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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Apr 04. 2023

새 마음 줄게 헌 마음 다오

양평 용문사 템플스테이 1박 2일 후기

2023년의 1분기가 지난 시점, 나는 연초에 비해 얼마나 쌩쌩한 정신을 갖고 있나. 세 달 동안 정말 많은 일을 벌이고 쳐냈다. 해냈다고 하기에는 피로가 쌓이고 쌓여 좀 버겁다고 생각할 찰나이기 때문에 쳐냈다-는 표현이 더 맞다. 너덜너덜해진 정신을 '어떻게 좀 하고 싶다' 생각하며 템플스테이를 예약했다. 그렇게 다시 한번 배낭을 메고 찾아간 아홉 번째 템플스테이 사찰은 '용문사'다.


사찰을 조금 아는 사람들에게 용문사는 모르기 어렵다. 가장 오래된 은행나무가 살고 있기 때문이다. 1100년을 살았다는 은행나무의 높이는 약 42m인데 그 큰 덩치에 매년 은행 열매과 노란 은행잎이 달리니 얼마나 장관이겠는가. 가을에는 용문사 때문에 양평에 진입하는 곳부터 주차장이라고 한다.

'그런 사찰을 왜 봄에?'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용문사는 '템플스테이'도 유명하다는 점.

원래도 템플스테이 프로그램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는 후기들로 인해 템플스테이를 하려는 사람들에게 나름 인기가 있었는데 TV프로그램 <나 혼자 산다>에서 전현무가 템플스테이로 왔다가 연말에 연예대상을 타면서 미리 다음 달 템플스테이를 예약하지 않으면 그 달에는 체험이 어려워졌다. 최소한 한 달 전부터 템플스테이를 가야겠다고 마음먹어야 갈 수 있는 곳인 거다. 작년 참가자 수는 전국 최상위권에 다 달았다는 스님의 말씀이 그 인기를 증명한다.

용문사 템플스테이를 3월에 예약하면서 궁금했다. 왜 용문사 템플스테이는 이렇게 유별나게 만족도가 높고 인터넷상에 후기가 많았을까. 

다녀온 지금은 잘 안다. 나조차도 빨리 소문내고 싶어서 이렇게 후다닥 3일도 지나기 전에 글을 쓰고 있으니.

기억이 가장 생생할 때 기록하는 용문사 템플스테이가 사람들의 마음에 미소를 전하는 방법은 다음과 같다.




은행나무에 가려진 용문사의 봄

이번 템플스테이에서 만난 최고의 반전이다. '용문사는 은행나무인데 봄에 가야 뭐....' 안일했던 마음이 죽비를 따딱- 맞았다. 용문사에는 불꽃 없는 불꽃놀이가 한창이었으니까. '무슨 색'이라고 규정지을 수 없는 꽃들이 공작새가 날개를 펼치듯 풍성하게 양팔을 벌리고 있었다. 화려하지만 전체적인 풍경을 해치지 않는 모습들이 보기 좋았다. 태어나서 본 불꽃놀이 중 가장 눈이 편안한 불꽃이었다.

온갖 꽃이 다 찾아왔다. 매화・진달래・개나리・벚꽃 등 봄에 기지개를 켜는 꽃들이 모두 어김없이 꽃잎을 피워냈다. 스님들께서는 봄마다 매화향의 진한 향을 맡는다고 한다. 심지어 벚꽃향까지도. 이상하게 도심에서는 벚꽃이 빼곡한 벚꽃 명소를 가도 그 향이 하나도 나지 않는데, 용문사의 벚꽃들은 향이 난다며 공해 때문인지 모르겠다고 말씀하셨다. 벚꽃도 향이 나는구나! 스님 말씀을 듣고 꽃잎에 코를 가까이하니 향이 있더라. 신기했다. 


새벽 4시의 밤하늘 그리고 일출

용문사를 찾아가면서 또 하나 생각하지 못했던 것이 있다면 밤하늘이다. 얼마 만에 이런 밤하늘을 본 건지 모르겠다며 입을 손바닥으로 틀어막은 건 새벽 4시. 평소에는 하늘을 볼 리가 만무한 시간에 일어나 방을 나와 하늘을 바라봤고 바로 "우와....". 카메라를 의자 위에 올려놓고 조리개를 잔뜩 열어 찍은 결과물이 바로 이 사진이다. 

별이 촘촘하게 하늘을 채웠다. 별마다 빛의 세기가 다른데 그게 마치 오케스트라 단원들의 연주 같았다. 모두가 소리를 크게 내지 않아 더 조화로운. 

살다 보면 우주 속에 살고 있다는 걸 망각할 때가 많다. 사는 세상이 신비롭다는 감상을 하기 힘든데 이날 자각했다. 아, 내가 우주에 살고 있구나. 지금 우주에서 우주의 또 다른 장면을 보고 있구나. 아득한 우주와 급속도로 가까워지는 순간이다. 

