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쩌다 악당이 되었나 (3)

나 돈 좋아하네

by 유동


3만 원. 이 3만 원에 눈에 선했다. 경찰서로 걸어가는 길. 새로 업체를 알아봐야 한다는 게 귀찮았지만 어쩔 수 없다. 원래 돈 건드리는 놈이 제일 나쁜 놈이다. 불가해한 오해가 있었겠거니 싶기도 하다. 하지만 의미 없다. 3만 원 앞에서 세상 자애로운 사람인 척하다간 코 베어가기 십상이다. 내가 노예 생활 해서 얻어낸 돈. 그거 뺏어가는 게 제일 나쁘지.


별안간에 인생에서 가장 좋았던 때가 언제냐?라고 묻는다면 약간 주저하다 '2019년'이라고 답한다. 유럽여행을 다녀왔기 때문에다. 또 제주에서 나고 자라면서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갈 일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거의 처음으로 비행기를 타고 서울에 '단지 놀러' 갔었으니 기억에 남는 게 당연하다. 그때가 23살이었다. 이 23살까지 아르바이트의 중요성을 체감하지 못했다. 뭐 내가 옷을 신경 써서 입길했나. 친구들이랑 놀러 가길 좋아했나. 여행이 취미길 했나?


돈을 모을 일도 크게 벌 일도 없었으니 어쩌면 당연할 결과일지도. 거하게 헛스윙 한방치고 난 다음 해였다. 새로운 시작이 필요했던 나. 여행을 가고 싶었다. 안 해본 걸 하는 게 좋겠어.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때는 일 더 못했다. 하지만 이 악물고 찾아보기로 한다. 당시 정권이 바뀌고 시급과 주휴수당이 인상이 되고 난 다음 직후였다. 한 번에 단기간으로 팍 버는 일이 별로 없었다. 포기해야 하나 싶었지만 그때 눈앞에 한 공고가 보였다.


편의점 아르바이트 하던 곳.


역시 난 행운아다. 집 근처였다. 걸어서 10분 거리쯤? 근무지는 편의점이었다. 편의점에 10분 거리면 할 만 하지. 달려가서 면접 본다. 편의점 일은 쉬웠다. 그전에 해봤으니까. 좀 걸리는 게 있긴 했다. 하루에 10시간씩 일해야 했다. 하지만 대학 휴학하고 난 다음의 나는 뭐든 못할 것이 없었다. 면접을 하도 떨어지고 다녀서 더 절실한 것도 있긴 했다. 늦은 봄에는 꼭 비행기를 타야지. 다음부터 나오라는 말에 신났다.


새벽 다섯 시에 일어난다. 여기까진 괜찮았다. 눈 비비면서 아침에 달려간다. 한 10분 일찍 도착해서 5분 엎드려 있으면 졸린 기운이 사라진다. 아침에 물건 온 것도 체크해야 한다. 새벽 5시에 사람 와봤자 2시간 동안 한 2명 온다. 그럼 물건 금방 센다. 하지만 일이 여기서 끝날리는 없다. 포스기 다루면서 계산도 해야 하지, 금고 체크도 해야 하지, 매장 청소도 해야 하지.. 그때 생각해 보면 ‘에이 이거 그렇게 어렵지 않네’ 싶었지만 여러모로 기 빨릴 일이 많았던 듯하다. 지금에서야 ‘군필자’라는 당당한 타이틀이 있지만 아무래도 23살의 나는 꼼꼼한 일처리랑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다. 그런데 이러니 저러니 해도 나에게 가장 고역이었던 건 손님을 대하는 일이었다. 아침 7시에 술 먹고 오는 사람들은 뭐 이쁘게만 대답하면 큰 문제 아니다. 글쓴이가 제일 어려워했던 건 나보다 어린 사람들이었다. 초등학생, 중학생, 고등학생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난도가 높았다. 어린애들은 떼거지로 몰려와서 문제고, 고등학생들 몇몇은 거짓말을 해서 담배를 사려고 했던 게 문제였다. 솔직히 지금 관점에서 보면 별 일 아니다. 생각은 바뀌기 나름이다. 그때는 사람 만나는 게 가장 어려웠다. 겉으로는 웃으면서 ‘안녕하세요~’하지만 마음 안에서는 두근두근 떨렸다. 다행히 점장이 좋은 분 같아서 다행이었다. 가게를 두 곳 운영한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가? 있는 사람이 확실히 여유로운 것 같다. 칠칠치 못했던 나. 시재가 맞지 않은 경우가 종종 있었다. 뭐 4만 원씩 차이 나는 건 아니었다. 작은 수긴 해도 그냥 넘어가는 일이 많았다. 심지어 물건 들어오는 장부를 잃어버려도 그냥 넘어갔다.


