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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리 Dec 23. 2021

조산기 산모의 존버는 그렇게 시작되었다._(1)

조산기 산모의 장기입원의 기록

존버

한 때 존버라는 말이 유행한 적이 있다. 초록창에 존버를 검색하면 친절하게 정의가 뜬다. 존버란, 끝까지 막연하게 버티는 것. 존버가 어려운 포인트는 '막연하게'에 있다. 언제 이 고난이 끝날지 알고 버티는 것과 모르고 버티는 것은 천지차이다. 존버는 고통의 끝이 언제 올런지 모르는 채로 무작정 버티는 것.

2019년 가을, 둘째 임신 중 나는 진정한 존버를 경험한다. 여느 때와 달리 출근하여 퇴근 시간이 가까워졌을 무렵, 화장실에 갔다가 속옷의 피비침을 발견했다. 손가락 세 개 정도 크기의 선홍빛 피가 아직도 선명히 기억난다. 피비침 이외에는 다른 이상 증상은 없었기에 크게 대수롭게 여기지 않았으나, 아무래도 병원에 가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판단에 기존에 내원하던 서울성모병원 분만실로 방문한다. (분만실은 산모들에게 24시간 운영되는 응급실과 같은 곳이다.) 간단한 검진 받고 집으로 온다는 생각에 남편과 집에 있던 별이에게도 간단히 병원 갔다 온다고 하고 집을 나선 터였다.



갑작스런 입원

막상 병원에 가니 뭔가 정말 큰 일이 난 것처럼 긴장이 되었다. '제발 별 일 아니기를...' 전공의가 초음파를 보더니 내게 말했다. 나에게는 마른하늘에 날벼락과 같았던 그 말. "자궁 경부 길이가 1.7cm로 임신 25주차 치고 매우 짧아요. 당장 입원하셔야겠는데요." 입원이라니. 별이한테 가볍게 엄마 갔다온다고 했는데 며칠을 못보게 생겼다. 그리고 갑작스럽게 회사에도 휴가를 내게 생겼다. 나는 앞으로가 걱정되어 언제 퇴원할 수 있느냐고 의료진에게 물었으나, 그건 나의 호전 정도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어서 확답할 수 없다고 했다.

그렇게 갑작스럽게 입원생활이 시작되었다. 서울성모병원 산부인과에는 증상이 심해 면밀 관찰해야 하는 산모는 고위험산모실에 입원하고, 호전이 있으면 일반병실로 이동한다. 나는 25주차 치고 경부길이도 짧고 출혈도 있었기에 바로 고위험산모실에 입원했다. 이 때까지만 해도 자궁수축은 없었기에, 고위험산모실에 3일 입원하고, 일반병실로 옮겨 2일 입원한 후에 퇴원할 수 있었다.



퇴원하자마자 또 입원

오전에 퇴원하고 오후가 되어서 화장실에 갔는데, 나는 또 피비침을 보고야 말았다. 나는 그렇게 다시 서울성모병원 분만실로 향했다. 임신 26주차였다. "또 피비침이 있어서 왔어요." 남편과 별이와 함께 자동차로 분만실로 향하는 와중에 별이가 잠이 들었다. 그렇게 나는 별이와 인사도 못 한 채로 다시 입원을 했다. 두 번째 입원이 시작된 것이다. 엄마가 입원하러 간다는 말도 못한 채 18개월인 별이와 언제 끝날지 모르는 생이별을 하게 되었다. 검진 결과 이번에도 자궁경부길이 짧음. 다행히 자궁수축이 있지는 않았다. 자궁수축이 있으면 조산의 가능성이 더 높아지므로 더 유의해야 한다고 했다. 간호사들은 어떻게 바로 다시 오셨냐며 나를 안쓰러운 눈길로 쳐다봤다.

