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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나이를 묻지 마세요...!

by 여름나무

“이게 몇 개야?”

달콤 말랑한 케이크에 빈 공간이 별로 없이 초가 빽빽하다.

내 나이 벌써 50 하고도 몇 해가 더 지났다.

이제 한 달에 한 번씩 염색을 하지 않으면 지나가는 꼬맹이가 할머니라고 불러도 억울해 할 수 없다.


나이 들면서 원하는 나의 모습이 있다.

기품 있고 생동감 넘치게 늙고 싶다.

젊어 보인다는 건 덜 늙어 보인다는 말처럼 들린다.

이런 말에 살짝 뾰족해지는 거 보면 나이 드는 게 아직 어색한 철없는 50대다.

빈 말에 현혹되기보다는 건강해 보인다는 덕담에 안도하고 싶다.

하지만 기품 있게 늙고 싶은 마음을 방해하는 건 이 잘난 입이다.

생각을 여러 번 하고 말하고 싶지만, 나의 생뚱맞은 말은 뇌를 훅 지나쳐서 이미 입을 떠나버릴 때가 있다.

하다못해 백해무익한 담배도 필터가 3할인데...

나도 가끔은 입에 필터를 장착하고 싶다.

어느 때는 입 밖으로 허락 없이 튕겨져 나가 버린 말 때문에 집에서 혼자 끙끙거리며 생각에 생각을 보태어 골머리를 앓은 적도 있다.

나이 들면 입은 닫고 지갑은 열어야 한다는 어느 선배의 우스갯 말이 생각난다.

다행히 태생이 짠순이와는 거리가 있어서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시간에 지갑을 여는 건 행복하다.

하지만 입을 닫는 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입술 끝에서 과감히 튕겨져 나갈 때가 있다.

아무래도 나이 들면서 제어기능이 점점 흐릿해지나 보다.

앞으로 다가올 60대와 70대가 불안하다.

운이 아주 나빠 100세를 넘기게 된다면 난 아마 주책바가지 할망구가 되어 있을 수도 있다.


나의 내면이 조금 덜 부끄럽다고 여겨지면 나에겐 하고 싶은 일이 있다.

시설에 있는 아이들에게 동화책을 재밌게 읽어주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엉덩이가 배기는 노랑색 작은 나무의자에 둘러앉아 호랑이나 늑대 울음소리도 흉내 내며 읽어주는 멋진 이야기꾼 할머니이고 싶다.

아이들의 초롱하고 맑은 눈빛을 보면 절로 행복해질 것 같다.

내손에 들린 간식봉지가 더 기다려질 수도 있겠지만, 그 또한 귀엽고 사랑스러울 듯하다.


어느 유튜버의 말이 생각난다.

화를 내는 것도 습관이고, 화를 안 내는 것도 습관이란다.

나는 좀 더 온화해지기 위해 오늘도 끓어오르는 화를 몇 번이나 참았다.

이러다 되레 화병이 날까 걱정이지만, 설마.

갱년기 탓으로 돌리며 가부좌를 틀고 앉아 손을 모았다.

찰나의 시간만이 지났다.

고개가 툭 떨어진다. 아! 졸립다.

‘명상은 잠깐 쉬었다 해야지!’ 저린 발을 절뚝거리며 김치냉장고에 잠재워놓은 시원한 맥주캔과 과자 부스러기를 주섬주섬 가져왔다.

지난주에 못 본 주말 드라마를 본다.

진한 오렌지색 노을이 멀리 북한산을 덮었다.

곧 어둠이 노을을 지우겠지...

서늘해진 밤공기에 가을바람이 묻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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