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다 악당이 되었나 (2)

발단-절정-결말-위기, 바로 절정으로

by 유동


발걸음을 옮긴다. 딱히 할 말은 없었다. 아무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때는 6월 12일. 휴가를 냈고 심지어 이젠 진단서를 굳이 챙길 이유마저 없다. 선생님이 말한다. "이제 2주 남았나? 시간 금방 가지?" "아니요. 시간은 안 가는 것 같아요." "안녕히 계세요." 문을 연다. 드르르륵. 간호사님이 와서 다음 진료일을 잡는다. "8월 6일에 오면 되세요." "네." 맞아. 이제 2주 남았다. 시간 금방 갔던 것 같기도 하다. 오늘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일. 진료를 받은 지는 이제 4년 차가 됐다.


난 그날을 오랫동안 기다려왔다. 첫 진료일을 아직도 정확히 날짜까지 기억한다. 2019년 5월 31일. 이 날은 나에게 특별한 날이다. 그때 나에게 뭔가 문제가 있었다는 건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전 해에 쳤던 사고는 정말 손발가락을 죄다 자르고 싶을 정도로 창피했다. 안 그래도 떠오르는 부정적인 생각에 후회와 죄책감까지 있으니 내 몸에 신체화증상이 안 일어나고는 못 배긴다. 실제로 그때 전후로 위경련이 올라오곤 했었다. 시야가 빙글빙글 도는 느낌이 너무 싫었다. 지옥을 체감했다. 그때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었다. 총 4개월. 한 달에 200시간을 목표로 하는 일이었다. 신체화증상으로 인한 설사가 있었다. 사람들을 만날 때 두근거리는 긴장감이 있었다. 이 두 가지가 이유가 되어 화장실을 좀 자주 갔다. 자기 전까지는 화장실에 있다가 침대에 누우면 세상 끝나는 걸 기다리고 있다. 2019년 5월 31일이 오기 전까지의 나는 그야말로 살아있는 지옥도를 겪는 듯했다. 누구를 탓할 수도 없었다. 그러기엔 그전 해에 내가 누군가와 있던 일이 생각났다. 그게 무슨 공소시효가 필요한 범죄사실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죄의식이 나를 벌주는 듯했다.



첫 진료일. 아르바이트 ‘못 간다’ 말하고 병원으로 향했다. “안녕하세요.” “어떤 일로 왔어요?” “음..” 할 말이 없었다. 어떤 일로 왔냐는 그 말이 나에겐 너무 어려웠다. “저.. 제가 안 좋은 일이 있었는데요.” 첫 운을 뗀다. 주절주절 떠든다. 제가 10대 때 어떤 일이 있었는데요. 애들이 어땠고요. 저쩠고요. 사실 그때 무슨 말을 했는지도 기억 안 난다. 창피한 기억이라 지워버렸는지도. 다만 확실한 건 별의별 이야기를 다 했다는 점이다. 내가 꼭 책을 내겠다는 말도 했었다. 그 책 이름이 뭐였지? 그렇게 거의 5분은 혼자 오디오를 채웠다. 말하다 눈물이 났다. 주절주절 혼자 떠들고 있을 때 주치의 선생님이 말을 잘랐다. “잠깐!” “네?” “말을 좀 정리하고 했으면 하는데. 너무 두서없는 것 아닌가?”


2019년 5월 31일의 나. 이 날을 역사적으로 기록하고 싶어 캡쳐도 했다.


두서없다고? 내가 잘못 들은 건가? 시간이 기억을 마모시켜서 많은 것을 지워버렸다. 하지만 그때 그 주치의 선생님이 그런 말을 했고 그 이후의 반응은 무슨 영화를 찍은 것처럼 머릿속에서 재생된다. “네?” “말 어렵나? 말 정리해서 하라고.” 지금도 존댓말 투를 유지하는 주치의 선생님이다. 정말 두서없어서 답답하셨던 듯하다. "어.. 제가 안 좋은 일을 겪어서.." "아니. 방금 했던 말이잖아. 다음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시간 아깝지 않나? 여기 다른 과 XXX 선생님이 치료를 요한다고 적었네. 이거 말하면 되는 거 아닌가?" “네..” “그래. 그럼 됐네. 일단 더 할 말 있나?” “아니요.” “일단 기본 용량 처방하죠.” 이게 맞나 싶어 당황한 채로 진료실을 나온다. 간호사님이 보인다. “아니. Xxx 선생님 있잖아요. 원래 저렇게 공격적으로 말씀하시나요?” “교수님 안 맞으면 바꿔드려요?” “아니요. 힘들면 말씀드릴게요.” 분명히 내가 힘든 일을 겪은 것들이 녹음기 재생하듯 나와야 하는데 시작도 하기 전에 끊겼다. 그리고 지금 2023년에 책 읽는 일을 다시 취미 붙여서 다행이지 ‘두서없다’라는 말하기가 뭔지 체감을 못했다. 뭐가 안 두서없이 말하는지 모르고 있다는 의미이다(가끔 내가 아직도 그럴까 봐 무섭기도 하다). 뭐 저런 사람이 다 있지? 속으로 혼잣말 구시렁거리다 집에 왔다.


