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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Aug 24. 2022

굳게 지키는 것들

단어집 - 견지(堅持)

애매모호하게 알고 있는 단어들이 있다. 대충 어떤 뜻인지는 알고 있으나 "그게 뭔데?" 물으면 명확하게 "그건 이거야"라고 설명할 수 없는 단어들. 이런 단어도 있다. 잘 알지만 나와 연결 지어 생각해 본 적 없는 단어들. 그저 어디서 '보기만 한 단어들'. 알지만 모른다고 말해야 할 것 같은 단어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기로 했다. '이 단어는 나에게 어떻게 대입할 수 있을까?'


견지(堅持)
어떤 견해나 입장 따위를 굳게 지니거나 지킴



아직 인생을 논하기에는 꼬꼬마가 따로 없지만 아이도 자신만의 생각을 갖고 있듯이 나름의 견해가 있다. 다양한 사람과 일터 나라 환경 길 등 때로는 눈에 보이고 때로는 보이지 않는 것들이 오감과 마주하면서 만들어지는 생각들이다. 그중에서도 몇 가지는 변함없이 '이건 반드시 이래'라고 믿거나 현재까지의 인생에서는 참인 게 있다. 내심 그렇게 되길 바라면서 고집스럽게 믿는 것도 있고 경험주의자답게 많은 경험이 근거가 돼주는 것도 있다. 그렇게 끌고 안고 업어 온 견지하는 것들에 대해 정리해보자면 다음과 같다.


뭐든지 해보고 판단한다

앞서 말한 경험과도 연결성이 있는 부분이다. 어떤 것도 들은 것만으로 판단하지 않는다. 연예인에 대한 기사들도 여행지에 대해 말하는 평도 '그렇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특히 부정적인 말에 대해서는 더욱이 경계한다. 실제로 별로인지는 내가 직접 경험하고 판단하는 게 가장 맞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때문에 경험하지 않고 이렇다 저렇다-하는 말들을 경계한다. 여행자로 살면서 가장 듣기 싫은 말이 "인도는 위험해"라는 말이다. 수십 번을 들었다. 그것도 여행자도 아닌 사람들에게. 여기에 웃긴 포인트가 있는데 인도를 실제로 가 본 여행자들은 하나같이 "너무 더럽고 복잡하고 불편한데 가장 좋았던 나라야. 여러 모로 참 알 수 없고 신비로운 나라야"라고 말한다. 내가 경험한 것이 아니니 어떤 말에도 치우칠 수 없지만 분명한 건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제멋대로 결론을 내리는 게 싫다. 

때문에 경험하지 않고 이렇다 저렇다-하는 말들을 경계한다. 여행자로 살면서 가장 듣기 싫은 말이 "인도는 위험해"라는 말이다. 수십 번을 들었다. 그것도 여행자도 아닌 사람들에게. 여기에 웃긴 포인트가 있는데 인도를 실제로 가 본 여행자들은 하나같이 "너무 더럽고 복잡하고 불편한데 가장 좋았던 나라야. 여러 모로 참 알 수 없고 신비로운 나라야"라고 말한다. 내가 경험한 것이 아니니 어떤 말에도 치우칠 수 없지만 분명한 건 경험하지 못한 사람이 제멋대로 결론을 내리는 게 싫다. 

이는 사람을 생각할 때 항상 중심축을 담당하고 있는 가치관이다. 누가 "쟤는 그렇다며?" "~해 보이던데" "예전에 내가 봤는데 걔는 인성이 어쩌고저쩌고..."와 같은 말을 잘 믿지 않는다. 대충 싸우지 않기 위해(어차피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자기 고집이 세다) "그래?" 마음에 없는 말을 하고 굳이 길게 살을 덧붙이지 않는다. 템플스테이 숙소에 있던 책에서 '그 사람의 신발을 신고 걸어본 적이 없다면 함부로 판단하지 말라'는 문장을 본 적이 있다. 내가 가진 가치관을 한 줄로 설명해주는 명쾌한 문장이었다. 그 사람이 되어보지 않았으면 알 수 없는 거다. 그 사람이 무조건 옳다는 것이 아니라, 아예 우리에는 그 어떤 것도 '걔는 그래' '그건 이래' 확신할 권한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경험을 좋아한다. 타인의 주관이 들어가 나도 그럴지는 불확실한 사실이 아니라, 내가 '직접' 보고 했다는 확실한 근거가 생기니까. 이십 대에 후회가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보잘것없다고 생각한 경험들이 선이 되고 면이 되어 인생을 바꿨다. 그래서 유튜버 '밀라논나'님의 말씀에 크게 공감한다.

