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십 대까지의 나와 서른 살인 지금의 내가 크게 달라졌다고 느낄 때가 종종 있다. 같은 대화 혹은 상황 속에서 새까맣게 잊는 대목과 오래 기억에 남는 것이 달라졌다는 걸 인지할 때. 과거에는 위기라고 느꼈던 상황을 대수롭지 않게 넘길 수 있게 됐을 때. A 아니면 B를 빠르게 선택하고 이게 맞다며 확신할 때 달라졌음을 느낀다. 관심사의 폭이 몇 배로 넓어졌고 직접 해 보고 가본 경험도 늘었으니 어쩌면 당연한 거다. 그 과정 속에서 나와 잘 맞는 리듬과 취향도 터득했다.
저녁보다는 아침을 좋아하고
면보다 선에 아름다움을 느끼고
전자책보다는 종이책에 잘 집중하고
정답의 경계가 모호한 분야에 관심을 갖는 사람이라는 걸 이제는 잘 안다.
나에 대한 확신은 때때로 터닝 포인트가 된다.
에디터라는 직업으로의 결정
미술 작품을 경매로 사겠다는 목표
아침에 집중해야 하는 일을 배치하는 루틴 등.
순간순간의 행동과 마음을 바꿔 나 자체를 변화시킨다.
이건 모두 '사부작사부작'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평소 '사부작사부작'이라는 표현을 좋아한다. 눈에 띄지 않는 행동력이지만 한 겹 한 겹 쌓아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모습.
그리고 그게 내 방식이라 생각한다. 치열하거나 독하게 못 한다. 하고 싶은 건 많지만 스트레스에는 취약하다. '지더라도 하루하루 마음 편하고 행복하게'에 가깝다.
대신 성실하다. 스트레스받지 않을 정도의 계획과 약속을 어기지 않고 꾸준하게 이어간다. 한 번에 크게 쌓는 건 못해도 한 겹 한 겹 쌓아 완성을 향해 간다. 마치 패스츄리 혹은 크레이프 케이크처럼?
각종 서포터즈 경험을 쌓고 블로그를 약 칠 년간 운영하고 직장을 다니면서 사이드 프로젝트를 병행할 수 있었던 건 다 사부작사부작 노력한 덕분이라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책에 동질감을 느꼈다.
'아 나처럼 무리하지 않되 정성을 다하는 사람이 또 있구나'
이 책의 요약은 사부작사부작이다. 약을 먹을 정도로 깊은 우울감을 갖고 있는 작가가 그 속에서도 오늘과 내일을 위해 자신을 돌보는 소소한 노력들과 생각들이 담겨 있다. 작가가 꾸준히 쓰는 일기장 속 문장들에서 시작된 간결한 만화들은 더 선명하게 상상하게 만든다. 그렇게 더 와닿는 문장들이 많아진다.
출간됐던 해에 책을 구입했던 걸로 기억한다. 한 동안 읽고 또 읽었고 그렇게 한때의 인생책으로 자리 잡았다. 인생책이라는 타이틀이 무색하게 책장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어느 중고서점으로 입양을 보내졌지만.
그걸 사 년 만에 여행 중 들린 독립서점에서 만난 거다. 여전히 문장 하나하나가 생각을 대변해 주는 것 같았다. 내 생각을 좋은 문장력으로 풀면 이렇게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지금까지도 계속 생각한다. 아, 다시 그 책 살까. 괜히 보냈어.
메모1
한 달에 한 통씩 받아보는 편지도,
미리 끊어둔 비행기표도 있습니다.
저는 이런 것들을 '미리 심어둔 기쁨'이라 생각합니다.
미리 심어둔 이런저런 일들이 기쁨을 줄 거란 걸
알게 되어 어쩐지 뿌듯합니다.
기쁨을 심을 돈을 따로 빼두다 보면 조금은 숙련된 어른이 된 것도 같고요.
메모2
너무 잘하는 것보다 다음에도 또 할 수 있을 정도로만 잘하는 것이 더 좋은 듯하다.
완벽해지려고 하지 말고, 적당히 잘해야 한다.
다음에도 또 할 수 있는 것이 잘하는 것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메모3
타인의 마음을 받으며 살고 있다는 것, 그것을 마주할 때마다 '힘내서 잘 살아봐야겠다'란 생각이 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