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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펀치 Oct 07. 2018

강펀치 In Lisbon - 1

포르투갈 일기 첫번째 이야기

"얼마만에 가는 거지 휴가?"


누군가의 질문에  헤아려보니 작년 8월 말 보라카이에 다녀온 이후로 처음이다. 날짜는 흐릿하지만 시기는 정확히 기억하고 있는 게 민방위를 마치고 나서 곧바로 '말리지 마세오-' 느낌으로 떠났던 기억이 선명하다. 가 있는 동안 노조 단톡방에는 여러 다급하고 무거운 이야기가 오고 갔고, 유심을 따로 구매하지 않았던 나는 반은 여행지에 반은 회사에 마음을 걸쳐 두었던 기억이 난다. 


앞두고 있던 파업, 민방위 이후로 끊어놓았던 비행기표, 왔다갔다 하는 인터넷에 오락가락하는 날씨. 물론 즐겁게 보내고는 왔다만 마음이 중간지대에서 불안하게 둥싯거리던 그런 휴가였다. 여행의 말미에 회사에선 파업을 시작했고 나는 돌아와 합류했다. 그리고 100일을 넘긴 파업이 끝난 게 올해 1월. 마지막 휴가 이후 정말, 많은 일들이 있었다.


그리고 나서 다음 여행을 계획한 것이 올해 6월쯤. 어딜갈까 고민하다 처음에는 아일랜드를 알아봤었다. 더블린, 기네스, U2의 나라, 영화 원스.. 펍들을 돌며 음악 진탕 듣고 맥주나 진탕 마시는 휴가를 보낼까 싶었지만 10월에 간다고 하니 날씨를 걱정하는 주변인이 많았다. 그래서 급하게 정하게 된 것이 포르투갈! 언젠가 꼭 가보고 싶었던 곳이었기도 하고, 10월 중순이면 날씨가 우리나라의 초가을 비슷한 느낌이라고 하니 시기로는 최적이 아닐까 싶었다. 


그렇게 한글날을 끼고 내가 왔다. 리스본에!


비행기는 러시아 국적기인 아에로플로트, 경유지는 모스크바. 기내식은 맛이 없었고  영화는 볼만한 것들이 꽤 있었다. (레드 스페로우, 한 솔로, 백 투더 퓨처를 봤다) 1시간 정도 출발 지연이 있었고 서울에서 모스크바까지는 10시간 정도가 걸렸다. 모스크바에 착륙하며 땅을 내려보는데 숲이 많았고 집들이 예뻤다. 아파트에만 익숙한 핸국인에게는 너무 신선한 그림. 


개성있는 집과 마당, 어떤 좋은 집들은 숲의 가장자리, 강가에 위치하고 있었는데 물론 사람 사는 어디에 근심걱정이 없겠느냐마는 그래도 저런 곳에서 살면 참 행복하겠다는 생각을 했다. 조금 더 시내 쪽으로 나오니 아파트도 보이고 했지만 공항 근처의 예쁜 집들이 기억에 남는다.


날씨는 영상 7도였다. 레깅스에 어깨 파인 후드티를 입고 있던 나는 얼른 기모 후드를 걸쳤다. 그래 이 곳이 러시아구나- 실감이 났다. 줄이 길어서 트랜스퍼 하는 데 시간이 좀 걸렸고, 레페 맥주 한 잔 마시고 나니 금방 또 비행기 탈 시간이 됐다. 



다음으로 탄 비행기는 좀 더 작았지만 기내식은 맛있었다. 하지만 여전히 다 먹지는 못했다(...) 그렇게 리스본 공항에 내릴 때까지 아무 일도 없을 줄 알았는데. 내리기 20분 전쯤 난데없는 귀통증이 왔다. 비행기를 그렇게 많이 타본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유럽까지 장거리 비행도 몇번 해보고 5-6시간 걸리는 비행도 꽤나 해봤는데, 이 정도의 귀통증은 처음이었다. 인터넷에서만 보던 귀가 찢어지는 것 같은 고통을 느꼈다.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고도가 낮아지는 시점에 자고 있었던 게 문제였던 것 같기도 하고, 그때 목베개에 아팠던 귀를 대고 있었기 때문인 것도 같다. 어쨌든 이번 통증은 상상 초월이었다. 말 그대로 당장 고막이 찢어지고 귀에서 피가 흐른다고 해도 그럴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픔. 리스본 도착도 전에 귀가 어떻게 되는 거 아냐 하는 걱정이 들었다. 급기야 눈물도 줄줄 흘림.


나중에 찾아보니 이럴 때는 귀에 공기를 넣어 기압차를 줄이는 게 중요하므로 사탕을 먹어 침을 계속 삼키거나, 껌을 씹거나 물을 마시는 게 좋다고 한다. 정 심한 경우는 승무원에게 이야기를 하면 찬 수건 같은 걸 가져다 준다고. 어쨌든 비행기는 무사히 착륙했고, 나는 줄줄 눈물을 흘리며 어렵게도 포르투갈 땅을 밟았다. 


나의 유럽 메이트 토깽이 목베개. 2012년도 한달 간의 유럽 배낭여행을 한께 한 소중한 친구를 이번에도 모셨다. 네 덕에 편하게 왔다 토깽아!


밤에 도착한 관계로 바로 공항 근처 호텔로 이동했다. 택시 창문을 내리고 바람을 맞으니 아 이게 포르투갈 공기인가! 싶었다. 서늘한 밤 공기 달리는 택시와 창밖으로 슈욱슈욱 지나가는 간판들. 아직 실감은 나지 않았지만 여행 온 기분이 좀 났다. 타국에서 툭툭은 몰라도 택시를 타는 건 처음이네- 하고 조금 뿌듯(?) 하기도 했다. 약간 어른 된 기분.


공항 근처 Radisson Blu 호텔은 쾌적했고, 편안했다. 도착하자 늦은 시간에 공항에 함께 떨어진 다른 여행객들이 줄을 서 체크인을 기다리고 있었고, 거기서도 한 20분 기다렸던 것 같다. 방음이 잘 안되는 모양이라 오전에 좀 시끄럽긴 했지만 방은 생각보다 넓었고 침구류도 푹신 깨끗하니 나쁘지 않았다. 


그렇게 시작된 나의 첫 리스본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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