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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리 Nov 09. 2022

그룹장님께 자필 편지를 받았다.

회사는 요즈음 한 해를 마무리해가는 분위기이다. 이 시기의 회사 분위기는 초점이 현재가 아닌 내년으로 가 있는 느낌이다. 요즘 회사에서 스몰톡의 주요 주제는 아래와 같다.

"내년에 조직변경 어떻게 된데?"

"A상무는 이번에 그룹장 된다던데?"

"내년에 무슨 팀 갈 거야?"



11월 무렵의 이런 어수선함이 직원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다. 현재 하는 업무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팀을 옮겨볼까?' 하는 실낱 같은 희망을 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일 년 내내 임원의 말이라면 껌뻑 죽으면서 해내던 팀원들도, 연말에는 과연 그 임원이 살아 남아 계속 조직에 있을 것인가에 촉각을 곤두 세운다. 작년에 나와 함께 일했던 동료는 임원인사 관련해서 이렇게 말했다. "일 년 내내 임원한테 보고다 뭐다 해서 괴롭힘 당했으니깐, 임원들의 거취가 정해지지 않아 괴로워하는 시기에 묘한 즐거움이 있다."라고. 아무튼 실무자 입장에서 조직이 어수선하다는 것은 업무도 약간은 설렁설렁할 수 있고, 사내의 온갖 가십에 촉각을 곤두세우며, 앞으로 더 나은 조직으로 갈 수 있을까에 대한 희망을 품게 되는, 맘 편히 다니기 아주 좋은 시기이다.



여느 때와 같던 월요일, 출근을 했는데 편지봉투가 내 책상에 있었다. 열어보니, 아래와 같은 그룹장님의 손 편지가 있었다. 조직문화팀에서 주관하는 그저 직원 동기부여를 위한 장치이겠거니만, 그래도 기분은 나쁘지 않았다. 포상으로 호텔 숙박권을 받아서 그런가.


브런치에도 썼다만, 새로운 팀에 발령받아 전임자는 퇴사한 새로운 업무를 하느라 고생했다. 새로 발령받고 "아이 둘 엄마가 어쩌다 전사에서 제일 바쁜 팀 중 한 곳에 갔냐"며 안타까워하며 혀를 끌끌 차는 소리를 매일 같이 들었다. 나는 "그러게요... 제 의지는 아니었는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네요."라고 할 수밖에.

매주 경영진 보고, 매월 금액 추정과 결산을 하는 업무이다 보니 스트레스가 심했다. 다루는 금액만 500억이고, 그 금액을 쓰는 부서가 워낙 다양하다 보니, 결산을 하고 나면 이 부서 저 부서에서 전화받는 것도 이만저만 스트레스가 아니었다. 그중 가장 어려운 점은 아이들이 아플 때 휴가를 낼 수 없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매주 주간보고 날이나 결산 날만 피해서 아프진 않으니깐. '과연 이 일이 일 가정 양립이 가능한 일인가'라고 1년 내내 의문을 품으며 수행했다.



어쩌면 나는 지난 1년 간 나도 모르게 사직서를 가슴에 품고 다녔는지도 모른다. '내가 무슨 부귀영화를 누리자고 이러고 사나.' 싶은 때가 많았으니깐. 조직문화팀을 보며 '저 팀은 참 편하게 일하겠네. 조직문화가 그렇게 쉽게 바뀌는 줄 아나? 사람이 바뀌어야 조직문화가 바뀌지.' 하며 샐쭉대기도 했다. 그러나 조직문화팀 프로그램으로 받은 손 편지로 1년 내내 착잡했던 마음이 위로받는 걸 보니, 조직문화팀이 허튼짓하는 팀은 아닌가 보다.



회사에서 포상이란 미끼다. 회사에서 직원에게 일 더 열심히 하라고 던지는 미끼. 하찮게 생각하던 그깟 미끼가 나에게 주어지니 마음이 누그러지는 걸 보면, 나 이미 직장인 다 되었나 보다. 손 편지에 동봉되어 있던 호텔 숙박권으로 올 연말에는 남편과 아이들과 오랜만에 호캉스를 누려보련다. 아들 둘과 함께 하면 호캉스가 아닌 호텔 전지훈련이 될 가능성이 높겠다만. 그리고 나도 모르게 가슴에 품었던 사직서는 조금 내려놓고 다가올 새해를 맞이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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