'안 해보고 미련 갖는 것보다는, 해보니까 별 거 없더라가 더 낫다'

삼십 대도 많은 것을 경험하며 나만의 취향과 주관을 만들고 싶다. 그렇게 예상치 못한 미래로 어쩌면 아득한 꿈으로만 가지고 있던 미래로 가고 싶다.


모두 그 영화가 재미없다고 해도 나한테 재미있으면 그건 재미있는 영화다

다수의 의견에 선택하던 시절이 있었다. 특히 학생 신분일 때 심했다. 나만의 주관을 지키는 게 세상에서 가장 어려웠다. 늦게까지 다들 노는 분위기면 피곤하지만 버텼고, 다들 이렇게 노는 게 재미있다고 하면 '나도'라고 말했다. 타인의 취향에 맞춰 사는 게 다 함께 어울려 사는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때다.

그 착각은 이십 대 초~중반 동안 쌓은 나만의 시간과 경험이 중반 이후 적은 성공들을 만들어내면서 바뀌었다. 블로거 여행자 에디터 크리에이터 등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다양한 타이틀이 생기면서 나를 더 잘 이해할 수 있게 됐고 존중할 수 있게 됐다. 밤에 10시 반이면 침대에 누울 수 있어야 하고 일출 시각에 일어나는 것은 자신이 있는 사람. 그렇지만 아침에는 혼자만의 시간을 가져야 하는 사람. 로맨스 영화보다는 액션 스릴러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 제자리에서 뛰는 러닝머신보다는 풍경이 바뀌고 목적지가 명확한 등산과 러닝을 좋아하는 사람. 국내의 방방곡곡을 여행하는 사람이 많아졌으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국내여행도 해외여행만큼 아끼는 사람. 미래지향적인 사람. 그래서 버킷리스트 목표에 대한 진지한 주제의 대화를 좋아하는 사람. 

질문지가 바뀌면서 더욱더 몰입하지 않는 mbti이지만 원체 운세 사주 심리테스트 결과를 딱 재미까지만 받아들인다. 팔자도 좋고 싫고도 다 하기 나름이다. 정해진 규격대로 사는 우체국 택배 박스 같은 사람은 되고 싶지 않다.


성실, 그 시시한 단어의 놀라운 힘이란

유병욱 CP님이 하셨던 말씀을 이승희 작가님 책을 통해 접했다. 격하게 공감하는 문장이다.

십 대 내내 생활기록부에는 성실이라는 단어가 적혔다. 너무 자주 쓰여서 진부하다고 느껴질 정도로 항상 쓰여 있었는데 지금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는 걸 잘 안다. 선생님들 입장에서는 조용한 애가 매일같이 제일 먼저 교실 자물쇠를 따고 창문을 열어 놓으니 성실하다는 수식어가 가장 먼저 떠올랐을 거다. 숙제도 꼬박꼬박 해 갔고 학교 '생활'에 대해서는 FM인 학생이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완벽성에 좀 문제가 있는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시키는 건 다 하고 묵묵히 오래 끌고 가는 것도 능한 편이다.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고 했으니 여든까지 이렇게 살 가능성이 높다.

사실 성실함이 각광받는 세상은 아니다. 묵묵히 하는 과정보다 잘 해내야 하는 결과에 더 주목한다. '알잘딱깔센'이라는 유행어가 통하는 현재다.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있게'가 현실적으로 가능한 건지 의문인 나로서는 참 살기 어려운 세상이다.

완벽하게 처리하는 것에 영 소질이 없는 내가 유일하게 믿는 구석은 성실함이었다.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했다. 대외활동도 했고 블로그도 했고 직장생활도 낯선 사람들과의 어색한 대화도 일단 했다. 민망하기도 억울하기도 화가 나기도 서럽기도 도망치고 싶기도 했지만 어쨌든 그 시간들을 일단 마주하고 보내고 또 마주했다. 그게 쌓이고 쌓여 새로운 능력을 갖게 하기도 하고 처참했던 역량을 개선시켜 봐 줄 만한 정도로 만들기도 했으며 "에이... 내가 어떻게." 하던 일을 하게 만들기도 했다. 이쯤 되면 성실함이 나를 키웠다고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지금도 비장의 무기를 성실함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건 남들보다 현저히 부족하다. 특히 알잘딱깔센같은 건 미션 임파서블이다. 그 불가능한 미션을 성실함이라는 요즘 세상에서 살아남는 방정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가능케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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