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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Jan 07. 2021

밖수니의 집콕 생활을 도와주는 3가지 물건/서비스

이거 없었으면 집에서 고독사 하지 않았을까

브런치에 지금까지 써 온 글들만 봐도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집 안보다 밖을 더 좋아하는 '밖수니'다. 꼭 약속이 없더라도 새로운 공간과 경험을 마주하러 집 현관문을 여는데 마지막으로 그랬던지가 몇 달이 되었다. 코로나 초반에만 해도 내년까지 이러고 있을 줄은 몰랐는데 달력도 다이어리도 새것을 쓰고 있다. 십 년 뒤 국사책에 나올만한 거대한 사건 속에 살고 있다는 실감이 든다.

밖수니도 결국에는 인간이라 어느새 집에서 하루 24시간을 보내는 일상에 적응했다. 물론 이 '적응'에는 몇 가지 사물과 서비스에 의존할 수 있다는 전제가 깔려있다. 그냥 맨 몸으로는 절대 못 보낼 것이다. 못 보내면 어쩔 거냐고? 숨만 붙어있는 시체가 되지 않았을까. 시체가 아닌 사람답게 살게 해 주는 고마운 물건과 서비스를 정리해본다.


유튜브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만 해도 유튜브를 이렇게까지 사랑하지는 않았다. 좋아하는 유튜버의 채널에 새 영상이 뜨면 그때만 보는 정도? 절제하려고 한 것은 아니나 중독되지 않았는데 십 개월쯤 지난 지금은 웬만한 서비스들보다 월등하게 유튜브를 애용한다. 남들이 넷플릭스나 왓챠에 구독료를 낼 때 혼자 유튜브 프리미엄 서비스에 가입했는데 선택과 집중에 성공했다. 매월 팔천 원대의 구독료의 본전을 뽑는 것이 숨 쉬는 것만큼 쉬운 일이다. 십 개월 전쯤 세 명의 유튜버만 구독했는데 지금은 배로 늘어났다. 구독하지 않아도 알고리즘에 의해 챙겨보게 되는 채널도 세 곳쯤 된다. 유튜브 알고리즘은 무섭다. 몇 번 같은 시간대에 같은 영상을 보면 이후부터는 그 시간만 되면 추천 영상에 해당 영상을 띄워준다. 추천 피드에 떠서 몇 번 그 유튜버의 영상을 보면 '어디 한번 언제까지 구독 안 하고 보나 보자'라고 말하는 것처럼 계속 그 채널의 영상을 보여준다. 그러다가 구독한 채널도 있다. 최근에 맛들 린 유튜브의 기능은 '스트리밍'인데 특히 tvn의 '스트리트 푸드파이터' 전편 스트리밍을 매일 재생하고 있다. 말 그래도 24시간 계속 프로그램 전편을 재생한다. 덕분에 매일 그리고 하루 종일 세계 미식 여행을 떠나고 있다. 백종원의 맛깔난 맛 설명과 세계 음식/식재료에 대한 정보를 BGM처럼 듣고 있는데 저절로 배우게 되는 얕은 지식이 생겨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노트북을 켜고 스트리밍을 재생한다.

유튜브 덕분에 배우고 싶은 것도 집에서 곧잘 배우고 있다. 일러스트레이터나 브랜딩, 요리 레시피, 체중을 유지하는 방법까지 모두 알려준다. 손가락만큼 많은 선생님이 집에 상주해있는 기분이다. 부지런한 호기심만 있으면 언제든지 배움의 기회가 열려있다. 덕분에 집에 혼자 있어도 시간이 그럭저럭 잘 지나간다.


노트와 펜

작년에도 그러했듯이 새해에도 수기로 많은 기록을 한다. 컴퓨터에 기록하면 더 빨리 기록할 수 있지만 쓰기 전에 생각하고 쓰는 세심한 기록 습관을 들이기에는 아날로그가 적합하다. 모나미153펜과 지금은 단종된 연필 지인으로부터 선물 받은 빨간펜, 일 년 전에 충동 구입하고 묵은지처럼 묵혀둔 노트가 집콕 생활의 종합비타민이 되어 주고 있다. 기록의 주제는 줏대가 없다. 때로는 유튜브 강의를 들으며 필기를 하고 그날의 할 일을 적기도 문득문득 떠오른 글쓰기 소재를 쓰기도 한다. 작년 십이월 한 달간은 2021년에 대한 기대가 컸는지 새해 목표나 계획에 대한 기록으로 종이 여덟 페이지를 썼다. 주제는 줏대가 없지만 지난 기록들을 다시 보면 일기장 같기도 하다.

