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뚜벅이는 윤슬 Sep 25. 2021

저 먼저 2022년 시작하겠습니다

다짐을 꼭 새해 첫날부터 할 필요는 없으니까

퇴사한 지 한 달.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시간들이 충분히 마련된 하루가 계속되고 있고 나 역시 그런 일상에 익숙해졌다. 덕분에 책상 앞에 앉아 미래에 대한 고민과 계획이 주인공이 되는 시간들이 많아졌다. 마침 삼십 대를 앞두고 있는 스물아홉에게 그 시간은 심각해지기 딱이다. 나이가 별건가-싶으면서도 어쩌면 내 인생에서 마지막으로 주도적인 인생을 살 수 있는 십 년일지도 모른다는 예감이 들기 때문이다. 그것이 사실이 되든 그저 섣부른 걱정에 불과해지든 계획 장인으로서 대비를 안 할 수가 없는 시점이다.

일단 올해 버킷리스트를 얼마나 실천하고 있는지 점검했다. 매년 새해 버킷리스트를 작성할 때 이전 해에 실천한 버킷리스트를 토대로 작성한다. 못 지킨 것은 다시 도전하고 지킨 것들의 자리는 새로운 계획으로 채운다.

티켓 영수증 등을 붙이며 꼼꼼하게 일기를 써온 탓에 두툼해진 다이어리 맨 첫 장에는 '생산성 꽉 채운 사람 되기'라는 목표와 함께 다음과 같이 적혀있었다.


1. 이직하기

2. 사이드 프로젝트

3. 글쓰기 연습

4. 재테크 실천하기

5. 경험 많이 하기

6. 말 잘하기

7. 건강관리

8. 공부하기


와 이렇게 테두리 없는 계획은 처음 보는데? mbti도 INFJ이고 가족 지인 등 주위 사람들이 모두 인정하는 계획 장인인 내가 썼다고 믿기지 않는 두리뭉실한 버킷리스트다. 아마 새 다이어리에 또박또박 글자를 쓰겠다고 최대한 짧게 정리해서 쓴 것 같다. 가뜩이나 다이어리 맨 첫 장이니. 헛헛한 웃음을 지으며 얼마큼 계획을 지키고 있나 머릿속으로 떠올려봤다.


이렇게 두리뭉실한 계획들도 나름 계획이라고 꽤 노력하고 있었다. 

1. 이직

이직은 실제로 했다. 코로나의 여파로 원치 않는 업무를 하는 것이 인생에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느낌이었고 결국 스타트업으로 이직했다. 

하지만 현재는 그 스타트업도 퇴사를 했다는 게 반전. 회사는 역시 다녀봐야 실체를 안다.

2. 사이드 프로젝트

사이드 프로젝트는 비교적 성공적으로 하고 있다. 유튜브 채널을 오픈해 매월 친구와 영상을 만들고 있다. 이번 달은 집안 사정으로 건너뛰었지만 나머지 달은 꼭 채울 예정이다. 호텔 뷔페를 촬영하는 연말까지 파이팅!

3. 글쓰기 연습

글쓰기 연습도 계획대로 브런치를 매주 꾸준히 쓰고 있다. 매주 긴 글을 쓰는 일은 생각보다 어려워 한 주를 건너뛰고 다음 주나 그다음 주에 몰아 쓴 적도 있지만 포기하지 않고 이번 글까지 사십 건의 글을 발행했다.

4. 재테크 실천하기

재테크도 관련 책과 뉴스레터를 지속적으로 읽고 있으며 실행에 옮기고 있다. 종잣돈이 적고 현재 퇴사로 수입도 없어 지지부진한 것은 아쉽지만, 절약하고 저축하는 습관도 기르고 있고 예적금과 주식도 잘 굴러가고 있으니 이만하면 선방이라고 생각한다. 


이 외에는 모든 것이 아쉽다. 

5. 경험 많이 하기

코로나 탓도 있지만 작년까지의 나에 비해 적극적이지 못해 새로운 경험을 많이 하지 못했다. 그나마 이 게으른 사태를 인지하고 하반기부터는 전시도 찾아가고 등산도 열심히 다녔는데 그럼에도 턱없이 부족한 느낌을 자주 받는다. 하루빨리 밖을 마음껏 돌아다닐 수 있는 제약 없는 상황이 왔으면 좋겠고 경험으로 인생을 만들어 가자는 가치관을 실천하는 적극성을 되찾고 싶다. 

