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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뚜벅이는 윤슬 Aug 16. 2023

여름의 대한민국을 보고 싶거든, 보령

보령에 가 보령?

 네이버가 매월 선정하는 이달의 국내여행 블로거로 선정됐다. 이쯤 되면 국내여행 경험이 평균 이상이라 생각해도 되지 않을까.... 하던 찰나 관둔다. 최근에 처음 가본 보령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이유는 모르겠다. 어떤 곳인지 스케치조차 불가해서 그랬던 걸까. 보령에 대해서는 배경지식이 없더라. 보성 아니고 보령? 누가 보령에 대해 물어보면 익숙한 보성을 말하며 되물을 뿐이었다.


이제야 알게 됐다. 보성은 대한민국 여름의 매력을 총집합해 보여주는 곳이다. 여름과 이보다 잘 어울릴 수가 없다. 특히 한국의 여름과.

평소 한국의 여름 풍경은 국보라 생각했다. 매년 점점 더 더워져 걱정되지만 그래서 뚜벅이 여행 난이도가 점점 더 높아지지만, 폭염에도 포기할 수 없는 한국 여름만의 색감과 선명함이 있다.

보령은 그런 매력을 유독 가득 품고 있는 곳이다.



심플하고 화려하게

심플하고 화려하게가 유일하게 적용될 수 있는 곳이 대한민국의 여름이다.

풀과 하늘만 있는 풍경은 분명 요소가 심플한데 시야는 화려하다. 불꽃놀이를 볼 때만큼 시야를 가득 채운다.

보령이 그랬다. 간이역답게 기찻길과 사람 네 명이 누우면 가득 찰 것 같은 소박한 역사가 전부였던 청소역은 '있는데요 없습니다' 유행어를 연상케 했다. 이름답게 말끔하게 치운 것 같은 역이었다(진짜 그 청소가 들어간 이름은 아니다).

어디부터 시작인지 모를 철로는 면보다는 선에 가깝다. 마치 색을 칠하지 않은 스케치 단계의 풍경화를 보는 것 같다. 그림 중에 에드워드 호퍼의 습작에 정신 못 차리는 사람에게 곡선과 수평으로 이루어진 철로의 선은 아름답고 마법 같다.

청소역을 둘러보는 데에는 오분이면 충분하다. 하지만 여행하는 데에는 삼십 분은 생각하는 게 좋다. 여백의 미가 시선을 붙잡아 시간을 자꾸 추가하게 될 테니.

알고 보니 SNS 인기 플레이스였던 우유창고 카페도 마찬가지다. 정확히 말하면 카페 일대가 맞는 지칭이겠다. 모두가 카페 음료와 우유갑 디자인의 건물에 시선을 둘 때 혼자 카페 주변의 논밭에 빠졌으니.

우유창고 카페 주변은 온통 초록빛 논밭이다. 누군가의 땀과 부지런함이 키운 작물들을 볼 수 있다. 나는 그것들의 색이 한국의 여름을 잘 보여준다 생각한다. 여름철 뜨거운 햇빛을 내내 받는 논밭의 초록색은 그냥 초록색과 엄연히 다른 색이다. 생명력이 느껴져 더 밝고 당당하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마음도 식물의 모습과 똑같아진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 그렇게 해낼 힘을 얻는다. 심플한 풍경이 마음을 화려하게 만든다. 시력이 2.0 이상으로 오를 것 같은 건 덤!


리틀포레스트의 현실

본래 때리고 부수는 액션 장르를 좋아하지만, 희귀하게 <리틀포레스트>를 아낀다. 그렇게 잔잔한 영화를 열 번 넘게 본 건 유일하다(사실 열 번까지 안 가도 두 번도 유일하다). 영화에는 한국의 사계절이 명확한 차이로 보이는데 그중 가장 좋아하는 분량은 여름이다. 매미가 종일 우는 농촌 속에서 땀 흘리며 농사일을 돕고 소리만 들어도 시원한 개울가에서 노는 장면들이 눈부시기 때문이다. 촬영지는 군위이지만 보령이 촬영지라고 해도 분위기만은 철석같이 믿게 될 정도로 리틀포레스트가 보령에 있었다. 영화 속 혜원이를 실제로 만날 수 있을 것 같은 풍경을 여행 내내 만났다.

초록초록한 풍경이 뜨거운 햇빛을 받아 한껏 밝아지고 뭉게구름이 그림처럼 기와지붕과 산에 붙은 풍경들은 찬란한 여름이라는 생각을 들게 했다. 거대한 그늘을 만드는 나무가 보이면 '나무가 사람을 지키는구나' 생각했다. 모든 게 생각을 하는 존재로 보였던 동화책 같은 보령. 보령이라는 책을 한 권 뿌듯하게 읽었다.

폭염경보가 앵앵 우는 날씨 속에서도 풍경에 감동할 수가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영화 리틀포레스트는 다른 영화보다 소리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소리가 내내 영화를 이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다. 요리하는 소리, 계곡물이 흐르는 소리, 마당을 쓰는 소리, 빗소리 등... 나에게 리틀포레스트는 음향이 유독 중요한 영화다. 

보령이 딱 그랬다. 청력이 매우 중요한 도시다. 선명하게 들을수록 보령을 더 선명하게 볼 수 있다. 매미가 맴맴 우는 소리가 여행 내내 따라오고 폭염 속에서 간간이 불어오는 바람에 잎이 부딪혀 사부작대는 소리, 시골 버스가 출발하는 소리 등 보령을 이루는 많은 것들이 소리로 존재감을 드러낸다. 그 소리가 평화롭다.


탄산이 있는 바다

그 유명한 보령머드축제가 한창이었던 때에 대천해수욕장을 찾았다. 

'나 빼고 다 보령이 익숙한가?'

해수욕장을 보고 든 첫 생각이다. 어찌나 사람이 많던지. 폭염경보가 무색했다. 강원도에 있는 유명 해수욕장들만큼이나 많은 사람들이 축제장에서 머드를 뒤집어쓰며 게임을 하고 있고, 모래사장에는 모래찜질하는 사람들과 튜브를 들고 다니는 사람들이 가득했다. 여름이었다.

물과 친하지 않아 바다는 눈으로 보는 거라 생각하는 쪽이다. 그렇다고 바다가 싫지는 않다. 가만히 보는 것만으로도 물에 뛰어드는 사람들만큼 큰 즐거움을 느끼기 때문이다. 때때로 일상 속에서 바다를 보고 싶어 한다. 그만큼 국내 여러 바다를 눈에 담았건만 아직도 새로운 바다를 만난다.

보령 바다는 탄산감이 있더라. 톡 쏘는 윤슬이 수면 위에 가득했다. 뛰어들지 않아서 그렇지 어쩌면 바닷속에도 빛나는 기포가 가득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정도로 하얗고 자잘한 것들이 바다에 잔뜩 묻어 있었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시원해졌다. 





해수욕장의 풍경을 봤을 때 이미 많은 사람들의 여름의 보령은 국가대표급이라는 걸 알고 있는 것 같지만, 그럼에도 나처럼 보령을 아직 가본 적이 없는 사람이 있다면 올여름이 그리고 더위가 지나기 전에 보령을 가보기를 권하고 싶다. 마땅치 않다면 내년 여름에라도. 보령은 뜨거운 여름이 참 잘 어울리는 곳이다. 특히 한국의 여름과는 더욱더. 대한민국의 여름을 만나고 싶다면 보령을 가는 게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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