현재 쓰고 있는 노트는 이렇게 주제 미정의 손 두 뼘 정도의 수첩과 훗날 해외여행 가면 하고 싶은 것을 적는 손바닥만 한 미니 수첩, 아침식사 전에 쓰는 감사일기, 매일 오후 6시에 쓰는 다이어리가 있다. 하루종일 집에 있는데 뭘 그렇게 많이 적나 싶지만 짧으면 일 분 길면 삼십 분이 걸리는 기록하는 시간은 성격 급한 나를 그나마 차분하게 만들어준다. 아무리 한국인이라지만 해도 해도 너무한 '빨리빨리' 마음가짐을 못 버리고 있다. 때문에 일을 하다 만 것 같은 완성도는 기본이고 마음이 급해 이 생각을 했다가 저 생각을 했다가 되지도 않을 멀티를 하는데 이 단점을 기록이 보완해준다. 예능 프로그램 '알쓸신잡'에서 유시민 작가는 '적자생존'이라는 단어를 꺼냈다. 적어야만 산다는 뜻으로 적자생존을 유머러스하게 재해석했는데 딱 나에게 맞는 풀이다. 적지 않으면 일을 그르치거나 했던 생각들이 결론이 나지 않은 채로 잊힌다. 그래서 오늘도 사소함 중대함 작고 큰 기준에 상관없이 일단 적으며 집 안에서 생존한다.


냉장고

냉장고일까 엄마일까 아니면 돈일까 고민했지만 일단 '보관'이 되어야 집 안에 오래 있을 수 있기에 냉장고로 결정했다. 집에 있는 동안 '냉파'의 달인이 되었다. '냉파'는 냉장고 파먹기라는 짠테크 용어로 짠테크 브이로그 등을 유튜브에 검색하면 흔히 주제로 볼 수 있다. 한국인은 배달의 민족이지만 요즘은 냉장고에 있는 재료만으로 사는 날이 대부분이다. 코로나 이전에는 먹고 싶은 것을 먹어야 한다는 것이 '오늘 뭐 먹지?'라는 질문에 대한 답이었다면, 이후에는 '냉장고에 있는 것들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보자'가 답이 되었다. 자연스레 평생 안 할 것 같던 요리에 발을 딛기 시작했다. 어설프게 씻고 썰고 볶고 섞고 있다. 그렇다고 똥 손이 어디 가랴. 보기만 해도 맛있어 보이는 그런 음식들은 나오지는 않는다. 구웠다기보다는 태웠다고 하는 게 더 맞는 말일 것 같은 생선과 자르지 않아 파스타면만큼 길어진 미역줄기 볶음 채소 두께가 제각각인 결과물을 식탁 위에 올려두면 역시 혼밥으로나 요리해야겠다는 확신이 든다. 절대 죽기 전까지 집들이 같은 것은 하지 말자고 다짐하며 유튜브를 틀어놓고 식사를 시작한다. 냉장고를 파먹는 시간은 하루 중 가장 행복한 시간이다. 할 일이나 마음 한 구석의 스트레스가 단 하나도 떠오르지 않는 삼십 분이다.


집에 온종일 있으면서 알게 된 것은 생각보다 집 안에 많은 것을 둘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밖에 돌아다닐 때는 집수니가 못 되는 이유가 집에 뭐가 없어서라고 생각했다. 집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많아야 집수니가 된다고 믿었다. 내 방은 우리 집은 심심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강제 집수니가 되어보니 다섯 손가락보다 적은 것으로도 충분히 지낼 수 있더라. 역시 뭐든지 경험해봐야 한다. 아 그래도 이 상황은 빨리 끝났으면 좋겠다. 뭐든지 지나치게 반복하면 지겨운 법이다. 그 한계치가 오기 전에 빨리 밖수니로 원상 복귀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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