처음 한 달은 그럭저럭 괜찮았다. 편의점 일이라는 게 그렇게 어려운 건 아니니까. 다만 나를 힘들게 하는 건 따로 있었다. 바로 교대 아르바이트생을 만나는 일이다. “저기요!” 소리 한 번 지르는 게 기본이었다. 몇 가지 없는 기억. 말을 엄청 직설적으로 했다. 일을 되게 잘했다. 뭔가 되게 대들고 싶게 일을 해도 할 일을 잘하니 뭐라 못했다. 만나기만 하면 서로 삐그덕 댔다. “그쪽이 일을 못하니까 제가 이렇게 하는 거죠!” 화가 막 쌓였던 것 같다. 하지만 한마디 하지 못했다. 소심한 나. 맨날 집에 와서 교대할 때 선 넘으면 뭐라 해야지 되뇌었다. 점장에게 한 번 물은 적도 있다. "그 사람 원래 그래요?"


그런데 문제가 벌어졌다. 나에게 있는 문제는 아니었다. 그때 처음으로 날 ‘오빠’라고 불렀다. “오빠. 오빠도 그래요?” “네?” “점장 있잖아요. 돈 적게 주는 것 같던데. 사실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난 이 편의점에 들어온 지 한 달 됐기에 ‘수습기간’이 적용됐다. 그리고 일단 사람이 좋아 보였다고. “에이. 다 이유가 있겠죠.” 하지만 마음 한 편으로는 일부러 그러는 게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시간 지나면 다시 올려줄 거야. 아마 이번 달만 그럴걸? 점장 분명 좋은 사람이었다고. 두 달, 세 달이 지난다. 내 실수가 많아진다. 어쩔 때는 늦기도 했고, 시재를 틀리는 일도 종종 있었다. 그러면 안 되지만 졸기도 했었다. 아니 열 시간씩 세 달 동안 일하면 쉽지 않다고. 그리고 사람들을 만나며 누적되는 스트레스가 점점 심해졌다. 화장실을 하루에 열 번 가기도 했었다. 손님들을 만나며 마모되는 그런 게 있었다. 하지만 이런 시기에도 재미있는 일은 늘 있기 마련이다. 다행히 이런저런 글을 쓸 기회가 있어 시간은 금방 갔다. 지금 생각하면 참 감사한 일이다. 한 달에 190여 시간씩 일하면 정신이 피폐해져야 정상이다. 3달 동안 590시간 일 하고 ‘이제 그만둬야지’ 마음을 먹었다. 돈이 모자랐다. 유럽 여행을 가고 싶었기 때문에 모았던 돈. 정작 원했던 게 없었으니 한 달 더 버텨야 했다.


점점 하기 싫었다. 그래서 나도 23살인 티를 냈다. 역시 마모된 기억. 관성적으로 일했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최소한으로 할 일은 했다. 일이 벌어졌다. 떼거지로 몰려든 아이들. 나는 ‘안녕하세요-‘ 평범하게 인사했다. 아이들이 컵라면을 끓여 먹었다. 내 눈으로 본 상황이었다. 뜨거운 물이 담긴 컵라면 그대로 어떤 애가 자기 친구에게 던졌다. 아이들끼리는 분명 장난이었다. 서로 까르르 웃었고, ‘미친놈’이라며 깔깔거렸다. “어이! 그러면 안 돼!” 라면 건더기를 치우는 걸 떠나 이건 좀 위험하지 않나 생각했다. “다음부터 그러면 못 오게 할 거예요!” “근데, 아저씨는 왜 항상 우리 보면 인상 써요?” 몇 번 온 애들이긴 했다. 하지만 악감정을 가질 이유가 없다. "아. 그냥 다 먹었으면 가라 너네." 소리 한 번 지르고 말았다.



