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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Mar 25. 2021

혼밥러의 순간에 더 주목하게 되는 친절함

단 한명인 데도잘 챙겨주셔서 감사합니다

몇 주 전, 잠실에 가오픈 중인 반지하 카페를 찾아갔다. 평소 좋아하는 요거트볼을 판매한다는 정보를 듣고 무척이나 기대했던 카페다. 사실 기대했다고 말하지 않아도 방문 시간을 보면 얼마나 기다렸는지 충분히 예상이 가능하다. 오픈 시간이었던 오후 네시를 크게 벗어나지 않은 네 시 이십 분에 카페를 갔으니. 

카페는 당연히 혼자였다. 심지어 조도도 천장에 달린 작은 조명에만 의지할 정도로 어두워 더 혼자인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혼자인 것을 알지만 사장님조차도 눈에 띄지 않아 더 혼밥하러 온 사람 같달까. 낯선 공간과 기분에 두리번두리번거리다가 자리를 잡고 요거트볼과 딸기라떼를 주문했다. 사장님이 부쩍 상냥한 어투를 사용하셨다. 그저 말 없는 나 홀로 손님인데도 평론가라도 온 것처럼 메뉴 설명도 해주시고 비건 카페라 어떤 메뉴는 비건 변경이 가능하고 어떤 메뉴는 불가능한지 마침 궁금했던 점을 세심하게 챙겨주셨다. 

여러 가게에서 주문을 하다 보면 같은 문장을 들어도 다르게 느껴질 때가 많다. 누군가와 함께 있을 때는 그 점이 크게 다가오지 않는데 혼자 가게를 방문하면 유독 말투 하나 문장 하나가 마치 눈에 보이는 물체인 것만 같다. 말과 어투에 얼굴이 있는 느낌이 든다. "주문하시겠어요?' 말 한 문장을 듣더라도 말투에 따라  '아 일하기 진짜 싫은가 보다' 혹은 '진짜 천직을 만나셨나' 등 여러 생각이 든다. 이 카페의 사장님의 "주문하시겠어요?'는 감사함이었다. 찾아와 줘서 감사하다는 상냥한 감정이 묻어있어 들은 나도 덩달아 감사해졌다. 진동벨을 받으며 "감사합니다"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음식을 받기 전부터 카페가 마음에 들었다.


메뉴 특성상 사장님 혼자 만드시니 오래 걸리려니- 생각했는데 뚝딱뚝딱 금방 저녁 겸 간식 한상 차림을 가져오셨다. 


"주문하신 메뉴 나왔습니다. 그리고 이 딸기는 오늘 들어온 딸기가 너무 맛있어서 따로 담아 드려 봤어요."

재료가 너무 맛있어서 더 줬다니. 믿기지 않는 이유로 제공된 왕 큰 딸기 두 개의 모습과 쑥스러운 표정으로 말씀하시는 사장님의 어색한 표정에 감동받아 뒤로 넘어갈 뻔했다. 좋은 재료를 아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주는 신생 카페의 선한 마음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통통하고 진한 빨간색의 딸기를 보고 있으니 문득 혼밥할 때 감사함을 느꼈던 순간들이 떠올랐다. 혼자 한 달 여행도 다녀온 만큼 혼밥이 어렵지는 않지만 가끔 어색할 때가 있다. 별 다른 아이템을 쓰지 않아도 혼자 조용히 잘 먹을 때가 있는가 하면 이어폰을 꽂고 무슨 영상이라도 보면서 먹어야 완전히 편안해지는 상태가 되는 때도 있다. 그렇게 혼밥하러 온 스스로가 머쓱할 때 잘 챙겨주는 맛집을 만나면 다른 때보다 더 큰 감동을 느낀다. 


요즘은 그런 곳이 많이 줄어든 것 같지만 1인 손님을 안 받는 가게들이 있다. 특히 인기 있는 맛집이거나 혼자 먹기 좀 그렇다는 '편견'이 있는(진짜 편견이다. 세상에 혼자 먹기 그런 음식을 누가 정해둔 것도 아니고) 음식들을 취급하는 곳에서는 혼밥러를 꺼리는 경우가 있다. 

내가 가려고 하지 않았어도 가게 앞에 '1인 손님은 받지 않습니다'라고 쓰여 있으면 괜히 심통이 난다. 보고 있나요 종각역 근처 모 가게. 제주도의 모 칼국수집. 물론 이해는 한다. 혼자 1인분 먹기를 2~3인석 자리 차지하고 있는 게 얼마나 손해라고 생각되겠는가. 하지만 나는 대식가라 1인분만 먹지도 않는데? 거절당할 때면 택시 승차거부를 당하는 기분이다. 

온 건 내가 더 늦게 왔는데 여럿이서 온 테이블보다 먼저 일어나 달라고 하는 곳도 있었다.

'혹시 다 드셨나요? 뒤에 대기하는 손님이 있어서 그런데 일어나 주시겠어요?'

진짜 황당함의 끝판왕이었다. 혼자 왔다는 이유로 얼른 먹고 바로 일어나라니. 

이렇게 혼밥러에게 각박한 가게가 있는가 하면 이번 카페처럼 오히려 더 살뜰하게 반겨주시는 곳도 많다. 특히 혼자 여행할 때가 많다 보니 여행 중에 만나게 되는 경우가 많은데 예를 들면 제주도 구좌읍에 있는 어느 밥집 사장님은 혼자 여행도 하고 대단하다며 더 필요한 것은 없는지 먼저 중간중간 물어봐 주셨다. 주문한 음식을 먹는 방법과 주변에 혼자 가기 좋은 식당이나 여행지도 알려주시는데 분명 혼자 식사했음에도 둘이서 먹은 기분이 들었다. 

아예 1인 손님만 주문할 수 있는 혼밥 메뉴를 둔 가게들도 있다. 여럿이서 오면 선택도 못하는 실속 있는 메뉴는 '아 혼자 와서 너무 다행이다'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특권을 누리는 기분이 든다. 이런 맛집을 발견한다? 바로 혼밥 맛집으로 이곳저곳 소문을 내고 다닌다. '이런 곳은 모든 혼밥러의 성지가 되어야 해!' 감사함에서 비롯된 사명감이 쑥쑥 자란다.

나는 개인적으로 여럿이서 가야만 하는 맛집보다는 혼자 가도 맛있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맛집을 더 아낀다. 사장님 입장에서는 1인 손님을 챙긴다는 게 다소 소홀할 수 있는 일임을 다 년간의 방문 경험으로 알게 되었기에 더 소중하게 느껴진다. 


사장님께서 주신 딸기는 요거트볼과 딸기 라떼를 다 먹은 후에 디저트로 말끔하게 먹었다. 과일을 볼 줄 모르는 사람이 봐도 이건 분명 최상급이라고 생각될 정도로 반질반질하고 말끔한 빨간색이었던 딸기 맛은 당도 높고 식감이 생생한 맛이었다. 덕분에 가장 좋아하는 과일 중 하나인 딸기에 대한 좋은 추억이 늘었다. 그 뒤로도 딸기를 보면 이때 딸기 두 개가 생각난다. 조만간 이 감사함을 갚으러 또 방문하려 한다. 심지어 주문한 요거트볼도 완벽했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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