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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흰이슬 Sep 08. 2022

거부할 수 없는 요구, 거절하고 싶은 욕구

ㄱ(기억) 받침 하나 달라졌을 뿐인데, 억양의 강도가 확연히 다르다. 소리 내어 발음해보라. '요구와 욕구.'

요구는 발음 그대로 [요구]이지만, 욕구는 [욕꾸]가 된다. 무슨 일을 바란다는 욕구의 뜻처럼이나 발음의 소리 또한 힘주어 발음하게 된다.



이처럼 사람들은 무엇을 간절히 바라며 욕구를 충족하기 위해 무진 애를 쓰며 산다. 그 과정에서 자신도 모르게 몸은 긴장한다. 긴장한 탓에 근육들은 뭉치고 이런 현상이 반복되면 통증을 호소하기에 이른다.



나는 또 한 번 산마루를 올라야 하는 상황과 직면했다.

산 정상에 다 왔겠거니 했는데, 저 멀리 고개 하나가 그 모습을 드러낸다. 털썩 주저앉으며 등반을 거절하고 싶은 욕구[욕꾸]가 올라왔다. 힘주었고 긴장했다.






의료계에서 정한 유방암 환자의 표준 치료는

<수술 - 항암 - 방사선> 또는 암의 크기가 클 경우 순서만 달리하여 <항암 - 수술 - 방사선>으로 진행한다. 나는 후자로 치료를 진행했다.



무사히 수술도 끝냈으니 이제 방사선 치료만 하면 끝난다는 생각과 동시에 그동안 누리지 못했던 소박한 일상 속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니 날뛰듯 기뻤다. 너무 가볍게 생각했다. 내게 찾아온 암은 그리 가벼운 암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수술 퇴원을 하고 그로부터 2주 뒤 외래 진료를 보러 다시 병원을 찾았다. 그동안 CT와 MRI 상에서 보였던 그 암을 드디어 수술로 떼어냈으니 육안으로 확인된 암에 대한 정확한 조직검사 결과가 나온 것이다.



진료 대기실에서 1시간을 넘게 기다리고 있을 무렵 내 이름이 호명되었다. 진료실로 들어가 간호사의 지시에 따라 베드에 누운 후 교수를 기다렸다. 15분가량 흘렀을까.

교수가 왔고 내 수술 부위를 보면서 말했다.



'잘 아물고 있어요. 큰 수술이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회복 중이네요.' 

수술 부위가 찌릿찌릿, 욱신거린다는 나의 말에 교수는

'수술을 했으니 당연히 그 부위가 아픈 건 맞아요.'

그러고 나서 간단한 처치 후 자리에 앉아 결과를 마저 들었다.



수술 후 떼어 낸 조직검사 최종 결과에 대한 설명이 이어졌다.

- 원발암 크기 3.4cm

- 삼중음성(원인불명) 유방암

여기까지는 수술 전 검사 결과와 일치했다.



수술 전에는 겨드랑이 림프 전이는 보이지 않는다는 소견이었다. 그러나 수술 후 겨드랑이 림프에도 암이 있었다고 했다.

총 23개의 림프를 떼어냈는데, 그 결과 7개 림프 전이가 발견되었고, 그중 5개는 내유 림프(양측 유방의 가운데 골), 2개는 겨드랑이 림프에서 나왔다는 것.



내유 림프절에서 암이 다발성으로 5개나 있었다니...

내유 림프 수술을 하지 않았을 경우를 생각하니까 오금이 저릴 정도였다. 더 늦었다면 림프를 따라 타 장기로 전이되었을 수도 있으니 말이다.



그리고 교수는 설명을 더했다.


'결과적으로 수술로 암을 떼어내 지금은 육안 상 보이는 암은 더 이상 없습니다. 다만, 환자의 경우 항암으로 암이 조금 줄긴 했지만 결국 암이 남아있었고(이런 상태를 잔여 암이라고 일컫는다), 크기도 컸기 때문에 항암을 한번 더 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어떤 항암제를 쓸지는 종양내과 교수와 상의하시고, 진료 날짜 잡아드릴게요.'



남편은 항암을 또 해야 하는 연유에 대해 물었다. 이에 교수는 친절하게 다시 말했다.


'임상 연구 결과 삼중음성 유방암 중에서 암의 크기가 크고 전이가 있던 젊은 여성의 경우 먹는 항암제를 쓴 실험군이 재발 방지에 효과가 좋았어요.'



항암제를 한번 더 쓸 것을 청하는 거부할 수 없는 요구에 거절하고 싶은 욕구가 풍선처럼 부풀었다. '많은 환자들의 임상 실험으로 거쳐갔을 결과값이니 믿고 따르자.' 하면서도 한번 경험한 이상 두 번 다시 항암 하고 싶지 않았다.






어깨의 근육이 뻣뻣하게 경직된 상태로 연달아 잡은 진료를 보게 되었다. 그 진료는 산부인과였다. 출산 이후 몇 개월이 지났음에도 생리를 하지 않았다. 항암도 끝났으니 이쯤 되면 돌아와야 할 기능이 제기능을 하지 못하자 산부인과 진료를 급히 잡았다.



죽음에 당면한 심정으로 보낸 하루하루들, 그저 암 덩어리에 대한 생각만 사로잡혔었다. 이런 일을 겪기 전까지만 해도 몇 년 후 둘째를 계획해야지 했었는데, 항암을 목전에 두고 그런 여유로운 생각을 할 겨를이 없었다.



