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깐의 오아시스
몇 달 뒤 많은 동료들이 퇴사했다. 첫 번째 팀장님도 퇴사를 했다. 내가 이렇게 오래 버틸 줄은 몰랐다. 시원 섭섭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그렇게 나에게는 오아시스가 찾아왔다.
하지만 오아시스는 아주 잠깐이었고 첫 번째 팀장님이 퇴사 전 두 번째 팀장님을 채용했다. 이 분은 면접 때부터 남다른 이미지로 각인시켰다.
우선 이력서에 사진이 없었다. "이력서에 사진이 없네요?" "꼭 사진이 있어야 하나요?" "...(그렇지? 굳이 사진이 필요하지 않지.)"
면접 복장은 펑키했다. 실버목걸이에 쨍하게 파랑 파랑한 맨투맨이였다. 한마디로 '힙한 팀장님'이셨다.
그리고 마지막, 덥수룩한 수염인데 정리는 잘되어 있고 얼굴에 찰떡인 만큼 잘어울리는 수염이였다. 게다가 포트폴리오까지 좋았으니 같이 일하고 싶은 사람이었다.
예상한 것처럼 실망스러운 일이 발생했다. 사내정치에 승, 패를 거시는 분이셨다. 이해를 못하는 나를 보며 '아직 어려서 모를 수도 있다'는 말을 했다. 난 '또 나이야?'라는 생각 밖에 안들었다.
두 달쯤 지났을까 나름 그분이 패했다고 생각했나 보다. 문제는 잠수와 동시에 퇴사를 하신 것. 나는 갑자기 업무를 떠안게 되었고 무너진 신뢰감은 돌이킬 수 없게 되었다.
이력서 사진이 없는 거부터, 면접복장까지 개성 있어서 기억에 남았지만 제일 중요한 포트폴리오까지 좋았으니 더 기억에 남았습니다. 모두 그 팀장님을 좋게 봤었죠. 입사하기 전까지요.
입사 후 사내정치에 승, 패를 거시는 분이라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좋게 지내면 좋을 연관부서인 기획팀과 마케팅팀의 험담을 많이 했고, 점점 사이가 틀어졌습니다. 서로 감정싸움이 일처럼 되어버린 상황이었습니다. 한 번은 솔직하게 사내정치를 이해를 못하겠다고 말씀드렸더니 '나이'가 어려서 아직 모른다는 답변을 하셨습니다. 저는 참고로 나이에 민감한 사람인데 또 나이를 얘기하시더군요..
*사내정치(社內政治)는 고용된 조직 내에서 이익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 기존의 보장된 권한을 넘어 개인적인 또는 주어진 권한을 행사하는 것을 뜻하는 말
위 뜻풀이처럼 주어진 권한보다 더 행사하는 것도 있지만 권한을 빼앗으려고 하는 행위도 있습니다. 빼앗으려는 게 더 나쁜 거겠죠. 뺏고, 빼앗기는 상황 저만 이상하게 생각하는 건가요? 저는 이런 감정싸움 + 사내정치치에 자신도 없고 못하겠습니다. 그래서 지금 백수인 건지 :(
그런데 그때 그냥 편들어 줄 수도 있는데 저는 왜 그렇게 이 팀장님 말에 동의를 안 해줬을까요? 지금 생각해보니 애초에 저는 이 분을 의심 적게 생각하고 있었던 거 같아요. 그럴 수밖에 없는 게 그전부터 저와 잘 지내왔던 기획자와 마케터였는데 이 분이 오시고 저에게도 툴툴 되시고, 점점 소통이 적어졌거든요. 정말 이 팀장님의 말대로 그 기획자와 마케터가 이상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풀어나가는 방법이 감정이 너무 앞서버렸던 거 같아요. 그 앞선 감정의 결과가 잠수와 동시 퇴사였고 갑작스러운 팀장 부재로 저는 업무를 떠안게 됐습니다. 저는 이 두 번째 팀장님 사람 자체에 신뢰를 잃어버렸습니다.
이후에 저에게 미안하다는 사과와 입사 제안도 주셨지만 한번 신뢰를 잃어버리니까 썩 내키지가 않았습니다. 어딘가 찜찜했어요. 또 잠수를 타실지 누가 알아요. 신용등급으로 대출을 아무나 안 해주는 것처럼 사람에게도 신뢰 등급이 있습니다. 그만큼 신뢰는 중요하죠. 우리 서로서로 신뢰 등급 1~3등급 유지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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