내 마음은 처참했다. 별이와 제대로 인사도 못한 채로 입원을 한 게 크게 마음에 걸렸으며, 또 뱃속의 둘째를 지키지 못할까봐 너무 불안했다. 조산기 산모의 일상은 그냥 누워있는거다. 몸을 수직으로 세우면 자궁경부에 압박이 가해지므로 최대한 무게가 실리지 않도록 누워있어야한다. 둘째를 임신한 워킹맘으로 바쁘게 사느라 '그냥 아무것도 안하고 누워있고 싶다.'라고 생각한 적이 많았다. 그런데 강제로 누워있으려니 정말 고역이 따로 없었다. 마음이라도 편하게 누워있으면 몰라, 마음이 정말 지옥이었다. 둘째를 잃을 수도 있을 것 같다는 불안감에 잠도 제대로 못 잤다. 또 첫째가 너무 보고 싶어서 피눈물이 나는 것 같았다. 그나마 다행히 입원기간 내내 자궁수축은 없었으며, 피비침도 멈추었다. 두 번째 입원도 5일가량 입원한 후에 퇴원할 수 있었다. 교수님은 퇴원 후에도 '절대안정'을 하라고 강조했다. 집에서도 입원했을 때처럼 누워만 있으라는 지침이었다. 퇴원 후 다음 외래는 7일 후로 잡혔다. 절대안정을 해야 했기에 나는 다음 외래 때까지 친정행을 택했다. 별이와 또 다시 일주일을 떨어져 있는 것이 아쉬웠지만 절대안정을 취하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세 번째 입원

친정에서 부모님의 수발을 받으며 절대안정을 취했다. 밥먹고 화장실 가는 시간 이외에는 절대 일어나지 않았다. 그렇게 퇴원한지 7일 후, 외래진료일이 다가왔다. 떨리는 마음으로 제발 괜찮기를 바라며 외래진료에 갔다. 그러나 교수님의 말씀에 내 바람은 산산조각이 났다. "자궁경부길이가 1cm 정도에 경부 모양이 좋지 않아요. 깔대기처럼 벌어져있어요. 또 이전보다 자궁경부길이가 짧아지는 것을 보니 자궁수축이 있을 수도 있어요. 입원해서 지켜봐야겠는데요." 가슴이 마치 쿵 하고 발 끝까지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별이와 떨어지는 선택을 하면서까지 절대 안정을 취하려 친정행을 택했는데 차도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니, 차도가 없기는 커녕 더 안 좋아진 상황이었다. 건강한 임신 기간을 보내는 사람이 대부분이고, 나도 별이 임신 때에는 특별한 문제가 없었는데 왜 이런 일이 생기는 건지 억울했다. 그렇게 나는 다시 서울성모병원 고위험산모실에 입원했다. 임신 27주차였으며, 세 번째 입원이었다.

고위험산모실에서 하염 없이 눈물을 흘렸다. 별이가 너무 보고 싶었다. 별이의 자는 모습에 인사도 못하고 헤어졌는데, 우리의 헤어짐이 언제까지일지 가늠할 수 없었다. (서울성모병원과 같은 3차 병원은 감염의 우려 때문에 영유아의 면회를 제한한다.) 충격을 받아서일까. 그 날 밤 자궁수축검사에서 수축이 있는 것으로 나왔다. 결국 나는 라보파라는 자궁수축억제제를 달게 되었다. 라보파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널리 쓰이는 자궁수축억제제로, 자궁수축이 있는 조산기 산모들에게 정맥주사로 투여된다. 라보파를 검색하면 바로 '라보파부작용'이 연관검색어로 뜰 만큼 라보파의 부작용은 꽤나 견디기 힘들다. 가장 대표적인 부작용이 심계항진이다. 나도 예외는 아니었다. 라보파를 달자 심장이 너무 빨리 뛰어서 귀에서 쿵쿵대는 심장소리가 계속 들렸다. 심장이 빨리 뛰니 얼굴도 벌겋게 달아올라 있었다. 3주 전만 해도 멀쩡하게 출근하던 임산부였는데, 어느 순간 완전히 중환자가 되어 있었다. 회사에도 양해를 구하고 차년도 연차까지 끌어쓰고, 그 후에는 무급휴직을 하기로 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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