당장의 출산, 암 치료만으로도 버거웠기 때문이다. 지금 와 돌이켜 항암 시작 전에 교수가 내게 난소 보존 여부를 물었는지 묻지 않았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정도다. 묻지 않았다는 것에 기억이 조금 더 선명하지만 누구 탓을 하기 어려운 건 그 당시 난 제정신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정신을 차리고 보니 나의 난소는 망가졌다.



한편 산부인과 진료 내용은 예상을 벗어나지 못했다. 채혈 검사 결과 40대 후반의 난소 상태라는 것. 난소 보호 주사제를 이제 와서 맞는 것조차 의미 없다고 했다. 조기 폐경이었다.



여성을 상징하는 신체 기능, 유방과 생리. 그 두 가지를 모두 잃었다. 여성이 아닌 한 인간으로서 오래 건강하게 사는 것이 중요하다지만 삶에는 여러 가지 역할이 부여되기 마련이다. 남편은 한 명의 아이에게 잘해주면 되고 자신은 괜찮으니 너무 우울해하지 말라고 했지만 어딘가 모르게 의기소침했다.



산부인과 교수는 조기 폐경으로 인해 앞으로 소실될 근육을 보충해야 한다고 했다. 칼슘과 비타민D가 포함된 ‘디카 맥스’ 약을 꾸준히 복용해야 한다고 했다. 지금도 약이 너무 많은데 약은 또 추가된 셈이다. 이 많은 약들을 복용해야 한다는 사실에 또다시 속이 메스꺼웠다.



이날 하루, 연타로 강펀치를 맞았다.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욕구가 올라오면서 나의 몸은 더 경직되었다. 싫은 건 싫은 거니까 애써 스스로를 다독거리지도 않았다.






한 차례의 폭풍우가 거세게 지나갔다. 그로부터 몇 주 뒤 항암제를 쓰기 위해 종양내과를 다시 찾았다. 어떤 말을 들을 지 이미 알고 있는 탓에 지난 진료 때보다 긴장은 덜 했지만 여전히 거북했다. 병원 주차장에 다다를 때쯤 절정이었다. 두 손을 맞잡고 눈을 감고 입으로 중얼중얼 거리며 기도했다.



진료 시간을 엄수하고 종양내과 의자에 앉아 차례를 기다렸다. 코로나 신규 확진 숫자가 무색하리만큼 진료 대기실에 사람들로 넘쳐났다. 어지러운 인파 속에서 마음을 가다듬기 위해 필사적 방법으로 다시 기도했다.



이미 알고 있는 결과에 기도빨은 크게 통하지 않았다. 지난 유방외과 교수가 말한 내용과 비슷했지만 종양내과 교수의 어조는 다소 무뚝뚝했다.


‘선 항암을 했지만 효과가 미미했네요? 암 크기가 많이 줄어들지 않은 상태로 수술을 했는데 삼중음성(원인불명) 유방암은 항암으로 크기가 많이 줄었어야 재발률이 낮습니다. 수술을 했으니까 지금은 암이 없는 상태이겠지만 공격성이 강한 암이라서 재발 확률이 높겠네요. 추가 항암으로 쓸 '젤로다' 경구 항암제는 재발을 낮추기 위한 보조적 치료입니다. 또한 임상 연구에 대상이 되는지는 면밀히 검토가 필요해서 그건 별도로 연락드려요’



진료가 끝난 후 부작용에 대한 설명과 영양 교육은 교육실에서 별도로 설명을 들었다. 아직 남아있는 기존 항암제를 몸에서 배출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 중이었는데, 교육을 들으며 항암을 다시 시작한다는 생각에 속이 메스꺼웠다.



결정된 보조 항암제는 '젤로다'라는 것이고 총 8차의 과정, 기간은 6개월이다. 이 항암제가 내 몸에는 다시 어떠한 결과를 가져다줄까? 처음에 했던 항암 성분보다는 조금 약하다고 했다. 하지만 항암제 특성상 무엇이 됐건 부작용을 피할 수 없는 노릇이다. 부작용에 대비하는 것이 차선책임을 알고 있다. 결국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부작용에 대해 검색하며 요구대로 이 모든 것을 받아들였다.






'힘쎈여자 도봉순' 드라마의 내용 중에서 인상 깊었던 장면이 그 순간 내게 힘이 되었다.

도봉순 엄마는 엄청난 괴력을 잃고 보통 사람들처럼 살아가게 된다. 힘의 대를 이어받은 봉순이 또한 힘을 잃고 살아가게 되는 순간이 온다. 낙담하며 봉순이가 엄마는 힘을 잃었을 때 어떤 심정이었느냐고 묻는다. 도봉순 엄마는 딸에게 이런 말을 한다.



봉순아 괜찮아. 금방 적응할 거야.
그렇게 또 살아지더라. 남들 살아지는 것처럼 그렇게 있다 없으면 불편하고 허전하고 한동안은 그래. 근데 엄마가 힘 빠지고 제일 먼저 한 게 뭔지 알아?
역기 들었어. 제일 가벼운 거부터 다시. 늘 해오던 거 일상으로 돌아가던 거였어. 아무렇지도 않은 척하고 그러면 또 그렇게 살아지더라고. 남들 사는 것처럼.

힘쎈여자 도봉순 14화 中 일부

 


재발 방지를 위한 사후 치료를 지금 할 수 있는 것에 감사하자. 남들처럼 나의 하루를 더 살아갈 수 있게 기회를 주시는 거니까. 이렇게 된 데에는 다 뜻이 있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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