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좋은 일이 생길까?
꽃기린에 꽃이 피면 기분이 좋다.
꽃을 피우는 식물들도 겨울이면 지게 마련인데
삭막한 겨울에도 꽃을 피우는 꽃기린이 나는 좋다.
꽃이 솟아 오른 모양이 기린을 닮았다고 해 꽃기린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데
기린을 닮았는지는 잘 모르겠다.
아주 작은 꽃 모양이 앙증맞긴 하지만
초록의 잎 사이로 보이는 새빨간 색(꽃처럼 보이지만 그 빨간색이 꽃이 아닌 포다).
빨갛디 빨간색은 나에게 생기를 넣어준다.
일과 사람들에게 치여 아무 말도 하기 싫고 어떤 소리도 듣고 싶지 않던 어느 날
멍하니 꽃을 보고 있었는데 조용히 나의 '힘듦'을 덜어 주었다.
꽃기린은 나의 반려 식물이다.
둘째가 네다섯 살 때쯤 어린이집인지 유치원인지 어딘가에서 받아왔다.
예전 집에서 키우다가 다섯 살 때 여기로 이사 왔으니 벌써 6~7년을 함께 했다.
첫 1년 동안 꽃기린은 꽃을 피우지 못했다.
꽃이 피는 줄도 몰랐는데 회사에서 만발한 꽃기린 꽃을 보고
꽃이 피는 식물인 줄 알았다.
1~2년이 지난 후 하나인지 두 개인지 꽃이 피었다.
'꽃이 피었어 피었다고'
얼마나 소중하고 기쁘던지.
그 후 꽃 피우기에 집중했다.
집이 저층이라 키 큰 나무들이 해를 많이 가렸던 것 같다.
해를 더 많이 볼 수 있게 블라인드를 끝까지 올리고
바닥에 늘여놓았던 화분들을 높은 선반 위로 옮겼다.
수십 개의 꽃들이 피어있던 회사 꽃기린에 비할바는 아니지만
3~4년 전부터 꽃이 좀 더 피기 시작했다.
그러다 올해 훌쩍 키가 커버린 꽃기린.
'그냥 두면 좁은 화분에서 살아남기에 바빠 꽃이 덜 피겠지?'
반려 식물이 된 후 두 번째 분갈이를 했다.
새 흙을 충분히 담은 큰 화분으로 옮겨 심었고
줄기를 잘라 새로운 화분에 옮겨 심었는데 새끼 꽃기린도 다행히 조금씩 컸다.
그전까지는 몇 개를 피우는지 매번 샜지만
분갈이를 해서 그런지 이번에는 샐 수 없이 폈다.
그러다 늦여름부터 꽃이 떨어지기 시작하더니
가을이 꽃기린 꽃을 다 가져가버렸다.
이번 가을 겨우 2~3개 새로 핀 꽃도 영 시원찮다.
요 몇 주 가을 해가 좋았다.
'이때를 놓치지 말아야지'
겨울에도 새빨간 꽃기린을 보고 싶어
햇빛, 물, 바람 삼박자가 잘 맞게 정성을 쏟았다.
작고 노란 봉우리가 생기더니
초록 잎 사이로 더 선명하게 보이는 새빨간 색 꽃이 하나둘 보이기 시작했다.
빨간색은 포라지만 나에겐 꽃이다.
꽃이 잘 안 피다가 꽃이 필 때면 항상 좋은 일이 생겼다.
이 집에서 나만 아는 비밀이다.
관심이 있을까 싶지만 이건 비밀로 간직하고 싶다.
추운 겨울이 오기 전 꽃기린에게 정성을 다해야겠다.
더 많은 꽃이 피면
더 좋은 일이 생길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