두 시간이 지났다. 점장에게 전화가 왔다. 오전 근무만 하고 병원에 가야 했기에 난 퇴근한 상황이었다. "야. 너 왜 애들한테 욕 했어?" "네? 욕 안 했는데요?" "뭘 안 하긴 안 해. 너 애들한테 욕 했다며." 아예 비슷한 기억조차 없으니 무슨 말인지 몰랐다. "너 무슨 오늘 애들이 조금 장난친 것 가지고 뭐라 했다며. 야. 이 싹수없는 xx야. 이럴 땐 죄송하다고 하는 거야. 너 왜 그리고 화장실은 왜 그리 자주 가는 거야? 전자는 그냥 아니니까 할 말 많지만 후자는 반박할 수 없었다. 자의든 타의든 그때 화장실에 자주 갔던 건 사실이니까. 이 말을 듣자마자 여기에서의 내 시간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사실 생각해 보면 내가 어디에서 일하는 것이 여기가 처음이었다. 근로장학생으로 일한 적은 있었지만 뭐 알바라고 보긴 좀 어려우니까 아무튼 이게 처음이라고 친다. 돈 모아놓은 걸 봤다. 아직 부족해. 확실히 부족하다. 갑자기 그 같이 일하던 친구가 생각났다. 오빠. 돈 적게 받지 않았어요?


당시 근무일지.


그 말이 생각나고 난 다음의 기분 모든 것을 기억한다. 갑자기 심장이 쾅쾅 뛰는 느낌. 사실 4개월쯤 일하다 보면 한 달에 190시간 일하는 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일인지 체감하게 된다. 아무리 내가 급했다고 해도 하루에 10시간씩은 쉽지 않다. 새벽 4시 30분 즈음에 일어나서 오후 4시까지 아무것도 안 하고 핸드폰질만 하다 가는 거다. 책 읽는 취미가 있길 했나 뭘 했나. 그 이후에 여러 이벤트가 있긴 했지만 190시간 동안 시급 하나만 보고 아무것도 안 하기는 쉽지 않았다. 지금이야 여러 일을 했으니 어떤 업무강도가 와도 그냥 한다. 이 4년이라는 세월이 지나지 않은 첫 아르바이트의 23살 애기한텐 그게 어려웠다. 그동안 쌓아놨던 점장에 대한 불만이 서서히 쌓였다. 지 혼자만 착한 척하고 남의 말은 들으려고를 안 해. 그리고 일단 그전에 어떤 좋은 일을 했다 치더라도 주휴수당 안 준건 정말 나쁜 짓이다. 아니 사실 그 ‘돈 안 줬다’ 빼고는 뭐 생각나는 게 없었다. 확실히 신났다. 그만두기로 한 날 전까지 최대한 자료를 모으기 시작한다. 근무일지가 있었다. 근무일지를 찍었다. 통장에 있는 입금내역서를 찍어 사본으로 저장했다. 근로계약서도 근로자가 원래 한 부 가져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이 문제도 있었어서 ‘없다’라는 걸 어필해야 했다.


