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뚜벅이는 윤슬 Aug 09. 2021

사치스럽던 '그 음식'과 친해지기까지

집에서 가족들과 식사를 하면 항상 양상추를 넙적한 대(大)자 접시에 수북이 쌓아놓고 밥을 먹는다. 닭볶음탕, 생선구이, 김밥 같은 집밥부터 치킨, 족발 등의 배달 음식까지 식탁 위에 어떤 음식이 올라와도 양상추 샐러드가 꼭 함께 놓인다. 다른 집도 이러겠지-했는데 일부러 다이어트한답시고 먹는 경우는 있어도 김치처럼 꼭 먹지는 않는다고 하더라. 식사를 준비할 때 냉장고에서 양상추(없을 때는 상추나 양배추)를 꺼내는 일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오이나 당근 등 다른 채소가 있을 때는 함께 꺼내 썰어 토핑처럼 섞는다. 하루견과를 뜯어 붓는 것도 잊지 않는다. 드레싱은 그때그때 다르다. 레몬 갈릭, 참깨 드레싱 등 샐러드용 드레싱이 있을 때는 그것을 넣으면 되고 없으면 양상추만큼이나 항상 구비되어 있는 플레인 요거트를 부으면 된다. 아, 동생은 드레싱을 안 뿌려 먹어 드레싱을 뿌릴 때는 접시의 반만 뿌려야 한다.

이렇게 집에서 충분히 샐러드를 먹으니 굳이 밖에서 샐러드를 사 먹지 않았다. 무엇보다 가격이 너무 비싸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오천 원대부터 만 오천 원대까지 재료의 종류나 플레이팅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 집 밖 샐러드들은 어떤 식이어도 사치 같았다. 특히 만원 이상의 샐러드를 보고 있으면 '저 돈이면 몇 주치 양상추가 나오는데?' 혀를 끌끌 찼다.


바깥 샐러드에 대한 불호는 2020년 다이어트를 하면서 달라졌다. 식단관리를 이유로 밖에서도 샐러드를 사 먹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기분 좋게 먹었던 건 아니다. '00 샐러드 하나요~'하고 카드로 만원 가까이 결제할 때 과소비도 이런 과소비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도 '어쩔 수 없이'라는 이유로 여러 가게의 샐러드를 접했고 샐러드 속 다양한 재료들을 씹다 보니 자연스레 사 먹는 샐러드만의 매력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이파리부터 병아리콩 훈제오리 참치 연어 등 집에서는 곧잘 넣어 먹기 힘든 재료들이 예쁜 접시에 담겨 나오는데 먹을 때마다 달라지는 샐러드 맛은 샐러드라고 칭하기에는 치킨이나 파스타만큼 맛있었다. 집 밖 샐러드의 매력에 스며든 것이다. 가격에 대한 부담은 자연스레 잊혀 갔다. 생각해 보니 이것보다 덜한 맛의 수제버거 파스타 디저트는 덥석 사 먹으면서 이렇게 맛있는 샐러드를 가격 때문에 뭐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 부담감을 최종적으로 잊혀준 계기는 어느 유튜버의 말에 있다.

"샐러드 비싸다고 안 드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 비싸다고 생각하는 샐러드에 돈 아끼고 기름지고 자극적인 음식만 먹다가 훗날 건강 잃고 병원에 드러누우면 샐러드 값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큰돈을 지불하게 될 거예요. 지금 그 샐러드 값이 결코 비싼 게 아닙니다. 잘 챙겨 드세요."

건강하게 늙고 싶은 것이 중요한 삶의 목표 중 하나인 나에게 더 이상 샐러드 앞에서 돈을 아껴야 할 이유는 남지 않게 됐다.


지금은 다이어트가 끝났는대도 먹고 싶은 음식 일 순위가 사 먹는 샐러드인 날이 있을 정도로 집 밖 샐러드를 자주 먹는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가도 샐러드 메뉴 하나쯤 시키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다. 

여행 중 브런치 가게에서 샐러드를 포장해 숙소에서 먹기도 한다. 다시 오기 힘든 곳에서 샐러드 맛집을 발견하면 아쉬움이 여행이 끝난 며칠 뒤까지 남아있다.

집 식탁에는 여전히 샐러드가 시도 때도 없이 올라오고 집에서도 원 없이 생채소를 와그작 와그작 씹는다.

하지만 양상추가 냉장고에 있어도 가끔은 굳이 배달 샐러드가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집 밖의 사치스럽지만 사치가 아닌 샐러드의 매력을 이제는 너무 잘 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