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뚜벅이는 윤슬 Jul 19. 2020

땅굴 속에서 우주선을 만드는 중입니다

차근차근 무기력감을 벗어나는 과정을 기록합니다

1

요즘 머릿속에는 우울하다는 생각뿐이다. 우울감에 대해 쓰고는 있는데 결론을 내기가 힘들다. 미루고 또 미루다 보니 몇 주가 흘렀다.

시작도 끝도 모를 우울감이 찾아와 정리를 할 수 없었다. 글을 쓰려면 대체로 기승전결이 있어야 하는데 승전만 있는 느낌이랄까. 요즘 머릿속에 든 것은 이 우울감뿐이라 이걸 써야 하는데 뭐라 결론을 내야 할지 모르겠어서 미루고 미루다 보니 오늘이다. 이제는 더 미루면 해야 할 일을 하지 않은 데에 대한 죄책감까지 얹어질 것 같아 일단 이렇게 되는대로 타이핑을 치고 있다.


글쓰기 뿐 아니라 해야 할 업무도 미루고 있다. 회사 일이 부쩍 재미가 없어졌다. 적성에 맞지 않는 직업을 택해서인지 업무에 대한 목적의식은 처음부터 없었다. 퇴사를 한다고 해도 이후 다른 대안이 없는 터라 버틴다는 심정으로 다니고는 있지만, 출퇴근조차 버거울 때가 있다.


'안 되겠다 뭐라도 하고 싶은 도전을 해야지!'

휴대폰 메모장에 적어둔 버킷리스트를 훑어봤다. 세계일주, 한 달 살기, 스카이다이빙 등등... 거창하기도 했다. 당장 실현할 수 없는 리스트에 할 말을 잃고 지금 하고 싶은 것을 생각해보기로 했다. 


'가죽이나 목공예 클래스도 들어보고 싶고 장어덮밥도 먹으러 가고 싶고...'  

중얼거리다가 역시 돈이 너무 많이 드는 것들이라 접었다. 코로나 때문에 월급도 100% 못 받는데 이런 걸 하는 건 사치다 사치. 매달 나가야만 하는 적금들과 세계여행 준비 때문에 안 그래도 개인 용돈이 모자라는데 몇 만 원을 덜컥 쓰는 것은 미래의 내가 분명 스트레스 받을 일이다. 미래의 내가 후회할 일은 하지 말아야지 암 그렇지.


이게 다 돈이 없어 그래-삐죽 대며 또 기분이 땅굴을 파고 말았다.


사실 무기력증이나 우울이 찾아오면 여행을 지르고는 했다. 특히 해외여행 항공권을 끊으면 효력이 최고! 단번에 땅굴 속에서 하늘 위로 우주선 발사하듯 솟구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누가 봐도 그 방법은 쓰고 싶어도 쓸 수가 없지 않은가. 작년에 끊어둔 포르투갈 항공권이 두 달 뒤 효력을 발휘할지도 미지수다.


항상 쓰던 치트키가 게임 초보의 어설픈 기술 사용같이 되어버렸고 나는 미션 실패를 보고 말았다. 실패를 반복해서 경험하면 그 게임은 내 길이 아닌가 보다-하고 하기 싫어진다. 하고 싶은 것도 없고 해야 하는 것은 하기 싫고 그러면서 또 스트레스 받고. 무기력하기도 하고 화도 나고 나란 사람 대체 뭘 어쩌고 싶은 걸까? 나태해지면 안 된다는 강박과 아무것도 하기 싫은 현재의 증상 그 어디쯤에서 휘둘려 이도 저도 편치 않은 마음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 이 주제로 글을 쓰면서도 마무리를 어떻게 지어야 할지 아직 모르겠다.



2

주말이라고 집에만 있다가는 더 무기력해질 것이라는 판단이 서 백팩에 노트북과 카메라를 넣었다. 찍어두었던 사진들도 편집해야하고 블로그 콘텐츠도 써야하고 포트폴리오도 만들어야하는데 근 2주간 하기 싫어 미루다가 안 되겠다 싶어 카페에 가져가기로 했다.


'좋아하는 카페에 가면 기분이 좀 괜찮아질지 몰라.'


평소에 카페 투어를 좋아하는데 다이어트를 시작한 이후로 근 두 달간 카페 투어를 가지 못했다. 카페에서 디저트를 먹으면 살이 찐다는 생각 때문에 좋아함에도 억지로 미뤄뒀다. 돈도 아껴야 하고. 매번 새로운 카페에 가는 것을 좋아해 지도 앱을 켜고 예전에 SNS 등 어디선가 볼 때마다 저장해둔 카페 리스트들을 쭉-훑어봤고 그래 너로 정했다.


심플한 듯 알록달록한 벽지가 포인트인 카페에서 시원한 애플티를 마시며 이 글을 쓰고 있다. 힙한 분위기에 음료값도 4,500원으로 저렴해서 적은 돈으로 호사를 누리고 있는 기분이다. 역시 사람은 좋아하는 것을 하며 살아야 하는구나. 기분이 나아졌다. 출근하지 않아 억지로 무언가를 할 필요가 없는 날. 심지어 4일 연속으로 쉬는 날. 좋아하는 카페에 와 있고 고심 끝에 주문한 음료가 마음에 드는 지금.


마침 울리는 알람. 어제 한 인스타그래머께서 최근에 무기력했는데 그 원인을 알아내고 해결했다는 글을 올렸다. '무기력'이라는 단어 하나에 감정 이입해 축하의 말을 전하면서 나는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고 한 댓글을 달아놓고 잤더니 방금 띠링~ 답을 남겨주신 것이다.


다른 무엇보다 나를 조금이라도 불행하게 만드는 건 다 싹을 잘라버리는 게 맞는 것 같아요. 좋은 타이밍에 좋은 해결책이 찾아올 거예요!


이런 것을 보고 나이스 타이밍이라고 하는 것이 아닐까? 조금이라도 나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이라. 여유 없는 주머니 사정? 먹지 못하는 음식들? 하기 싫은 회사 일? 맞다면 나는 이것들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매거진의 이전글 2020년 상반기 끝, 나는 뭐하면서 살았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