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의 유머와 재치가 부럽다
새 학기가 되어 나이스 학부모앱(교육행정 정보 시스템)에 오랜만에 접속했다. 성적은 학교에서 성적표로 받아왔고 교과나 학종으로 입시를 준비하지 않아 세부특기사항이나 종합의견에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잘 접속하지 않았다. 오랜만에 접속해 2학년 종합의견을 쭉 읽어 내려가다가 중간쯤에서 깜짝 놀랐다.
뛰어난 끼와 재능을 바탕으로 춤을 잘 추며, 체육 행사에서 춤과 응원 활동을 통해 친구들과 함께 분위기를 고조시키는 역할을 함. 특히 줄다리기 참여를 통해 동료들과 협력하여 우수한 성과를 냈고, 친구들에게 큰 기운을 주는 모습을 보여 줌. 또한 그림 그리기에 뛰어난 재능을 보이며, 예술적인 감각이 매우 풍부함. 귀여운 캐릭터 그림을 그리는데 탁월한 능력을 보이며,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미침.
다리 불편한 아이 맞는 거야? 내 딸의 '행동특성 및 종합의견' 맞는 거야? 선생님은 아이를 잘 이해하고 계셨던 건가? 딸아이는 학교에서 이렇게 활발했나? 내가 왜 거짓말쟁이가 된 기분이지?
많은 생각이 들었다. 유머 있고 밝은 아이여서 아플 때도 엄마보다 더 강했고 의기소침해하지 않았다. 그래서 딸아이한테 고마웠다. 하지만 이건 내가 생각했던 것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작년에 가장 심하게 아파서 참 많이 힘들어했었는데 이것만 보면 아프지도 않고 체대 입시를 준비하는 아이 같다. 기죽지 않고 분위기를 이끌어 간다는 게 대단하긴 한데 참 당황스럽다.
아이가 춤을 잘 추지는 않지만 틱톡 챌린지 같은 간단한 춤을 친구들이랑 찍는 걸 좋아하고 가끔 보여 주곤 했다. 한 번은 동작 몇 개를 가르쳐줘서 나도 같이 춤추는 영상을 찍었다. 담임 선생님께선 때마침 이런 걸 보신 걸까?
조퇴나 결석 때문에 작년 담임 선생님과 통화하면 진짜 아픈 게 맞는지 몇 번이나 되물으셨다. 종합병원의 진단서를 재차 요구하시기도 하셨다. 지금 생각해 보면 안 아플 때는 누구보다 활발한 아이라서 갑자기 조퇴하고 결석했던 게 이상하셨던 것이다.
아픈 아이는 늘 얌전히 있어야 하는 건 아니다. 하지만 내 머릿속에 내 딸은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나 보다. 갑자기 아플 수 있으니 학교에서 돌아다니지 말고 가능한 앉아 있어라고 자주 말했다. 딸아이는 내 말대로 하지 않았다. 아플 때는 안 움직이려고 노력했겠지만 안 아프면 최대한 즐겁게 학교 생활을 했던 것이다. 모두가 재미와 즐거움을 좋아하지만 딸은 '재미', '즐거움'을 유독 중요하게 생각하긴 했다. 학교 생활, 친구, 선생님, 공부에도 재미와 즐거움이 한 스푼이라도 있어야, 잘하고 싶은 욕심이 생기는 아이다.
얼마 전에 딸아이가 학교 축구부 아이들과 친하다고 했다. 단짝 여자친구랑 등하교도 같이하고 급식도 같이 먹는데 남자도 축구부도 아닌데 어떻게 친하냐고 했더니 친했던 남자아이가 축구부이고 그 애 때문에 축구부 아이들이랑 다 친해졌다는 것이다. 새침하거나 가식 떨지 않아서 남자애들이 편하게 대한다고 했다.
내 딸이 말 받아치는 걸 잘하고 웃기긴 하지만 생각지도 못한 다양한 아이들이랑 친해서 좀 놀랐다.
차라리 사귀라고 했더니 사귈 마음도 없고 사귀면 피곤하고 재미없어진다고. 이렇게 편하게 지내야지 웃긴 애들이랑 같이 학교 생활 할 수 있어 지금이 좋다고 한다. 혹 사귀는데 거짓말하는 건 아닌지.. 의심도 해보지만 더 물어보진 않았다.
여중, 여고, 국문과(대부분 여자)를 나와 남사친은 대학동기 몇 명이 다였던 나와는 참 다르다. 친구들한테 인기 있는 딸이 가끔 부럽다. 엄마 아빠의 아주 작은 유머와 재치 DNA를 딸아이는 아주 강하게 물려받았다.
너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