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뚜벅이는 윤슬 Nov 04. 2019

그래 나는 길치가 아니었어

노잼시기를 벗어날 수 있었던 이유

이 글은 이전의 '노잼시기'를 지나온 지금 다시 뒤를 돌아 작성한 글이다.

따라서, 당시의 내가 쓴 글과는 다소 겹칠 수도 다른 말을 할 수도 있다.



평소에 길을 잘 찾는 편이다. 지도 앱만 있으면 곧잘 잘 찾아가는 편이고 한 번 가본 길은 대체로 기억해서 한 번만 주의 깊게 보면 그 뒤로는 그 길은 지도 없이 다닌다. 덕분에 어딘가를 찾아가는 것에 크게 어려움도, 잃어버렸을 때의 기분도 잘 모른다.

그리고 이건 인생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성격 탓인지 남들이라면 대체로 좌절하는 순간에도 나는 그 감정을 겪지 않았다. 예를 들면 시험에 떨어졌을 때 대체로 낙담한다면 나는 '뭐 경험이니까!'하고 기쁘게 넘긴달까. 그 성격 덕분인지 언제나 긍정적으로 앞을 내다봤고 정말 긍정적으로 생각하면 다 잘 되는 것인지 내가 하고 싶어 하는 것에 대해서는 시간은 오래 걸릴지라도 결국에는 얼추 이뤄내는 한해 한 해가 계속되어왔다. 그렇게 원하는 길은 그럭저럭 헤매지도 않고 잘 걷는 인생이었다. 나의 장점을 똑 닮은 인생이었다.




그런 내가 길을 잃어버렸다. 제대로 잃어버려 되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 내가 할 것이라고는 책상 위 먼지만큼도 생각하지 않았던 직무를 맡게 되더니 다시 0부터 시작하는 직원이 되어 웬만한 신입사원보다도 더 허우적거리게 되지를 않나. 잘 맞아 딱 붙어 다니고 싶다고 생각했던 사람과 틀어져 뒤에서는 서로를 욕할지도 모르는 사이가 되어버리지를 않나. 밖의 상황이 안 좋아져 나에게도 눈길을 돌려 취미에 집중했으나 이래저래 여건이 받쳐주지 않아 여행을 떠나는 빈도 수가 확연하게 줄었고 그 때문에 몇 년째 별 탈 없이 잘만 운영하던 여행 블로그는 올릴 소재가 없는 시간들이 쌓여 하락세를 보였다. 숫자만 보며 운영하던 블로그가 아니었는데 괜히 숫자에 내 블로그를 판단하게 되니 마음 한 구석에 늘 조바심을 달고 살게 되었다. 그런데 왜 안 좋은 일은 한 번에 찾아올까. 더 이상 어떤 순간에도 긍정적이던 나는 없었다. 매일 화가 났고 무언가를 걱정했고 어딘가에 잠시 떠나 있고 싶다는 생각을 안 한 날이 없었다. 이런 하루하루가 반년을 가볍게 넘기더니 3분기 내내 '아 그래 이 길이야!'라는 감도 없이 갈팡질팡만 하다 9월 말이 왔다.




허송세월 시간을 흘려보내는 날이 계속되는 와중에 한 여행 관련 행사에 참석했다. 당일 오전에도 갈까 말까를 고민했지만 그 자리는 자주 오지 않기 때문에 일단 갔다. 꼭 직접 뵙고 인사드리고 싶은 감사한 분도 있으니 그래도 가야지.

렇게 찾아간 행사 장소 앞에서 다른 분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는 그분을 볼 수 있었다. 직접 뵈니 그렇게 반가울 수가(물론 혼자).

낯가리는 와중에 더 친한 척하며 다가갔다.

"아하핳! 저한테 밥 사 준다고 하셨잖아요?"

"누구한테?"

"저한테요!"

"누군데요? 윤슬?"

"네!"

기억하지 못할 수도 있다고 생각했다. 워낙 많은 분들과 친분이 있는 인생을 확장하며 살아가는 분이기 때문에. 그런데 이럴 수가?

그분은 진심으로 저를 반가워하시며 몇 달 전에 내가 인스타그램으로 같은 비행기를 탔다고 단 댓글조차 기억하고 계셨다.

"발리 갔을 때 왜 말 안 거셨어요!?"

그분은 도움받은 것이 너무 많다며 자신의 도움이 필요한 일이 있으면 꼭 연락하라셨다.

그때는 살짝 긴장도 해서 기분을 몰랐지만 나중에 모임이 끝나고 생각해보니 어떤 꿈을 이뤄냈을 때의 기분처럼 믿기지도 않고 모든 것이 감사한 기분이었음을 알 수 있었다.

그 날 행사는 내 기분을 풀어주기 위한 행사였는지 마음을 울리는 직원분의 말도 있었다.

"하고 싶은 것이 있으면 도전하세요. 그게 여러분의 인생을 바꿀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자존감을 일으켜 세우던 누군가의 말.

"이 누나 블로그 진짜 잘 써."

"내 주변에 누나 블로그 보는 사람도 있더라고."




올해는 망했다고 생각했다. 이미 올해 체크하기는 어려움이 확정된 버킷리스트, 회복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는 내가 안고 있던 것들, 내가 배우는 것은 있는지-앞으로도 이걸 하는 게 맞는 것인지-의문투성이인 일들에 스스로 올해는 망했다며 주저앉았는데 주변 사람들은 나를 자랑스러워했고 반가워하며 악수를 청했다. 

그제야 알았다.

'아 나는 길치가 아니지!'

물론 그렇다고 고민했던 모든 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니지만, 그럼에도 다시 걷게 된 이유는 내 존재를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일 거다. 내가 이 길이 맞는지 스스로 답을 내리지 못할 때, 넌 길치가 아니라고 말해주는 사람들이 있어서.














매거진의 이전글 일할 때 살아있음을 느낀다는 아저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