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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Nov 08. 2021

나는 엄마표 '닭도리탕' 먹을래

엄마표 닭도리탕을 다시는 못 먹는 날이 오면 여러모로 슬플 것 같다

가족의 생일이 되면 엄마는 항상 생일 주인공이 먹고 싶은 음식을 요리한다. 올해 9월, 내 생일에도 마찬가지였다. 

"생일에 뭐 먹을래?" 

엄마가 묻기만을 기다렸던 나는 바로 대답한다.

"닭도리탕!"

미역국은 필요 없다며 요청한 생일 메뉴는 엄마표 닭도리탕이었다.  


*어릴 적부터 엄마표 닭볶음탕을 '닭도리탕'이라 불러온 만큼 어쩐지 엄마가 만든 요리는 닭볶음탕보다는 닭도리탕이라는 단어가 더 잘 어울린다. 이 글에서도 예외적으로 엄마가 만든 닭볶음탕은 '닭도리탕'이라 칭하겠다.




소고기보다 닭고기를 훨씬 좋아한다. 남들은 회식할 때 소고기집에 가는 것이 베스트라고 생각하지만 나는 닭고기집으로 가는 것을 백 배 천 배 더 좋아한다. 학창 시절, 학원 선생님은 내게 양계장 집에 시집가야겠다며 혀를 내둘렀다. 심지어 닭띠다. 이쯤 되면 인생이 닭이 아닐까.

그만큼 닭볶음탕이 맛있다는 여러 음식점을 많이 가 봤다. 몇십 년간 자리를 지켜온 닭볶음탕 집에서 찌그러진 냄비에 풀풀 끓여 먹는 닭볶음탕까지도 먹어 봤지만, 역시 엄마가 만든 닭도리탕을 따라잡지 못하더라. 밖에서는 엄마가 끓인 닭도리탕과 비슷한 것도 먹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된 뒤로는 굳이 밖에서 사 먹지 않는다. 생일처럼 드문드문 엄마한테 '헤헤-' 웃으며 부탁한다. 


엄마표 닭도리탕은 밖에서 보는 닭볶음탕들과는 비주얼부터 다르다. 만드는 방법은 흔히 돌아다니는 레시피와 비슷한데, 국물이 훨씬 걸쭉하고 색은 시뻘겋다. 걸쭉하고 시뻘건 국물만 먹어도 이미 게임이 끝나는 것이다. 여기에 밥까지 비벼 먹으면? 나는 이마를 짚으며 눈을 감는다. 그리고 감탄한다.

"와... 갑자기 내가 살아있는 게 너무 행복해졌어."

닭고기도 살이 굉장히 부드럽다. 조금만 더 끓이면 닭 뼈들이 알아서 떨어져 나올 것 같다. 그 때문인지 안까지 양념이 굉장히 잘 배어있다. 왜 그럴 때 있지 않은가. 두꺼운 퍽살에 양념이 잘 배어있지 않아 생 살코기만 먹는 것 같을 때. 너무 건강해서 별로인 맛. 엄마표 닭도리탕에는 그런 조각이 없다. 이러니 계속 들어갈 수밖에. 심지어 항상 엄마표 닭도리탕은 접시에 덜어 나오지 않고 끓인 냄비째로 식탁 위에 올려진다. 그래야 더 맛있다는 것이 이유인데, 때문에 양 조절이 불가해져 항상 과식이라는 어쩔 수 없는 결말로 이어진다. 큰 냄비 하나를 끝장내야 식사도 끝이 난다. 


요리의 'ㅇ'자도 안 하다가 몇 년 전부터 요리의 재미를 알게 되면서 자연스레 엄마가 어떻게 닭도리탕을 만드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나중에 혼자 살면 먹고 싶을 때 만들어 먹어야 하는데 레시피를 모른다는 이유로 다시는 못 먹을 생각을 하니 암담해지기도 하고. 

"엄마, 엄마 닭도리탕의 비결을 뭐예요?"

"비결이 뭐 있나. 그냥 만드는 거지"

'딸한테도 말을 안 해주는 일급비밀인 건가- 아닌데. 분명 다른데.'

엄마의 시크한 답에 셜록이 될 것 같은 기분이 드는 순간,

"오래 끓이고 끓이다가 감자를 하나 으깨"

유레카! 국물이 걸쭉한 이유는 감자에 있었다. 끓이면서 익은 감자 중 하나를 숟가락으로 툭-툭- 깨서 감자의 전분으로 걸다란 국물을 만드는 거였다. 그런 식으로 푹 끓이니 닭고기 안에도 그 국물이 베면서 고기 맛도 더 진해지는 것이고. 와 역시 엄마는 요리 천재다. 내가 엄마만큼 나이를 먹어도 저런 요리 실력을 갖출 수 있을까. 불가능이겠지? 그때도 엄마한테 전화해서 "엄마, 그거 어떻게 만든 거야?" 그럴 것이 뻔하다.

사실 이렇게 엄마표 닭도리탕 레시피를 알아도 아마 같은 맛은 나지 않을 것이다. 그건 닭도리탕이 아니라, 그냥 어설프게 따라한 나만의 닭볶음탕이 되겠지. 그렇게 뭔가 부족한 닭볶음탕을 먹으면서 엄마를 그리워할 거다.


어쩌면 나의 닭 사랑은 엄마가 어릴 적에도 간간히 만들어 준 닭도리탕이 시작이었을지도 모른다. 가족이 식탁 위에 둘러앉아 옅게 부글대는 닭도리탕을 냄비째 식탁 위에 올려두고, 밥에 국물을 슥슥 비벼 먹다가 손가락에 양념을 묻히며 뜯어먹기도 하는 그 순간이, 한창 자라나는 어린이 시절의 나에게 너무나 큰 행복이어서 그게 닭에 대한 애정으로 이어졌을지도 모른다. 어릴 적 좋은 경험이 쌓이고 쌓여 그게 인생의 방향을 결정하게 한다고 하지 않나. 나에게는 그 '좋은 경험'이라는 게 엄마표 닭도리탕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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