6. 말 잘하기

말을 똑 부러지게 잘하고 싶은데 다독 외에는 아무 노력도 하지 않았다. 유튜브에 말 잘하는 방법을 검색하기도 했는데 말은 무조건 많이 해 보면서 안 좋은 말투를 고치고 좋은 단어를 선택해 가야 한다고 한다. 문제는 말을 자주 할만한 기회가 많지 않았다. 코로나와 퇴사로 회사 동료와 말하는 달이 몇 달 되지 않았고 누구를 만나지도 않으니 말을 정말 드문드문하게 되더라. 이러다 입이 퇴화되는 건 아닐까.

7. 건강관리

건강관리는 제대로 실패했다. 다이어트로 인한 무월경이 여전해 처방받은 피임약을 두 통째 먹고 있다. 피임약을 먹으면 하는데 또 안 먹기 시작하면 안 하니 나 참. 그 와중에 운동은 싫어해 식단으로만 초절식을 해서 정신건강까지 많이 망가졌다. 올해 안에 고치겠다는 마지막 다짐으로 어제부터 칼로리를 신경 쓰지 않고 건강하게 끼니를 챙겨 먹고 운동량을 늘렸다. 이렇게 하면 건강도 되찾고 살도 빠질지 모르겠지만 일단 남은 백일 간 꾸준히 해 볼 생각이다. 최근에는 요가에도 관심이 가 월급을 다시 받으면 요가를 다녀볼까 한다.

8. 공부하기

공부하기는 무언가에 푹 빠져 필기도 하고 집중도 하고 싶은 마음에서 쓴 것인데 제대로 하지 못했다. 그만한 집중력을 발휘한 적이 없다. 확실히 해가 바뀔수록 집중력이 떨어진다. 책를 한 번 펼쳤을 때 집중하는 시간이 점점 짧아지고 있고 TV를 틀어놓고도 휴대폰을 하니 공부도 다 때가 있다는 옛말은 진리다. 역시 학원을 다녀야 하나 고민하고 있다(고민하는 이유는 이전에 중국어 학원을 팔 개월간 다니다가 때려치운 전력이 있어서다).


뭉뜬 그려진 계획만큼이나 엉성하게 실천하고 있는 2020년 버킷리스트를 바탕으로 2021년 버킷리스트를 일찍이 작성했다. 계획 장인은 아무리 계획이 실패로 돌아가도 계획 세우기를 멈출 수 없다. 


1. 비상금 600만 원 만들기 (세 달치 월급은 있어야 갑작스레 퇴사하게 되거나 집에 일이 생겨도 불안하지 않을 수 있다고 한다)

2. 경제/재테크 뉴스레터 꾸준히 읽기 (몰라 일단 읽어. 기억 안 나도 계속 읽다 보면 뭐라도 되겠지)

3. 영어회화 여행 가서 말할 수 있을 정도로 공부하기 (생각보다 여행 가서 쓰는 말은 한정적이니 이 정도부터 시작해 보자)

4. 유튜브 영상 35개 만들기 (월에 3건씩 열두 달을 채우면 된다)

5. 뉴스레터 한 시즌 운영해보기 (시즌제로 해야 내가 뉴스레터를 꾸준히 운영할 의지가 있는지 쟤 볼 수 있을 것 같다)

6. 무월경 극복하기&건강 되찾기 (특별히 체중이 늘지 않는 이상 탄수화물 일 130~150g 채우기)

7. 요요 안 오게 체중 조절하기 (대신 강박은 가지지 않기/잘 먹고 운동 열심히 하기)

8. 등산 계속 꾸준히 다니기 (월 2회를 목표로!)


올해까지 이 버킷리스트를 가져가면 모두가 계획을 세우는 연말에는 일 분기가 지난 셈이 된다. 남들보다 일 분기 더 긴 2022년을 지내는 것이다. 

일찍 시작하는 만큼 이십 대의 끝과 삼십 대의 시작에 최선을 다하고 싶다. 조금이라도 몸과 마음이 건강한 상태에서 새로운 나이대를 마주하는 것이 좀 더 일찍 시작하는 2022년 첫 목표다.







매거진의 이전글 물건에 삶을 기대는 편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