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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Jun 10. 2020

지금까지 수집하고 써온 문장들 속에 묻어있던 난제

그 사람의 최근 관심사를 알고 싶다면 그 사람이 요 근래 적은 것들을 보면 된다



아무리 mbti를 하고 매일 일기를 써도 나 자신의 근황은 잘 모르겠을 때가 있다. 그게 요즘이다. 주위에 해야 할 것 같거나 해야 하는 것들을 하나씩 쳐가며 지내는 것 같긴 한데 어떤 기분이나 생각을 가지고 하는 건지 되돌아봐도 아리송하다. 살고는 있는데 생각하지 않으며 살고 있달까.

지금 이력서에 나에 대해 쓰라고 하면 취미와 특기 같은 누구나 쓸 수 있을 문항도 빠르게 채우지 못할 것 같다.

최근의 일기 내용을 보면 무엇을 했는지만 쓰여있고 나에 대해서는 좀처럼 쓰지 못한 것을 볼 수 있다. 써보려고 해도 잘 모르겠더라. 그래서 기대가 되는지 두려운지 행복한지. 아 나는 나를 잘 모른 채로 일기를 쓰고 있구나.

연장선으로 요즘 부쩍 깜빡하지 않고 가방에 잘 넣어 다니는 영감노트의 모든 흔적을 오랜만에 훑어봤다. 적지 않았다면 지금은 내가 어디선가 그 문장을 봤다는 사실조차 잊어버렸을 글들이 눈에 들어왔다. 

'후회 없는 삶이란 저급한 뇌의 활동'

'충분히 나를 사랑할 때 나의 가치를 알아주는 사람을 만나 상처 없는 듯 모두를 사랑할 것'

'나는 나답게 표현하며 살고 있나?'

대체로 나에 대한 문장이었다. 이런 사람이 되고 싶고 이렇게 되려면 나는 현재 어떤 것을 해야 할까에 대한 고민이 박혀있는 문장들이 종이 위에 지워지지 않는 얼룩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은연중에 나는 나에 대해 알고 싶은 간절함이 이미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자신에 대해 혹은 자신으로부터 비롯된 직업이나 생(生)을 명확하게 표현할 줄 아는 누군가가 말하고 적은 것으로라도 나를 정의하고 싶었을지도.


기존의 내가 나를 규정짓는 몇 가지 단문들이 있었다. 성실하고 독서와 여행을 좋아하고 무언가를 만드는 것을 잘한다 등 이력서에 넣을 법한 단어들로 구성된 나의 정의들. 못해도 8년은 되었을 이 정의들이 최근 들어 무색해졌다. 

'정말 나는 그런 사람일까?'에 대한 고민. 그렇지 않은데 과거의 내가 과거의 부족한 경험을 바탕으로 정답을 내려놓고 약 8년이라는 시간 동안 끌고 온 것은 아닐까. 나는 그런 사람이어야만 한다고 초등학생 때 선생님이 바닥에 분필로 그리던 동그라미 선처럼 내 주위를 둘러놓은 것은 아닌가에 대한 난제가 생겼다. 


종이의 정 가운데에 '나'라고 쓴다면 그로부터 가지를 뻗어 마인드맵을 시원하게 그려내고 싶다. 어떤 사람인지 무엇을 잘하는지 어떤 것이 잘 맞는지 명확하게 글로 쓸 수 있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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