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의생은 드라마일 뿐
몇 년 전 중1 딸아이의 사춘기가 한창이었던 그때.
정신없이 일하는 나를 힘들게 하는 아이가 밉고 원망스럽고 못 마땅했다.
"엄마 아빠가 얼마나 열심히 일하고 너를 가르치고 키우는데
넌 이것밖에 못하니?"
노력하지 않고 고마워하지 않는 딸이 정말 꼴도 보기 싫을 때가 많았다.
딸은 딸대로 엄마가 끔찍하게 싫은지 눈을 마주치려 하지도 않았고
눈이 마주치면 날카로운 레이저를 눈으로 쏟아댔다.
사춘기가 오기 전 6학년 8월,
"엄마 한쪽 다리가 아파서 허리가 안 펴져"
2주 만에 아픈 다리가 나았다.
동네 정형외과에서 고관절에 물이 찼다는 것이다.
서로를 미워하던 중1 그 시기, 또 같은 다리가 아프단다.
회사 눈치 보며 아침에 병원 들렀다 부리나케 출근하며 2~3주가 지났다.
이번엔 시간이 지나도 아이 다리가 안 나았다.
뭔가 이상하다 싶어 가까운 대학병원으로 갔다.
회사 안식월 한 달을 쓸 수 있어 다행히 아이와 병원을 다닐 수 있었다.
소아 감염내과, 소아 정형외과, 영상의학과, 다시 소아정형외과, 일반 정형외과까지
몇 번을 다니며 피검사부터 시작해서 CT, MIR, 초음파 검사를 하고
결과를 기다리고 또 다른 과를 가고 돌고 돌고 많은 교수들을 만났다.
일주일씩 결과를 기다리는 그 시간이 얼마나 길던지.
결과를 기다리며 잠이 안 오는 날 밤이면
내가 딸에게 했던 어른답지 못했던 행동을 후회했고
사춘기와 아픈 다리를 이겨내고 있는 딸에게 미안했다.
잠을 설치며 딸아이를 걱정했던 엄마 마음을 아는지
가시같이 뾰족뾰족했던 아이도 조금씩 조금씩 부드러워졌다.
영상의학과, 소아 정형외과, 정형외과 교수들의 의견을 종합해
딸아이가 아픈 이유를 찾을 수 있었다.
우리 몸에서 가장 깊이 있는 고관절 신경 주위와 고관절 뼈 안의 정맥들이 뭉쳐있단다.
쉽게 말해 혈관이 덩어리처럼 부풀어올라 있고
압박이 가해지거나 혈관이 터지거나 하면서 다리가 아프다는 것이다.
아팠다 시간 지나면 또 나아지고 많이 걸으면 더 아플 거라고
그래서 많이 걷지 말고 뛰지도 말고, 운동도 하지 말라고 했다.
언제 아프고, 왜 갑자기 아픈지 명확히 이유를 설명해주진 않았다.
병명은 '정맥기형'이라는데 신경과 고관절 뼛속 혈관들이 문제라
수술이 안된다고 덧붙였다.
다리에 물이 찬 것도, 염증이 생긴 것도 아니었다.
생각했던 것보다 심각했다.
일반 정형외과에 배정되어 다음 검사와 진료 예약을 위해 담당교수를 만났다.
설명하는 내내 귀찮고 짜증 난다는 말투였다.
코로나가 한창인 그때 믿기지 않겠지만 그 병원에서 의사가 혼자만 마스크를 안 썼다.
코로나건 뭐건 자기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는 사람이라는 걸 NO마스크로 알 수 있었다.
이것저것 궁금해서 물어보고 싶었던,
내뱉지도 않은 내 질문들을,
얼음보다 차가운 말투로 단숨에 막아 버렸다.
예의나 격식 따윈 찾아볼 수 없게 나를 '보호자'도 '어머니'도 아닌
'엄마'라 부르며 딸아이가 듣고 있는 그 자리에서
"엄마, 방법이 없어요. 수술도 안되는데 괜히 수술해 준다는 다른 병원에 갔다가
걸음도 제대로 못 걸을 수 있어요. 아프면 응급실로 와요. 응급실 온다고 딱히 방법이 있는 건 아니에요"
어떻게 하라는 거지?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결과를 듣고 정신을 못 차리는 보호자와 아이에게
그렇게 무자비한 말을 한 그 의사.
그도 아픔을 느끼는 사람일까?
상처 난 아이와 내 마음에 칼을 꽂는 그 의사의 말들...
현실에서는 조정석과 유연석 같은 슬의생은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