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짜 퇴사를 했다 그리고 아팠다
퇴사를 한 지 2년 반이 지났다.
물론 20년 동안 직장인이었고 특히 홍보 대행사를 다니면서
퇴사는 많이 해봤다.
근데 이건 진짜다.
지금도 일은 하고 돈도 번다.
하지만 이젠 더 이상 매여서 일을 하지 않는다.
회사에 매여 있을 때는
퇴사를 하면 큰일 나는 줄 알았다.
회사를 다니며 일을 하고 돈을 버는 것이 힘들었지만 좋았다.
40대 중반이 되어 이렇게 일을 하는 것도 능력이 되니 다니는 거라고
자부심도 있었다.
하지만 나도, 직장인이 다 그렇듯이 사직서를 가슴에 품고 다녔다.
“부장으로 퇴사하면 어디에도 못 간다.”
“여기서 나가면 이런 일자리 못 구한다.”
“여기서 본부장도, 임원도 하고 해야지”
“애들도 있는데 맞벌이는 당연히 해야 하잖아”
그래서 너는 더 열심히 일해야 해~~~
힘들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회사에 충성해…
직원이 150명이 넘은 홍보 대행사 이사는
늘 퇴사를 생각하고 있는 나에게 종종 이런 얘기를 했다.
20년 동안 이직하며 퇴사하며 여러 회사를 다녔다.
결혼하고 아이 둘을 낳고
그러는 동안 대학원도 마쳤다.
쉼이 없었다
이직을 위해 한두 달은 쉰 적이 있다.
차오른 숨이 내 목을 막아버릴 것 같을 때
숨구멍이 닫히지 않을 정도의 쉼이었다.
사막으로 변해버린 가슴의 모래바람이 한숨으로 나오는 것처럼
늘 한숨을 달고 살았다
지금도 종종 한숨을 쉰다.
하지만 회사 다닐 때처럼 한숨 테러를 할 정도는 아니었다.
처음에는 그저 도움닫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퇴사 직전은 도움닫기고 뭐고 난 죽어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어
살기 위해 퇴사했다.
지는 것 같아 퇴사하기 싫었지만
불나방처럼 죽는 줄도 모르고 일하는 건 멈추고 싶었다.
그래서 퇴사를 했다.
퇴사를 했는데 억울했다.
퇴사를 했지만 주변을 보니 나는 왜 이러고 살았다 싶어 우울했다.
억울해서 우울했고 우울해서 그렇게 울었다.
퇴사 후 앓이가 시작됐다.
40대 중반, 늘 꿈꾸던 퇴사를 하면 즐거울 줄 알았다.
자유로울 줄 알았고, 하고 싶은 걸 마음껏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고기도 먹어본 놈이 맛을 알고 많이 먹는다고 했던가…
노는 법을 이렇게도 모르다니
늘 침대에서 잠만 자고 있다 때 되면 밥 차리고 애들 챙기는 무기력한 삶이 퇴사 후의 삶이라니…
퇴사를 해도 약 먹은 병아리처럼 비실거리다니…
즐겁게 살려고
아이 엄마들과 웃고 수다를 떨고, 힘을 내서 운동도 다녔지만
더욱 우울한 생각이 들었다.
20년 넘은 회사 생활의 묵은 피로와 무기력함을 털어내기에는 6개월은 턱없이 부족했다.
그리고 시간이 2~3년 지났다.
지금은 더 이상 우울하지 않다.
퇴사를 하고 치유의 시간이 필요했고 그 치유의 방법을 찾는 것도 쉽지 않았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어떻게 나를 찾아갈지, 어떻게 나를 바라볼지 그 시간들을 거치며 나를 치유해 나갔다.
내가 할 수 있는 즐거운 일을 내 의지로 하면서 시간들을 보냈다.
사소한 게 큰 힘이 됐다.
창고 청소하기, 옷장 정리하기, 물건 버리기, 된장찌개 맛있게 끓이기, 화분 키우기, 아이에게 책 읽어주기, 미드 정주행하기, 맛있는 와인 사기, 유튜브 보기, 영어 공부하기, 모히또 만들어 먹기 위해 애플민트 키우기, 홍보 컨설팅하기, 홍보 제안서 쓰기, 출장 가기, 보고서나 보도자료 쓰기, 홍보 행사 진행하면서 서울 여기저기 핫 스폿 다니기, 브런치 먹으며 수다 떨기, 수영 배우고 수영복 사기, 맛있는 과일 저렴하게 사기, 이불빨래하고 침대 정리하기, 아들 숙제 봐주기, 아들한테 뽀뽀하기, 딸 안아주기…
이젠 일을 더 하고 싶다. 열정과 욕심이 생긴다.
회사가 주어진 매출 목표와 고객사가 던져준 일이 아닌 나의 일을 찾고 싶다.
찾아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