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과 희생

by DD Philosophy

우리 집에는 엘리트 운동을 하는 아이가 있다. 그것도 비인기 동계 종목인 아이스하키. 엘리트 운동을 하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다 비슷비슷하겠지만, 우리도 역시나 주말은 라이드로 채워져 있고 중간중간 대회가 있으면 지방 원정도 마다하지 않고 달려가고 있다. 다른 종목과는 다르게 아이스하키라는 종목은 장비를 입고 스틱을 들고 운동을 한다. 장비의 무게가 상당하기 때문에, 아이가 혼자 장비가방을 들고 어디를 다니거나 할 수가 없다. 즉, 부모의 라이드가 필수적인 상황이다. 이런 상황에서 주말과 평일 저녁을 라이드에 쏟아가며 본인의 시간과 노동력을 쏟아붓는 부모들은 아이를 위해 희생을 하는 걸까? 아이가 개인 레슨을 하는 대치동 미니링크장 근처에는 온갖 학원이 밀집해 있다. 주말에는 학원을 라이드 하는 부모들 차로 교통이 마비가 된다. 그 틈을 우리도 껴서 미니 링크장으로 라이드를 하는데, 우리나 다른 부모들이나 본인들을 희생하는 걸까?


예전 드라마인 "나의 아저씨" 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故이선균 배우가 절에 들어간 친구를 찾아가서 가족을 위해 본인이 한 희생들을 이야기하니, 스님이 된 친구가 이렇게 되받아 친다.


"그냥 나 하나 희생하면 인생 그런대로 흘러가겠다 싶었는데"


"희생 같은 소리 하고 있네. 네가 6·25 용사냐. 인마. 희생하게. 열심히 산 거 같은데 이뤄놓은 건 없고 행복하지도 않고. 희생했다 치고 싶겠지. 그렇게 포장하고 싶겠지. 지석이한테 말해봐라. 널 위해서 희생했다고. 욕 나오지. 기분 더럽지. 누가 희생을 원해. 어떤 자식이, 어떤 부모가, 아니 누가 누구한테. 거지 같은 인생들의 자기 합리화 쩐다. 인마"


"다들 그렇게 살아"


"아 그럼 지석이도 그렇게 살라 그래. 그 소리엔 눈에 불나지. 지석이한텐 절대 강요하지 않을 인생, 너한테는 왜 강요해. 너부터 행복해라. 제발. 희생이란 단어는 집어치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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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다. 희생이라고 생각했던 많은 것들이 사실은 나의 선택이었다. 아이를 낳은 것도, 이 아이가 원하는 엘리트 운동을 시키고 있는 것도 우리 부모들의 선택이었다. 왜 우리는 이걸 몰랐을까? 자식을 위한 희생이 아니고, 나의 선택이 이런 상황을 만들고 있었다는 것을. 다만, 이 선택이 훗날 후회로 남지 않기 위해 현재에 충실하려 노력하고 있다는 것. 그 노력이 너무 힘들어 희생이라는 단어로 포장을 하고 있었다는 것. 그러면서 다른 부모들도 나랑 그다지 다르지 않다며 자기 위로를 하고 있었다는 것. 희생이라는 단어로 포장을 해야 나의 마음이 편해졌을까? 나의 선택이 나를 이런 상황으로 몰고 있다는 것을 끝내 인정하기 싫어서였을까? 희생이 아니라 선택이었기 때문에, 내가 아이의 운동에 대해 이래라저래라 할 수가 없는 것이다. 부모로서 할 일은 응원해 주고, 더 잘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고, 자신감을 불어넣어 주는 일. 너 왜 이랬어, 왜 저랬어가 아니라, 이런 부분은 좋았다, 저런 부분은 좋았다라고 하면서 용기를 넣어주는 일. 비단 엘리트 운동을 하는 아이뿐만 아니라 세상 모든 아이에게 적용할 수 있는 이야기. 희생이 아니라 선택이기 때문에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 일. 그게 요새 느끼는 부모로서의 숙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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