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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펀치 Oct 13. 2018

강펀치 In Lisbon - 4

자전거로 여행하는 아름다운 카스카이스

새로운 공간만큼 압도적인 낯섦을 경험하게 하는 게 있을까? 만약 타임머신이 발명되어 완전 다른 시간대로 옮겨갈 수 있다면 그게 가장 크지 않을까 싶으면서도, 지금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큰 일상의 변동은 아마 공간의 변화에서 오지 않을까 싶다.


우리는 대개 낯설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 생각해보면 여행은 타임머신 탑승과도 비슷하다. 떠나지 않았으면 내 세계 속에선 전혀 존재하지 않았을 시간대를 경험하는 거니까. 비행기라는 공간 머신을 타고 날아와 내가 살았어야 할 시간의 전혀 다른 공간에서 숨을 쉬는 것.


그런 여행 중에 간혹 미친 듯이 매료되는 시간을 경험하게 되는데 바로 이 날과, 포즈를 방문한 날이 그랬다.

 

날씨가 이렇게까지 좋을지 모르고.... 수영복을 챙겨오지 않아 슬픈 짐승들..


리스본은 도시가 그렇게 크지 않아 많은 여행자들이 근교 여행을 다녀온다. 신트라나 줄무늬 마을인 코스타 노바, 카스카이스가 대표적인데 우리는 자전거를 타고 돌 수 있는 카스카이스를 택했다.  


기차로 50분 정도 걸리는 카스카이스는 바닷마을이다. European Youth Capital이란 행사를 올해 카스카이스에서 하는 모양인지 안내를 담당하는 사람들이 티셔츠를 입고 서 있었다. 자전거는 역 앞 인포메이션 센터에 가면 빌릴 수 있다. 하루 통으로 빌리는데 7유로 정도였고, 저녁 7시까지 반납을 해야 했다.


자물쇠는 따로 주지 않는다. 우리 바로 앞에서 빌린 오하이오 출신 미국인 둘은 자물쇠가 다 떨어졌다는 이유로 약간 실랑이를 한 듯했다. 나 역시도 경치 구경하던 중에 누가 가져가면 어쩌나 걱정을 안 한 것은 아니지만, 안전하게 반납했다. 포르투갈은 소매치기나 절도에 있어서 비교적 안전한 나라라는 생각.



리스본에 가는 사람이 있다면 카스카이스를 들러 자전거를 타보시라 꼭 추천하고 싶고, 포르투에 가는 사람에겐 무조건 포즈를 가라고 이야기하고 싶다. 카스카이스는 해안가를 따라서 아예 자전거 도로가 나 있는데 우리처럼 빌려 타는 여행객들도 있었지만 자전거를 가져와 본격적으로 자전거 여행을 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오랜만에 타보는 거라 괜찮을까 싶었지만 역시 수영과 자전거는 몸이 기억한다. 페달 몇 번 밟지 않아서 금세 익숙해졌다.


다른 달을 경험해본 것은 아니나 포르투갈 10월 초 날씨는 끝내준다. 물론 일교차가 무지 심하기는 하지만. 낮에는 살짝 더울 정도로 쨍쨍하고(반팔 가능) 저녁에는 가디건과 얇은 패딩까지 가능할 정도로 쌀쌀하다. 가끔 포르투갈과 관련한 글에서 ‘왜 리스본, 포르투를 인생 도시라고 하는지 모르겠다-‘는 후기가 가끔 보이는데 공통적으로 날씨가 좋지 않은 시기에 방문했더라. 화창한 날씨의 포르투갈은 정말 정말 아름답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다. 페달을 구르지 않고 편히 내리막을 달리다 보면 안녕 기다렸지, 하듯 오르막이 온다. 그러면 죽음의 레이스가 시작한다. 하지만 달리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주변의 아름다운 풍경을 보며 달리는 것이 목표다. 힘들면 잠시 멈춰서 아름다운 바다를 바라보거나 갈매기 사진을 찍거나 해도 좋다. 맛있는 생과일주스나 나타는 다시 달릴 수 있는 힘을 주니까. 계획으로는 등대까지 달리기로 했지만 궁금하면 조금 더 가도 괜찮다. 힘들 때 머리를 돌려 되돌아오면 된다. 바다가 있는 자리가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바뀌었다는 것뿐, 가는 길은 멀지만 오는 길은 어차피 금방이다.


지옥의 입 포케스탑에 망나뇽 배치해두고 왔음

카스카이스에서 반나절을 보내며 지금 행복하다! 고 몇 번이고 생각했다. 사라질 것을 알고 느끼는 순간의 꽉 찬 행복에는 완벽한 기쁨과 슬픔이 함께 들어있다. 찬란한 것들은 짧게 빛나니까. 그 오묘한 감정의 슬러시를 이 날 내내 마음껏 마셨다.


돌아오는 길은 금방이었다. 왤까? 늘 돌아오는 길은 금방이다. 자전거를 반납하고 탔던 기차를 타고 돌아와 지난번 줄이 너무 길어 가지 못했던 파스텔 드 벨렘에 나타를 먹으러 갔다. 라떼도 맛있었고 나타도 꿀맛이었다. 꼭 계핏가루를 뿌려 먹어야 함.



너무 환상의 맛을 기대했던 때문인지 처음엔 이것이 리스본 최고의 나타? 싶었는데, 다른 나타들을 먹어보고 나니 왜 최고라고 한 줄 알겠다. 화려하거나 달지 않지만 단아한 맛이 있다. 너무 오버스럽지 않은 차분하고 단정한 맛의 나타. 제발 가시면 많이 드세여. 그리고 다른 것을 먹어본 뒤 드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처음부터 너무 맛있는 걸 먹으면 그 진가를 모르는 법이니까. (나처럼)


식전주라는 체리주 진자냐도 먹고, 주인 할아버지가 불친절하고 메뉴는 해물밥 하나이며 한국인 정모 하기로 유명한 우마도 갔다. 첫날 먹은 새우밥에 비할 수는 없더라. 이상하게 해물밥은 대부분 오징어국 맛이 났다. 제가 오징어국을 별로 안 좋아해서.. 하지만 우마네 할아버지 생각보단 친절했다.  



집에 돌아오는 길에는 오아시스의 원더월에 멱살 잡혀 한 펍에 들어갔다. 밴드가 공연 중이었다. 영국 밴드 음악들을 연주하다 중간중간 포르투갈 가요로 추정되는 떼창곡들을 여럿 불렀고 나는 (또) 소머스비를 마셨다. 하지만 결국 소머스비 워터멜론 맛은 먹지 못하고 돌아갈 것 같다. 왜 아무 데도 안 팝니까?


(라고 쓴 날 저녁 마트에서 워터멜론 맛을 샀다. 정말 알다가도 모를 인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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