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뚜벅이는 윤슬 Oct 29. 2020

회사에서만큼만 내 인생에 '이유'를 끼워 넣자

내 인생에 이유가 부재함을 깨닫게 해 준 에피소드들

첫 회사 근무 시절, 정확히 누가 그런 조언을 해주셨는지는 기억이 안 나지만 이런 말을 해 주셨다.

'회사 안에서 그냥은 없어. 의견을 내든 어떤 일을 진행하든 항상 이유까지 생각해야 해.'

그 뒤로 논리적이든 비논리적이든 근본에 대해 생각하며 일을 했다. 상사의 말에 따라야 하는 초짜 기획자에 불과했지만 그럼에도 '이 일은 이래서 하는 거야'라는 배경을 꼭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듯이 설명하며 일했다.




최근 펜팔 친구에게 편지를 보낼 때 손편지에 스티커 몇 장을 넣었다. 편지를 쓰기 하루 전 전시회장에서 가져온 스티커를 나누면 좋을 것 같아 몇 장을 편지와 함께 넣어 보냈는데 며칠 뒤 편지를 받은 친구가 메시지를 보내왔다.

'이 사진은 뭐야?'

'아~ 최근에 내가 전시회를 갔었는데 거기서 받은 스티커 중 몇 장을 보낸 거야!'

'오~뭐지... 항상 의미를 생각해보는 편이라 되게 궁금해서 물어봤어.'

아차 싶었다. 편지를 보낼 때 미처 스티커에 대해 소개하지 못했다. 전시회 가서 받은 건데 서울에서만 하는 전시라 타지에 사는 너는 기간 내에 보지 못할 수도 있으니 이렇게 전시회 작품이 담긴 스티커로나마 접했으면 좋겠다고 적으면 좀 더 친절한 선물이 되었을 텐데 아쉬웠다. 이유를 챙기지 않은 선물은 다소 뜬금없는 선물이 된다.


이틀 전 운명 같은 책을 만났다. 서촌 거리를 걷다가 지도 앱에 저장해둔 독립서점 위치가 생각나 찾아갔다. 서점에 들어간 김에 한 권 사자고 생각했고 여러 책을 열어보다가 '산'에 관련된 에세이에 시선이 이끌려 몇 장 일어보다가 구입했다. 등산에 흠뻑 빠져 산악잡지 기자를 하기도 에베레스트에 도전하기도 산을 뛰는 트레일러너가 되기도 한 작가의 이야기에는 산을 좋아하는 이유가 여럿 담겨있었다.

[*고요하게 겸허하게 오르는 산이 좋다. 들뜬 나를 차갑게 하는 그 산이 좋다. 하지만 치열하게 맹렬하게 오르는 산도 좋다. 처진 나를 뜨겁게 하는 산도 좋다. 내면을 향하는 산도 좋고 바깥과 소통하는 산도 좋다.]

[*높이 오르면 오를수록 산은 나를 낮췄다. 그동안 수많은 계획 아래 내가 가진 능력치와 한계치를 가늠하며 리스크가 적은 쪽에, 가능성이 좀 더 기우는 쪽에, 좀 더 안전한 쪽에 패를 던지고 살아왔다. 그러나 산이라는 공가네서는 그러한 저울질이 무의미하다. 내가 계획한 대로 되지 않는 것, 모든 일들이 예측한 대로 이뤄지지만은 않는 것, 그래서 좌절하고 실패하는 것이 산에서는 훨씬 더 자연스럽다....(중간 생략)... 무엇보다 산은 해보지 않으면 아무것도 알 수 없다는 것을 가르쳐줬다.]

등산을 취미로 가져보자며 소모임에 가입한 지 한 달 된 '등린이'에게는 이 책 속 문장이 모두 책 장의 모서리를 접을만한 문장이었다. 내가 산을 오르면서 가지는 마음이나 정상을 하나하나 정복해가고 싶은 이유에 대해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었다. (산에 대한 나의 생각은 곧 또 한 편의 글로 길게 풀어볼 예정이다)




회사 일에는 그렇게 배경 설명을 하면서 정작 회사보다 더 중요한 내 인생에는 이유가 부재한 것이 너무 많았다.

왜 등산 모임에 들어가 부지런히 산을 오르는지 왜 블로그를 운영하는지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나는 왜 이십 대를 이렇게 살고 있는 것인지 스스로 '맞아 바로 그거야'라고 생각할 이유를 대지 못했다. '그냥 하다 보니 이걸 하게 됐고 여기까지 왔어요'라고 말하면 나에게 조언해줬던 첫 회사의 그분은 뭐라 말씀하셨을까? 꼭 그분의 답이 아니더라도 두 번밖에 남지 않은 이십 대 12월 31일이 아쉽다. 한 것은 분명 많은데 헛 배부른 느낌이다. 



*책 '아무튼 산' 中 / 장보영 저





매거진의 이전글 내가 어제보다 더 나은 사람이 되는 두 가지 방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