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실
어렸을 적 유독 아빠의 젊었을 때 이야기를 많이 들었었다. 불량배들에게 괴롭힘당하는 시민을 구해준 이야기, 군대 때 심하게 갈구던 선임을 사회에서 만나 복수해 준 이야기 등 주로 아빠는 과거에서 영웅이었고 청춘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다.
살다 보니 아빠뿐만 아니라 주변에서, 특히 나이 드신 어른들에게서 이런 모습을 종종 본 적이 있는 듯하다. 그들의 현재의 삶이 많이 불행하거나 딱히 슬퍼 보이진 않았지만, 사람들은 종종 과거나 미래로부터 위로를 받는 것 같다. 하물며 나 또한 현실과는 거리가 있는 먼 미래의 나를 상상하며 말도 안 되는 행복 회로로 잠 못 드는 밤을 보낼 때도 있다.
그리스 작가 아이소포스(이솝) 우화집 속 이야기 중, 한 남자가 로도스 섬에서 참석한 멀리뛰기 시합 중 상상도 못할 성과를 냈었다고 무용담을 늘어놓는 와중에 누군가 이렇게 말하는 일화가 나온다.
”여기가 로도스다. 여기서 뛰어라. Hic Rhodus, Hic saltus“
이 말은 현재 실제로 증명할 수 없고, 보여줄 수 없는 것은 과거의 일이던 미래의 일이던 가치가 없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과거의 일이 가치가 없다라. 현재 나의 결과의 원인들이고 열심히 지내온 내 인생 자체인데 가치가 없다는 아이소포스의 메시지가 한편으로 가슴 아프고 냉철하게 느껴졌다. 정말 이 문장에서 말하고자 했던 게 지금 못 보여주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게 전부인 걸까 의문이 들었으나, 이 말을 언어유희로 변주한 헤겔의 해석을 보고 안심이 되었다.
”여기 장미가 있다. 여기서 춤추어라. Hic Rhodon, Hic salta"
여기서 말하는 장미는 이성을 의미한다. 현재라는 고통 속에 놓인 장미, 그 자체에 집중하고 그 속에서 기쁨을 발견하여 춤을 추라는 것이다. 현실을 냉철하게 직시하면서도 그 자체에서의 즐거움을 느끼는 삶을 살라는 것이 이솝과 헤겔이 말하는 인생사이며, 특히나 어지러운 현실을 살아가는 현대 사람들이 배우고 마음에 새겨야 할 마인드이지 않을까 싶다.
나는 항상 앞서서 걱정을 하는 안 좋은 습관을 가지고 살아왔다. 최악의 미래를 상상하며, 전전긍긍 고생하는 상상의 나래로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들 때가 꽤 많다.
Here and Now.
여기가 로도스라는 것을 되새기며 현실에서의 즐거움을 찾는 내가 되어야겠다고 다짐해 보는 밤이다. 물론 살다 보면 심적으로 힘든 일이 기쁜 일보다 더 많지만 살아가는 것은 그 자체가 기쁨이고 별거 아닌 물건, 행동, 장소, 사람들은 가만히 들여다보고 돌이켜보면 모두 행운인 것이다. 더 나아가서 내 가족, 친구, 주변인들에게 내가 찾은 그 기쁨을 나눌 수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을 거 같기도 하다.
#현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