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서 가족들과 식사를 하면 항상 양상추를 넙적한 대(大)자 접시에 수북이 쌓아놓고 밥을 먹는다. 닭볶음탕, 생선구이, 김밥 같은 집밥부터 치킨, 족발 등의 배달 음식까지 식탁 위에 어떤 음식이 올라와도 양상추 샐러드가 꼭 함께 놓인다. 다른 집도 이러겠지-했는데 일부러 다이어트한답시고 먹는 경우는 있어도 김치처럼 꼭 먹지는 않는다고 하더라. 식사를 준비할 때 냉장고에서 양상추(없을 때는 상추나 양배추)를 꺼내는 일은 자연스러운 수순이다. 오이나 당근 등 다른 채소가 있을 때는 함께 꺼내 썰어 토핑처럼 섞는다. 하루견과를 뜯어 붓는 것도 잊지 않는다. 드레싱은 그때그때 다르다. 레몬 갈릭, 참깨 드레싱 등 샐러드용 드레싱이 있을 때는 그것을 넣으면 되고 없으면 양상추만큼이나 항상 구비되어 있는 플레인 요거트를 부으면 된다. 아, 동생은 드레싱을 안 뿌려 먹어 드레싱을 뿌릴 때는 접시의 반만 뿌려야 한다.
이렇게 집에서 충분히 샐러드를 먹으니 굳이 밖에서 샐러드를 사 먹지 않았다. 무엇보다 가격이 너무 비싸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오천 원대부터 만 오천 원대까지 재료의 종류나 플레이팅에 따라 가격이 달라지는 집 밖 샐러드들은 어떤 식이어도 사치 같았다. 특히 만원 이상의 샐러드를 보고 있으면 '저 돈이면 몇 주치 양상추가 나오는데?' 혀를 끌끌 찼다.
바깥 샐러드에 대한 불호는 2020년 다이어트를 하면서 달라졌다. 식단관리를 이유로밖에서도 샐러드를 사 먹기 시작했다. 처음부터 기분 좋게 먹었던 건 아니다. '00 샐러드 하나요~'하고 카드로 만원 가까이 결제할 때 과소비도 이런 과소비가 없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도 '어쩔 수 없이'라는 이유로 여러 가게의 샐러드를 접했고 샐러드 속 다양한 재료들을 씹다 보니 자연스레 사 먹는 샐러드만의 매력을 알아가기 시작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이파리부터 병아리콩 훈제오리 참치 연어 등 집에서는 곧잘 넣어 먹기 힘든 재료들이 예쁜 접시에 담겨 나오는데 먹을 때마다 달라지는 샐러드의 맛은 샐러드라고 칭하기에는 치킨이나 파스타만큼 맛있었다. 집 밖 샐러드의 매력에 스며든 것이다. 가격에 대한 부담은 자연스레 잊혀 갔다. 생각해 보니 이것보다 덜한 맛의 수제버거 파스타 디저트는 덥석 사 먹으면서 이렇게 맛있는 샐러드를 가격 때문에 뭐라 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 부담감을 최종적으로 잊혀준 계기는 어느 유튜버의 말에 있다.
"샐러드 비싸다고 안 드시는 분들이 있는데 그 비싸다고 생각하는 샐러드에 돈 아끼고 기름지고 자극적인 음식만 먹다가 훗날 건강 잃고 병원에 드러누우면 샐러드 값은 비교도 안 될 정도로 큰돈을 지불하게 될 거예요. 지금 그 샐러드 값이 결코 비싼 게 아닙니다. 잘 챙겨 드세요."
건강하게 늙고 싶은 것이 중요한 삶의 목표 중 하나인 나에게 더 이상 샐러드 앞에서 돈을 아껴야 할 이유는 남지 않게 됐다.
지금은 다이어트가 끝났는대도 먹고 싶은 음식 일 순위가 사 먹는 샐러드인 날이 있을 정도로 집 밖 샐러드를 자주 먹는다.
이탈리안 레스토랑을 가도 샐러드 메뉴 하나쯤 시키는 것에 주저하지 않는다.
여행 중 브런치 가게에서 샐러드를 포장해 숙소에서 먹기도 한다. 다시 오기 힘든 곳에서 샐러드 맛집을 발견하면 아쉬움이 여행이 끝난 며칠 뒤까지 남아있다.
집 식탁에는 여전히 샐러드가 시도 때도 없이 올라오고 집에서도 원 없이 생채소를 와그작 와그작 씹는다.
하지만 양상추가 냉장고에 있어도 가끔은 굳이 배달 샐러드가 먹고 싶을 때가 있다. 집 밖의 사치스럽지만 사치가 아닌 샐러드의 매력을 이제는 너무 잘 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