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나의 일상

11월은 버티기, 버티기였다

가만히 집에서 쉬고 싶었다

by LYR

11월이 오기 전부터 폭풍이 오고 있는 것만 같았다.


하루하루를 간신히 버티는 딸아이를 바라보며 수능이 끝나고, 논술이 끝나기를 바랐다.

둘째의 첫 전문 대회를 잘 끝내고 김천에서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랐다.

아이들의 중요한 일정들이 끝나기를 하루하루 세며 버텼다.


남편은 회사일로 유독 바쁜 나날들을 보냈고 토요일은 물론 일요일까지도 출근했다.

초조하고 긴장되는 감정들이 꾸역꾸역 차서 그런지, 기운은 없고 늘 배가 고팠다. 하지만 먹고 싶은 게 없었고 밥을 먹어도 배가 부르지 않다. 배부르게 음식을 먹고 싶었지만 무엇을 먹어야 할지, 기운을 채워줄게 뭔지도 모른 체 늘 허기가 졌다.


수능전날, 딸보다 더 떨며 새우잠을 잤다. 새벽에 일어나 도시락 준비 후 남편과 함께 아이를 데려다주었다. 전날 확인했던 그 시험장으로 들여보내며 아프지 않고 무사히 시험을 치를 수 있기를 기도했다. 오후 6시가 넘어서야 아이는 지친 얼굴로 집으로 돌아왔다. 갑자기 통증이 심해지면 어쩌나 걱정이었는데 잘 끝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친정에서 보내주신 소고기를 구워 오랜만에 가족이 느긋한 저녁 식사를 했다. 남편과 함께 맥주도 한잔했다. 긴장이 조금씩 풀리더니 다음날부터 온몸이 아파왔다. 수능 최저를 못 맞춘 줄 알고 계획했던 논술도 치러 가지 않고 그 주를 마무리했다.(최저를 맞췄다는 걸 수능 성적표를 받고서 알게 됐다)


수능 다음 주는 첫째의 또 다른 논술도, 둘째의 대회도 있어 긴장을 놓을 수가 없었다. 주말 동안 수액을 맞고 기운을 다잡아 아들의 수영 대회 준비를 했다. 큰 아이의 논술 시험이 있어 이번 대회는 둘째와 둘이서 다녀와야 했다.


2박 3일 지낼 숙소를 체크하고 짐을 쌌다. 당일 출발 직전까지 챙기고 또 챙겼다. 이번처럼 큰 대회는 처음이라 신경 써야 할게 한두 가지가 아니었다. 수영용품, 영양제, 밥, 반찬, 구급약, 방한 용품, 여벌옷. 캐리어를 한가득 채웠지만 계속 챙길게 생겼다.


중간에 휴게소에서 아이의 점심을 챙겨주고 다시 달려 오후 워밍업 시간에 맞춰 도착했다. 다음날 새벽 5시에 일어나 바로 아침을 챙겨 먹이고 곧장 수영장으로 갔다. 첫 전문선수 대회라서 그런지 결과는 아쉬웠다. 5학년이라 6학년 형들에게 확실히 밀렸다.


아들은 생각보다 떨지 않고 컨디션도 좋았다. 하지만 내 에너지가 바닥이 났다는 신호가 왔다. 아무것도 안 하고 눕고만 싶었다. 경기를 마치고 숙소로 돌아와 아이를 혼자 남겨두고 가까운 병원을 찾아 나섰다. 수액이라도 맞지 않으면 여기서 못 일어날 것 같았다. 오후 훈련을 위해 김천 실내 수영장으로 또다시 이동했다. 훈련 후 이대로는 안될 것 같아 숙소에 드러누워 2시간 잠에 취했다. 배가 고프다는 아이가 저녁을 먹으러 가자며 흔들어 깨웠다. 오랜만에 배부르게 식사를 하고 다음날이면 경기가 끝난다는 생각에 좀 더 편한 마음으로 잠들 수 있었다.


새벽 워밍업을 하고 200미터 출전. 전날에 이어 이튿날도 결승에 진출하지 못했다. 예상한 결과이기도 하고 결승진출이 없어서 오전에 서울로 출발할 수 있어 홀가분했다. 당시엔 결승 진출도, 기록도 중요하지 않고 집에 가서 쉬고만 싶었다. 짐을 꾸려 자동차에 싣고 집으로 출발했다. 오전이라 막히지 않았고 중간에 휴게소도 들러 간식도 챙겨 먹었다.


곧 있으면 집에 도착한다.

집이 너무나 그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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