이런저런 준비물을 다 챙겨 온 날이었다. 아마 이 교대도 마지막이 될 테지. 같이 일하는 친구가 “오빠 오늘 마지막이에요?”라고 질문했다. “네.” “오빠 근데 일 진짜 잘하는 거 알아요?” 갑자기 들어오는 칭찬이었다. 그동안 그렇게 큰 대화를 하지 않았다. “제가 이런 말 잘 못하거든요. 그래서 말 못 했는데 오빠 진짜 따뜻한 사람이었어서 좋았어요. 그런데, 오빠 그 돈 못 받은 거 어떻게 할 거예요?” 생각지도 못한 칭찬에 놀랐다. 그리고 더 예상하지 못했던 속마음이 들켜버렸다. “노동청에 가려고요.” “헐. 오빠 그거 어떻게 준비해요?” “그거 노동청에 전화해서 준비물 챙기고 자료 갖고 가면 돼요. 그렇게 하면 된다던데?” “아. 고마워요. 제가 이런 거 배울 데가 없어서. 검정고시 준비하고 있거든요.” “하하.” “점장도 알아요. 저 검정고시 준비하는 거. 근데 오빠. 전 오빠 뭘 하든 다 잘할 사람이었다고 생각해요. 처음에 투닥거리긴 했어도 오빠 적응하니까 뭐든 다 잘하더구먼. 나중에 밥 같이 먹어요.” “감사합니다.” 왠지 모르게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유달리 까칠했던 사람에게 따뜻한 온기를 받아서일까. 왠지 모르게 욕을 많이 하던 사람이어서 그랬던 걸까. 알 수 없지만 그때의 나에겐 ‘이게 잘하고 있는 걸까’라는 확신이 필요했을지도. 그 친구와의 대화를 끝내고 고민하던 것들이 명확해졌다. 마지막까지 고민하고 있었다. 노동청까지 가서 돈을 받는다는 것이, 남에게 큰 피해를 주는 일 같아서 내키지 않았다. 그래. 가야겠어. 이 친구처럼 나도 나를 위한 무언가가 있어야지. 솔직해도 큰 문제없다. 나는 괜찮은 사람이다. 그리고 이 괜찮은 판단을 위해서라면 ‘이 친구가 주는 온기’ 같은 것만 있다면 충분하다.


노동청에 가서 신고하는 일은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그 신고하고 난 다음이 너무 즐거웠다. 심장이 쿵쿵 뛰는 기분.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났다. 내 근태가 과연 좋았을까 생각했다. 아닐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못 받은 돈이 먼저 생각났다. 갑자기 근태 따위가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못 받은 돈은 백만 원 대였다. 그 백만 원 대가 점장 돈에 한 번에 쭉 빠진다는 그 느낌이 너무 행복했다. 지금 내 계좌에 150만 원이 있다. 이거 한 번에 다 털린다고 생각하면 너무 기분 더럽다. 그걸 그 양반이 겪는다니 발걸음이 가벼워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내 것을 지킨다는 것이 그때가 처음이었다. 내 걸 지킨다는 쾌감 그건 아무 말로도 설명할 수 없다. 노동청에 가고 오래되지 않아 전화 두 통이 걸렸다. 하지만 그냥 안 받았다. 원래 같으면 서로 대화해서 푸는 게 맞겠지만 ‘점장이 기분 더러울 것’을 고민하니 ‘그냥 안 받는 것’이 낫다는 결론을 내렸다. 부재중 세 통 찍히고 100만 원이 입금되는 그날. 난 확실히 내가 원하는 걸 얻기 위해서는 목적, 수단 가리지 않는 편이 나에게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가지기 위해서 부숴버리는 거다. 남에게 먼저 피해 주지 않는 선에서, 법을 어기지 않는 선이라면 뭐든 다 하는 게 맞다. 어차피 쟁취하고 난 다음의 나만 세상이 기억하니까. 순박하게 생긴 나, 검정고시 준비하고 있던 아르바이트생을 고용한 이유가 뭔지 알 것 같은 27살. 4년이 지난 지금 나의 흑화가 그 일에 있었다는 점은 유렵여행의 전초전이었다는 것 아니어도 큰 성장 터닝포인트가 되었다. 그래서 이런 비슷한 일이 주변인들에게 있을 때마다 ‘그냥 신고해라’라고 조언한다.


화요일에 수사관님을 만난다. 3만 원 갖고 뭐 하나 싶지만 그건 아무래도 중요한 게 아니다. 경찰서에 가서 처음 진정서를 쓸 때가 기억난다. 내 걸 건들면 이렇게라도 지켜야 하는 것이다. 그게 남자다운 거라고 스스로를 믿고 있다. 내 걸 지키려고 노력해야 사람도 내 곁에 있는 거고. 돈도 나한테 있는 거고. 내 미래도 잘 되는 거겠지. 곁에 날 지켜주는 사랑만 있다면 내가 원하는 거 지켜도 큰 문제가 없다. 어차피 나 같은 사람이 있어야 따뜻한 문제해결 방식도 의미가 있는 것이다. 난 나쁜 놈이니까 내 돈 뺏어간 놈들 다 혼내주고 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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