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도서관 3층 800대 서가향 향수 제조법
강소연
먼저 잘 건조된 나무토막을 빗물에 담근 후
충분히 젖으면 중앙 부분을 둥글게 판다
여대생의 늘어난 추리닝 사이로
삐져나온 실오라기 하나
<하늘과 바람과 별과 시> 시집의 졸고 있는 구절을
사서 몰래 가져와 퐁당 넣는다
서가를 정리하는 알바생의
메주같은 하품 한 스푼과
저어기 턱 괸 채 졸고 있는
남학생의 누런 졸음 1.5스푼
<꿈의 해석> 28쪽 딱딱한 귀퉁이를 잘라와
준비된 재료와 잘 섞는다
은행나무 아래 가시 같은 구린내를 0.5g,
시럽처럼 코를 간질이는 붉은색 낙엽 내음 0.8g 넣고 나면,
이젠 웬만큼 됐지마는 아직 부족한 부분이 있다
사랑이나 진실 따위의 마지막 글자를 써 내리는 연필 소리
젊은 눈동자의 텁텁한 울음과
오래된 케이크 맛이 나는 웃음들
확성기를 통해 울려 퍼지는 고통의 진파 한 자락과
늘어선 촛불들의 촛농 1g을 넣고 나서야 비로소,
불투명한 햇살 사이로 보이는 풀썩풀썩 먼지 조금과
마지막으로 곱등이의 기다란 촉수 한 쌍을 뽑아 넣고 나면
중앙도서관 800대 서가향 향수가 완성된다
대학시절 시 창작 수업을 들으며 썼던 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