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집에 우렁각시가 산다

귀여운 우렁각시

by LYR

출근하는 날은 가끔 아침 먹은 설거지를 하지 않고 집을 나선다.


그날도 회사 갔다가 이른 퇴근을 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4시쯤 돌아오면 아이들이 가끔 나보다 먼저 집에 와 있기도 한다.

첫째는 학교 마치고 편안한 상태에서 잠깐 다리를 쉬게 하고

간단하게 이른 저녁을 먹으려고 집에 들른다.


지난주에도 이번주에도 몇 번

설거지를 하지 않고 출근을 했다.

한날은 아이들이 쓴 컵이며 그릇으로 설거지가 쌓여 있어야 할 싱크대가 깔끔했다.

빨래 건조기에서 꺼내 둔 빨래도 개어져 있었다.


'이 시간에 남편이 집에 들렀나?'


이제 고3이 되는 첫째가

"엄마는 우렁각시가 있어서 좋겠네?"

'내가 바로 우렁각시지'라는 표정으로 우렁각시가 된걸 스스로도 흐뭇해하며 말했다.


방에 빈컵 쌓아두지 마라

밥 먹은 그릇은 마르지 않게 물에 담가둬라

음식물 남은 채로 그릇 물에 담가두지 마라.

설거지 안 할 거면 식세기에라도 넣어둬라


잔소리를 해도 잘 안 듣는 애가

갑자기 설거지를 했다.

그것도 여러 번.


행주도 빨아 널어놓고

고무장갑도 물이 빠지게 집게로 걸어 두었다.

얼추 내가 하는 뒷정리까지 따라한 것 같아 입가에 미소가 번진다.


오늘 우렁각시는 아침에 내가 깎아둔 단감을 꺼내

아작아작 씹어 먹으며 퇴근해서 돌아온 엄마에게

시크하고 무심한 듯 쳐다보고 "다녀오셨어요?" 인사를 했다.


그리고 알아서 반찬을 꺼내 이른 저녁을 챙겨 먹고 스카(스터디카페)를 갔다.

가기 전 우렁각시에게 물었다.


"설거지 왜 하는 거야?"

"내가 먹은 그릇도 있고, 싱크대도 지저분하고 겸사겸사했어."

"엄마가 퇴근해서 오면 좋아할 것 같기도 하고~"

또다시 시크하고 무심한 듯 대답했다.

"그리고 설거지가 생각보다 힘들지 않았더라고. 그래서 오늘도 했어"

여전히 단감을 아작아작 먹으며 대답했다.


귀엽다.


지인의 고2 딸이 쌀을 씻어 밥을 안치고 세탁기를 돌린다는 말을 듣고

'공부하기도 힘들 텐데 고등학생한테 집안일을 시키는 건 너무하네'라고 생각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제 고3이 되는 내 딸이 종종 설거지를 한다.

물론 계속할지는 모르겠지만....


아프다고 아무것도 못하고 안 하는 아이가 될까 걱정했었는데

나도 모르게 첫째는 철이 들어가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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