다.
자 이제 핸드폰을 켜고 당신의 구독 채널과 추천영상을 보자. 알고리즘은 당신에게 무엇을 보여주는가. 마음에 드는 영상을 찾았다면 당신도 ‘덕후‘가 될 준비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