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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동 Feb 19. 2022

불장난

갑자기 팔이 꺾인다. 뼈가 아니라 무슨 나무 조각나듯 부서진다. 넷플릭스를 후다닥 껐다. 욕을 안 하려고 했는데 갑자기 나올 것 같았다. 이번 주 신작은 영 아닌 듯싶다. 다시 컴퓨터를 켠다. 에어 팟에서는 불장난이라는 곡이 나온다. '우리 사랑은 불장난-'. 한때 유명했던 곡이다. 물론 블랙핑크는 지금도 인기가 많다. 예전엔 별로 안 당겼는데 지금은 로제의 목소리 톤이 너무 좋아서 자주 듣는다. ‘끌 수 없어, 우리 사랑은 불장난’ 이 부분 들으면 들을수록 너무 듣기 편하다. 왜 블랙핑크가 데뷔하던 2016년엔 몰랐지? 시간이 지나면서 내 사고방식이 변한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5년이나 지났다. 취향이 변하는 건 당연한 것 같다. 그와 유사하게 사람 생각은 바뀌는 것 역시 마찬가지다. 어느 때는 때려죽이고 싶게 미웠던 사람을 어느 정돈 이해하고 미안함을 가질 수 있게 되거나, 날 행복하게 만들어줬던 때가 단지 낭비였다는 걸 아는 경우는 부지기수다. 근데 이 경우가 단발적으로 쨘 하고 끝나는 경우는 없는 것 같다. 항상 보면 비슷한 상황에 형태가 변해서 나를 찾아온다. 그리고 그게 반복되면 생각이 바뀐다. 무슨 말이냐면. 언제는 '쟤 이상한 애네' 싶던 것이 나의 흑역사로 변하는 경우가 다수라는 뜻이다. 그때 인간관계에 심하게 서투른 나는 ‘너랑 친구 먹고 싶어’ 못해서 너무나도 부끄러운 흑역사를 만든 기억이 있다. 이 기억 덕에 과거로 넘어가면 더 창피한 무언가가 있다는 것도 깨닫게 된다. 


2020년.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난 영어 잘하고 싶다. 고등학교 때 정복하지 못한 과목이라 아직도 욕심이 있다. 그때 생각에 영어에 꽂혀있던 나는 학교에서 진행하는 원어민 회화 프로그램에 가서 열정을 불태웠다. 거기서 동갑의 친구를 하나 알게 됐는데, 그 친구는 나만 아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이걸 안다고? 싶어 신기했다. 다른 특징. <라라랜드>를 재밌게 봤었다고 했었다. 그리고 제일 중요한 건 영어를 엄청나게 잘했으며, 내가 20대 때 했던 활동들과 주요 인물들을 다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때는 ‘얘랑 친해졌으면 좋겠다'라고만 생각했다. 그리고 그 마음의 결론을 말하자면, 아직도 그 생각이 날 때 이불을 발로 뻥뻥 차 버린다. 난 먼저 다가가는 거 진짜 못하겠다. 소심한 것도 문제인데 대화도 잘 못한다. 겉보기와는 다르게 소심해서 말을 능숙하게 못 하는 것이다. 그래서 친해지고 싶은 마음을 이상하게 표현했다. 난 그 친구가 인스타그램 스토리를 올릴 때 거의 비슷하게 따라한 적이 있다. 이유가 뭐냐고? 없다. 가슴에 손을 얹고 말해보자면 그냥 말 거는걸 못해서 그런 식으로 한 것이다. 공감대가 있어야 친해지는 건데, 말을 못 거니 그런 기행(?)을 한 것이다. 예를 들어, 그 친구의 최애 영화배우였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에 대해 뜬금없이 스토리로 올리기도 했고 또 나의 본거지인 중앙로(원도심)에 대한 내용도 자주 올리곤 했다. - 그 친구 역시 이 쪽에 관심이 많았다 - 이 외에도 비슷하게 올렸던 경험이 몇 개 있다. <라라랜드>의 엔딩신이나 그 친구가 유럽 다녀왔단 사진을 올렸던 적도 몇 번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왜 그랬는지 모르겠다. 내 어느 쪽의 공감능력이 구리지 않으면 도저히 할 법한 행동이 아닌 것이다. 만약 누가 내 인스타그램 스토리 올리는 방식을 비슷하게 따라 하면 어떤 기분일까? 당연히 '이 놈 뭐지' 싶겠지. 나 같아도 싫을 것이다. 당연히 팔로우가 끊겼고 며칠은 신경 안 썼다. 그리고 몇 달이 더 지나고 나서 내가 얼마나 바보 같은 행동을 했는지 알게 됐다.  이 덕에 나는 역시 배워야 할 것들이 많은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 



지금 글을 쓰는 이 순간도 너무 창피하다. 지금은 목소리도 기억 안나는 사람이지만 그 친구는 꼭 잘 살았으면 좋겠다. 시간이 몇 달 안 지났을 때 이런 바보 같은 기억을 갖고 있다는 것이 너무 부끄러웠다. 그러나 이제는 1년이나 지났으므로 이게 나의 스텝업에 도움을 줬다고 결론지을 수 있다. 부디 나의 이 흑역사가 여기에서 멈추길 바란다. 나만 이 이불에 불장난하는 창피함만 계속되는 거 같지만 그래도 어떡해, 계속 살아야지 ㅋㅋ 이런 창피함이 있어야 더 재미있게 살 수 있는거 아니겠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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