버스 탔던 때 했던 생각도 생생하다. ‘처음 만난 사람한테 너무하네. 의사 바꿔달라고 할까’ 하지만 뭐랄까 마음에서 무언가가 가로막았다. 전 해, 누군가와 다퉜던 일이 생각났다. 그리고 대외활동 하던 애들과 만났던 일들이 떠올랐다. 또 당시에 일하던 편의점도 생각이 났다. 모든 곳에서 문제를 일으킬 수 없다. 점장 주인은 대놓고 주휴수당을 빼먹으려고 들었다. 바로 나가고 싶지만 그럴 수 없었다. 그리고 지금 당장 정신과 주치의 선생님을 바꾼다면 난 그냥 세상에 어울릴 생각이 없는 인간으로 봐도 무방하다고 보는 게 맞지 않을까 싶었다. 23년 인생에서 처음이었다. 극복하고 싶었다. 내가 스트레스를 유발하는 인간이더라도 내가 원하는 걸 얻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시간이 4년이 지났다. 주치의 선생님은 내가 겪었던 부조리한 일들을 알고 있다. 그리고 영원히 내 입에서 나오지 않을 것 같았던 스물둘의 나에 대한 이야기도 알고 계시다. 당연히 선생님은 나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준비를 하고 계셨다. 또 그 누구에게도 받을 수 없었던 나의 성장을 이뤄주셨다. 다만 쓸데없는 이야기가 싫으셨을 뿐이다. 그리고 나의 전적인 뇌피셜에 근거해 써보자면 나를 악당으로 변하게 만들고 싶었던 것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그 이후의 선생님이 하는 말들이 그랬다. “그래서. 지금 네 기분이 어떤데?” 현재의 나만 중요하게 생각했다. 과거의 내가 어쨌든 간에 지금 내가 원하는 것이 뭐고 어떤 생각을 가지는지만 물어보셨다.



난 이게 악당의 소양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악당이라고 함은 ‘조커’나 ‘한스 린다’ ‘안톤 쉬거‘ ’면정학’ 같은 범죄자 캐릭터들을 생각한다. 그것은 범죄자지 악당이 아니다. 현대사회에서 범죄 저지르면 뭐가 되기 이전에 범죄자가 된다. 나의 주치의 선생님은 나를 범죄자로 만들지 않았다. 다만 악당으로 만들었다. 그 무엇을 겪고 끝까지 살아남게 도와줬다. 네 기분이 뭐고, 네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물었다. 어떤 과정을 겪든 지금의 너만 중요하다는 것. 이건 공감의 영역 이전에 건넬 수 있는 위로라는 것. 결국 살아남아 끝까지 자리를 지켜 원하는 걸 얻는 것이 진정한 승자라는 것이다. 그게 처음 보는 사람에게 '무례하다'라는 생각을 혼자 갖게 만들어도 필요 없다. 난 결국 이 분 덕에 내 과거에게 승자는 아니더라도 진 인간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 깨달음은 지금까지도 유효하다. 이는 6월 12일 있던 진료에서 다시 느낄 수 있다. “이제 2주 남았나? 시간 금방 갔네. 끝나니까 별 거 아니지?"


오늘 사실 나쁜 행동을 한 것 같다.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일은 아니다. 아니 상처 주는 일이 맞을지도 모르겠다. 경찰서에 다녀왔다. 왠지 모르게 나는 오늘 즐겁다고 느꼈다. 취업하고 싶어서 공부할 게 좀 남아있긴 했다. 하지만 그 공부하는 재미보다 이 쾌감이 더 컸다. 누군가 이 방식을 이기적이라고 해도 뭐 그게 중요하겠어. 경찰서 갈 짓을 안 하는게 문제인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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