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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힘들어요. 2

퇴사

by 영영

수습은 늘 나의 몫이었고 알아주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나의 업무는 늘어만 갔고, 그 누구도, 그 당사자도 뭐가 문제인지 모르는 탓에 온전한 내 몫이 되었다. '모르겠어요.', '못 하겠어요.'라는 말을 들을 때마다 말이 턱 턱 막혔지만 당장 시간 내에 완성하는 것이 먼저였다. 내가 숨을 참으며 일을 할 동안 그 사람은 여유로운 하루를 보내는 것만 같이 보였다. 그러니 나는 항상 억울했고, 그것들이 쌓여 내 감정을 컨트롤할 수 없을 지경이 되었다.


내 나름 티도 내보고, 이야기도 해보았지만 달라지는 것은 없었다. 처음 1-2년은 잘하고 싶은 마음에, 애정을 가지고 참았고 3년이 될 때쯤에는 그럼에도 직원들을 보다 잘 챙겨 주고자 하는 마음이 느껴져서 버텼다. 그렇게 4년이 되었을 때 나는 온갖 일들에 지쳐있었고 더 이상 이곳에 할애할 신경이 남아있지 않았다. 문득 여기서 더 이상 버티다가는 내 정신이 다 죽어버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위태로운 시기에 숨 쉴 틈조차도 없으니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것이다. 숨은 쉬어야겠다. 회사를 그만두어야겠다. 이렇게 대책 없이 행동해도 되는 걸까 싶었지만 이런 걱정도 오래가지 않았다. 어떤 틈이라도 없으면 정말 숨이 막혀 죽을 것 같았기 때문에. 그 어떤 상황에서도 현실을 따지던 내가 살면서 처음으로 이성을 완전히 무시한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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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에서의 일은 많았지만 그중에서도 감사한 사람이 있었다. 그런데 그 사람에게까지 뒤통수를 맞을 줄이야. 물론 내 입장을 모르기 때문에 그랬을 거라 위로하지만, 뒤에서 조용히 떠나는 내 탓을 했다는 걸 우연히 알 게 되었을 때는 오랜만에 인간관계에서 회의감을 느꼈다. 나는 무엇을 위해 이토록 열심히 다녔을까. 이제 끝이라는 후련함과 함께 멍청할 만큼 미련했던 내가 후회스러웠다.


많은 일을 겪어왔지만 이토록 대책 없던 적은 처음이라 고작 며칠이 지났을 뿐이지만 하루에 수십 번도 심장이 끝도 없이 두근대고 생각이 터질 듯이 많아졌다. 그 집단을 벗어난 것은 한 번도 후회되지 않으면서도, 이 상황에서 이런 결정이 옳았을까 몇 번이나 되짚게 되었다. 보통 퇴사 후 길게는 몇 개월 휴식을 갖기도 한다는데 당장 나에게 휴식은 사치인 것 같았다. 어렵지만 완벽했던 수술, 그 시간을 이겨낸 동생이 며칠 지나지 않아 다른 문제가 생겼다. 이 당시 나는, 그리고 동생과 엄마는 남들과는 다른 너무 긴 하루를 보내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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