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하는 나의 삶
애증에서 모음 하나만 바꾸면 애정이 된다. 딱 생각하나 만 바꾸기로 했다. 멋지게 말하면 생각의 전환, 뭐 그런 거.
나는 꽤나 오래 우울하고 힘든 하루를 버티며 지냈다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 사이사이 순간들에 고마운 사람들이 있었다. 초등학교 때는 잦은 이사 때문에 친구들과 어울릴만하면 전학을 가곤 했다. 안 그래도 소심한 편이었던 나는(지금 생각해 보면 이때부터도 예민했던 것 같다.) 새로운 학교, 처음 보는 친구들에게 먼저 다가가기 어려워했는데 고맙게도 항상 주변에서 나에게 손을 내밀어 주었다. 중학교를 입학할 때는 집에서 동 떨어진 곳에 홀로 배정되어 친구가 없었다. 망연자실하고 있던 내게 먼저 다가와준 고마운 친구들. 어둠 같았던 시간 속에 빛이 되어준 고마운 사람들. 짧았던 고등학생 시절에도 즐거웠던 기억이, 대학시절 은근하게 날 따돌리던 사람이 있더라도 굳건한 내 편이 있었다. 결론적으로 그 시절 친구들 중 아직까지 연락을 이어가는 사람은 몇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나쁘게 헤어진 친구도 없었다. 어딘가에서 잘 지내고 있을 내 소중한 인연들.
아, 참. 성인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만난 나의 강아지. 모든 순간이 소중한 추억인 내 강아지. 특히나 강아지와 함께하는 시간 동안 행복한 일을 떠올리라고 하면 수도 없이 이야기할 수 있을 것 같다. 같은 이불을 덮고 낮잠을 자는 것마저 행복했던 시간.
행복한 일과 슬픈 일은 비례한다는 말이나, 뭐 신은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의 아픔만 준다는 그런 얘기들은 어처구니가 없어서 웃길 정도였다. 아픔이나 슬픔은 타격이 너무나 크다. 유독 예민한 나는 그것들이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다가와 나를 죽이고 잠식시킨다. 하루든 이틀이든 한 달이든 한 해이든 끝을 모를 정도로 물고 늘어진다. 그래서 놓치고 말았다. 나의 추억들, 나의 행복들을.
숨을 크게 들이마시고 내쉬며 힘든 순간마다 다짐한다. 예민한 만큼 행복하자고, 행복도 딱 그만큼 더 크게 느끼자고. 지금까지와는 반대로, 안 좋은 생각들을 없애버릴 만큼 아주 아주 행복하자고 생각한다.
애정하는 나의 삶.
요즈음은 생각하기 나름이라는 말이 참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