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통제를 처방해 드릴게요

가장 절망적인 말 "해줄게 없어요"

by LYR

딸아이의 병이 믿기지 않고 믿고 싶지 않았다.

아닐 거야라며 혈관 전문, 고관절 쪽 유명하다는 전문의를 찾아보았다.


"그 의사쌤이 방법이 없다잖아"라며 다른 병원에 안 가겠다는 딸을 1년 동안 설득했다.

"서울에서 가장 큰 종합병원에 혈관센터가 있고 그 센터장이 유명하신 분 이래. 우리 한 번만 더 해보자"


병원을 옮길 때 필요한 서류 때문에 예전 병원 담당 교수를 찾았다.

다른 병원에 가도 방법이 없다고 말했을 텐데 굳이 옮기냐라며 우리를 나무랐다.


그래도 당신 같은 의사에게 우리 딸을 맡기고 싶지 않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지만

무시하고 돌아섰다.


'엄마가 원하니 한 번만 더 가줄게'라는 아이를 끌고 새로운 병원을 찾았다.


보호자인 우리 부부만 결과를 들으러 가는 날.

전날밤 잠을 설쳤고 침묵 속에서 병원을 찾았다.


"아픈 부위가 너무 깊게 있고 고관절 뼈와 신경, 허리까지 걸쳐 있어요.

뭉친 혈관들을 일부 제거하는 수술을 해볼 수도 있지만 또 생길 거라 굳이 수술 안 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너무 깊은 곳에 있어 수술도 힘들어요. 희귀병에 가까워서 병원에서 해줄 게 없어요."


숨죽이고 의사가 하는 말을 집중해서 듣고 있었는데,

뭐라도 방법을 찾아주길 바랐는데,

태어나서 가장 절망적인 말을 들을 줄이야.


"해줄 게 없어요"


이 말에 눈물이 터져버렸다.

분명 방법이 있을 거라는 간절함을 갖고 기다렸는데 희망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간절함과 희망을 갖고 찾아왔을 내 마음을 아는지 그 센터장은

"어머니 우셔도 괜찮아요. 궁금한 거 물어보세요 설명해 드릴게요"

센터장의 따뜻한 말이 나에게 위로가 되기에는,

정신을 차리고 궁금한 걸 물어보기에는

"해줄 게 없어요" 그 말이 너무나 절망적이라 그 아까운 시간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간신히 꺼낸 질문.

"그럼 아이가 갑자기 아프다고 하면 어떡해요?"

"진통제를 처방해 드릴게요. 많이 아플 때 먹이면 됩니다."


진통제라니.


집으로 오는 차 안에서 남편은 말없이 눈물을 삼켰고

"해줄 게 없어요" 이 말이 자꾸 떠올랐던 나는 흐르는 눈물을 닦고 또 닦았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이 말만 생각하면 가슴이 저리다.


늘 기운 없고 피곤해하는 엄마에게 돌이 지나고부터 내 딸은

언제나 힘을 주는,

힘이 넘쳐나는 굳센 아이였다.


가리는 것 없이 다 잘 먹고 잔병치레도 없었다.

인라인 스케이트, 자전거는 스스로 알아서 잘 탔고

농구, 수영도 배우며 늘 활동적인 진짜 씩씩한 아이였다.


그런 내 딸이 아프다고?

수술도 힘들고 어쩔 수 없이 이대로 살아야 한다고?

이런 딸을 엄마인 내가 그렇게도 미워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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