문득 별사진을 찍으러 은하수 사냥을 다니는 작가분들이 왜 수고로움을 감당하는지 이해된다. 나도 찍으러 다니고 싶어 졌으니. 단순히 하늘을 찍는 게 아니라 우주를 찍는 거였어.

1일 차에 스님께서 앞장서 사찰을 구경시켜 주면서 말씀하셨다.

"여기 돌계단을 따라 문화재가 있는 곳까지 산을 오르면 최고의 일출을 볼 수 있어요. 내일 시간 되면 다녀오세요. 10분만 올라가면 되니까."

일출? 오호라. 이럴 때 봐야지. 다음 날 아침 공양을 먹고 돌계단을 밟았다. 일출을 보러 가는 것 치고 난이도 최하에 속하는 오르막길 이후에는 이런 절경이 펼쳐진다. 해가 뜨지도 않았는데 시작부터 일출급이다. 자연이 선사하는 그라데이션은 경이롭다. 언젠가 이 장면을 캔버스에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보라 주황

노랑 붉은색이 차곡차곡 쌓여 한 폭의 그림을 완성했다.

이날 많은 구름으로 동그란 해는 보지 못했지만 이 장면을 봤으니 아쉽지 않다. 어쩌면 또 한 번 오라는 자연의 메시지일지도.


템플스테이와 잘 어울렸던 유유자적 고양이들

용문사에는 고양이 세 마리가 살고 있다. 언뜻 들은 바로는 버림받은 고양이들이 여기에 자리 잡았다는데 서로에게 친구가 되어주기도 하고 매일같이 찾아오는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에게 사랑도 받으니 다행인 일이다.

물론 고양이들이 가장 좋아하고 의지하는 건 스님들이겠지만.

고양이 시점에서도 그들과 잘 맞는 참가자들에게만 총총총 가서 스킨십을 시도하는데 안타깝게도 나는 그 대상에서 벗어난 듯했다. 옆에 앉아서 쓰다듬었더니 가 버리더라. 내가 심히 오해한 모양이다.

템플스테이 숙소를 베이스캠프 삼아 살고 있는 고양이들은 숙소 앞에서 늘어지게 잠을 잘 때도 담장 위에서 식빵을 굽기도 산책을 하며 사람 구경을 하기도 한다. 덕분에 템플스테이 참가자들만 실컷 고양이들을 보고 근처에서 "이리 와~" 손짓할 수 있다. 나름 용문사 템플스테이 참가자들의 특권인 셈이다.


할 수 있는 체험은 다 하는 1박 2일

템플스테이 유형은 체험형과 휴식형 크게 두 유형으로 나뉘는데, 성격상 이것저것 해야 하는 게 있는 체험형을 선호한다. 여덟 번의 템플스테이 경험이 있어 사찰에서 할 수 있는 새로운 경험은 거의 해 봤다고 생각했는데 아직 멀은 모양이다. 

호미로 잡초를 뽑아내고, 꽃밭에 꽃씨를 흩뿌리고, 자기 전에 모닥불을 피워 불멍하는 시간을 갖고, 스님과 요가를 하며 온몸의 근육이 다 울었다. 모두 처음이었다. 템플스테이 아니면 내가 언제 호미질을 하고(심지어 집에 호미도 없는데), 꽃밭을 가꾸고(안 죽이면 다행이지), 자기 전에 불멍을 하며(라이터도 무서워서 못 켠다), 스님과 요가를 할까(스님도 템플스테이 아니면 뵐 일이 없는데).

오후 3시에 입소해서 다음 날 11시에 퇴소하는 시간을 감안하면 24시간도 못 채우는 시간인데 그 안에 짧고 굵게 넓어지고 깊어지고 새로워진다. 

용문사 템플스테이는 탄력적으로 인풋을 넣는 방법이 될 수 있다.

사찰식 수제 피자도 먹어봤다. 심각하게 맛있어서 한판도 먹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정신적으로 너덜너덜한 상태로 입소한 템플스테이였는데 나올 때는 놀이공원 다녀온 사람처럼 신나는 기분이었다. 용문사에서 버스 정류장까지는 20분 정도 걸어야 하는데 그 시간 동안 좀 더 의지를 더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가기 전까지는 '아 이번 달은 그냥 쉬자' 놓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는데, 이제는 장거리 레이스를 잘 해내고 싶은 마음이다. 은행나무 앞 소원지에도 잘 되는 결과보다 끈기 있게 노력하는 태도를 갖게 해달라고 썼다. 그 태도만 온전히 내 것이 되면 꼭 부처님께 은행나무에게 소원을 빌지 않아도 언제든지 그리고 무엇이든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헌 마음을 용문사에 두고 새 마음을 받아 내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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