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

by 뚱띵

"나는 니가 해주는 밥은 안 먹을끼다!"하시면서 엄마는 단호한 시선으로 나를 노려보셨다. 아빠 제사상을 물리면서 자연스럽게 이어진 언젠가는 모시게 될 부모님의 제사. 그 제사를 내가 모시겠다고 말씀드렸더니 이렇게 불호령이시다. 나는 내 마음도 몰라주시는 엄마가 원망스러웠고, 큰집의 그 누구도 동조하지 않을 것을 알기에 엄마의 순진한 믿음이 안타까웠지만, 나는 울먹이는 목소리로 "그럼, 알아서 해라."하며 고개를 돌릴 뿐이었다.

엄마는 이전부터 마음먹은 바가 있으셨던 것 같다.

우리 집은 딸만 셋인데 꼭 아들 제삿밥을 얻어먹겠다고 하신다. 아빠 돌아가시고, 혼자서 세 딸을 키우시느라 고생만 하신 엄마는 마치 아들에게 제사를 지내게 하는 것이 아빠를 만나러 가실 때까지 해야 할 숙제라도 되는 듯이 집착하셨다. 최근 엄마의 병환이 심해지셔서 그런지 부쩍 심해지셨다.

골목 안에 같이 사는 큰집은 아들 셋, 딸 하나인데 자꾸만 큰집 아들을 욕심내신다. 언제나 큰집 아들들은 할머니의 자랑이었지만, 엄마에겐 비교의 대상이었다. "아들하나 있으면 얼마나 좋노? 쓸데없는 딸만 셋이나 낳아가꼬..."하는 할머니의 핀잔을 듣기 일쑤였으니 말이다. 할머니는 큰아들네에 아들이 셋이나 되어도, 둘째 아들인 우리 집에서도 아들이 있어야 한다고 버릇처럼 말씀하셨다.

엄마는 첫째 환규오빠는 장손이니까 제쳐두고, 둘째 철규오빠에게 없는 살림에 집 한 채 주고, 돌아가신 뒤 해주는 제삿밥을 얻어 드시고 싶어 하셨다. 지금 와서 돌이켜보면 할머니 돌아가시기 전에 둘째 오빠가 제사를 지낼 수도 있는 얘기를 했던 적은 있었다. 그땐 너무나 먼 훗날의 일이라서 매듭지어지지 않았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 누구도 동의안 한 엄마만의 고집.

결국 마지막 유언을 부탁하려고, 큰엄마를 불렀지만 눈치가 빠른 큰엄마는 딸내미 생일상 차려줘야 한다는 무의미한 핑계를 대며 약속을 잡지 않으셨다. 마치 하실 말씀을 알고나 계시는 듯이 말이다.

내가 큰엄마라도 그랬을까? 한편으로는 이해도 된다. 어느 누가 살뜰히 키운 내 자식이 남의 제사 지내는 꼴을 보고 싶어 하겠는가?

그렇게 강산이 세 번 바뀌어 2025년 현재는 집집마다 제사를 없애고 있는 실정이다. 엄마가 살아계셨더라면 뭐라고 말씀하셨을까?

오늘 둘째 오빠대신 우리 집 둘째 딸 현옥이가 그동안 모셔왔던 제사를 내년부턴 안 지내기로 했다는 연락을 했다. 그때는 남자 아니면 제사 지낼 수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 요즘은 여자도 제사 모시고, 심지어 없애기도 한다. 이렇게 그때는 부술 수 없는 철칙이 세월의 흐름 따라 녹이 슬어 어느새 허물어지기도 한다.

이쯤 해서 '내가 생각하는 철칙은 무엇일까?'하고 생각해 본다. 나에게 있어 제사는 내 뿌리에 대한 예의이자, 못다 한 효도요, 장녀로서의 책임감이었다. 1주일쯤 전부터 혼자서 제사를 준비하는 과정은 아빠를 추억하고, 맞이하고, 보내드리는 모든 의식이었다. 어쩌다 보니 지금은 둘째가 치르고 있는 제사지만, 모시는 동안에는 정성을 다했었다. 솔직히 말하자면 내가 너무 고리타분해서 그런지, 이렇게 제사를 없애는 것이 마음 편하지 않다. 동생들에게 못한 말이 목에 걸려 있는 것 같아서 통화할 때마다 조심스럽다. 내가 손수 제사를 지내왔던 당사자도 아니면서 훈수만 두고 있는 속 좁은 언니로 보이고 싶지 않았다. 받아들여야 한다. 나의 철칙도 깨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좀 더 유연한 자세로 삶을 대해야 한다. 이렇게 나도 하나씩 시대의 흐름에 발맞춰 변화를 인정하는 자세를 가지며 현재를 살아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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