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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힘들어요. 1

회사

by 영영

사람을 대할 때 내 감정은 드러내지 않고 상대방을 파악하며 그 사람이 원하는 대로 맞추는 것이 나에게는 당연했다. 사람을 파악한다는 게 절대 쉬운 일은 아니지만 어느 정도 대화를 나누고 보면 나만의 기준에서 그 사람의 성격이나 성향이 보였고 이러한 부분들은 대부분 잘 들어맞았던 것 같다. 나를 좋은 사람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나 당신을 파악하고 상대하는 거예요.'라고 말할 수 없기에 늘 웃어넘기고는 했다. 남들에게 난 '좋은 사람'이었는데 웃기게도 그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라는 사람은 조금씩 달랐다.


들었던 칭찬을 나열하자면 나는 참 다정하고 사람을 좋아하는 성격이라 허울 없이 지낼 수 있는데 너무 현실적이고 깊이 다가갈 수 없는 벽이 있는 동시에 늘 웃고 밝은 사람이라 주변이 환해지는데 항상 차분하고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르겠는 어려운 사람이다.


조합 불가능한 말들의 연속이지만 내가 개개인의 성격에 맞춰 행동했기 때문에 모두가 나를 다르게 생각할 수밖에 없다는 결론이다. 그래서 그런지 나는 사람을 만나는 게 정말이지 피곤하다. 요즘은 MBTI 중 사람에게 에너지를 얻는 외향적인 E, 혼자만의 시간으로 에너지를 찾는 내향적인 I로 많이 나누는데 주변에서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나는 묻고 따질 것도 없이 I 중에서 I라고 할 수 있다.


이런 나의 성격에 불만은 없었다. 오히려 나의 강점이라고 생각하며 지냈다. 인간관계에 있어서 떠나는 사람을 붙잡지 않고 오는 사람을 막지 않았다. 어떤 사람이 무슨 행동을 해도 '그럴 수 있지' 하며 넘어갈 수 있었는데 회사를 다니면서는 모든 게 망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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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럴 수 있지'라는 생각은 '어떻게 이럴 수 있지'로 변해갔고, 어떤 사람인지 파악할 수 있는 강점은 단점이 되어갔다. 수도 없이 많은 일들이 벌어졌지만 꿋꿋하게 버텼다. 내 탓이 아니니까, 그렇다고 저 사람 탓인가? 하면 그것도 애매하다. 내가 더 능력 있기 때문에 그런 거겠지. 아무튼 긍정적인 생각은 할 수 있는 대로 해가며 스스로 합리화를 시켰다.


참고 참다 펑 터진 날이 있었는데, 내가 특히나 늘 위태롭게 참고 있던 새로 들어온 직원과의 일이다. 고작 숫자를 세는 일이었다. 재고의 숫자를 세어 나에게 알려달라고 했다. 주된 업무는 아니었지만 아주 사소하고 간단한 일이기에 재고 조사 후 해야 하는 중요한 업무는 내가 맡는 게 당연하다 생각하고 간단한 업무를 주었다. 그 숫자의 폭도 고작 1~20 정도. 그런데 그걸 잘못 세어 나에게 전달해 사달이 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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