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둘 카페나 식당 입구 노 키즈존이 생겼다. 반대로 키즈 카페나 키즈 펜션이 활발하다.
아이를 받아주는 곳과 받아주지 않는 곳, 수요가 있는 층에 우선한 사업 아이템이다. 이런 사업 형국이 꼭 아이들에게만 국한된 것은 아니지만 아이들이 맘껏 뛰어 놀기 위한 장소로 돈을 쓰기 위해서는 노 키즈가 아닌 곳을 찾아다녀야 한다.
직장에서도 그랬다. 미혼 여성 또는 결혼은 했어도 아이는 없는 여성과 아이 있는 여성 사이에 보이지 않는 가느다란 선이 있었다. 앞에서는 웃으며 이야기할지라도 어떤 일로 인해 그 선은 툭하고 끊어질 수 있는 아주 가느다란 선이었다. 공감은 어렵고 이해는 부족해 서로 이기적이라고 뒤에서 수군거렸다.
엄마의 역할까지 해야 하는 직원은 나라에서 행하는 제도를 눈치가 보여도 뚝심 있게 사용해야 한다. 반면, 아이 없는 직원은 그 제도를 쓰지 못하니 상대 직원이 육아휴직이나 돌봄 휴가를 쓰는 것이 못내 미덥다.
각자가 처한 입장이 아니라면, 상대를 존중하기란 쉽지 않다. 나도 그랬으니 할 말은 없다. 일은 많은데, 누구는 아이가 있어서 조기 퇴근하고 남은 사람들끼리 그 일까지 떠맡아야 했으니... 일을 더 맡는 것 같아 싫었다. 더군다나 대화의 소재조차 아이 이야기면 계속 듣기 지루했다. 아이란 낳아보기 전까지 그런 존재였다. 이쁘긴 한데, 공감하긴 어려운.
'일단 내가! 무조건 나부터 중요하다고!'
그랬던 나였기에 카페와 식당에 노 키즈존이 떡하니 부쳐있어도 내 일 아니라 그리 눈여겨보지 못했다.
방사선을 받으러 가는 어느 날들 중 한 날이었다. 방사선은 총 23회였고 주 5회 매일 병원을 가야 했다. 주말 뺀 꽉 채운 한 달을 방사선 치료에다가 힘을 쏟아붓는 중이었다.
방사선 초기 즈음이었다. 방사선 치료 환자가 너무 많아서 7-8회 횟수까지는 밤 10시 예약이었다.
방사 치료는 고작 15분인데, 병원까지 가는 시간은 한 시간, 왕복 두 시간이다. 게다가 어두운 밤에 병원을 가야 하니 치료를 받고 집에 오면 밤 열한 시가 되어 피곤했다.
대신 늦은 밤 병원은 조용하고 한적했다. 주차할 공간도 넉넉했다. 덕분에 북적대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다니지 않아도 되어서 마음은 편했다. 남편이 운전을 해서 함께 다녔는데 우리는 그 시간 차 안에서 야밤의 데이트를 즐긴다 생각했다.
그날도 여느 때와 다름없는 그런 날이었다. 지하 1층 주차를 하고 방사선 치료실도 지하 1층에 있어서 동선에 막힘이 없었다. 눈감고 갈 정도로 슝슝.
남편과 실없는 말들을 주거니 받거니, 웃으며 치료실로 향하던 길이었다. 반대편 방향에서 오는 한 아이가 보였다. 그리고 나와 스쳐 지나갔다. 그 교차 지점에서 나는 눈물이 맺혔다.
아이는 휠체어를 타고 있었고 기계를 달고 있었다. 그 기계는 내가 항암 했던 기계와 동일했다. 항암 중이구나, 생각한 또 하나의 이유는 탈모였기 때문. 아이는 시선을 위로 고정한 채 휠체어를 끌어주는 엄마에게 뭐라 뭐라 재잘대며 웃고 있었다. 가늠하건대 나이는 초등학생 1-2학년 정도로 보였다.
내가 본 아이의 모습은 그 정도였다. 찰나에 치료를 받으러 가던 환자에서 엄마의 마음으로 바뀌어 그 아이를 스쳤다. 병원에 올 때마다 보는 환자들 중 유달리 어린아이들은 마음이 쓰인다. 가장 보고 싶지 않다. 환자 고통은 연령 불문이지만 주삿바늘이 여기저기 꽂혀있는 아이들을 보고 있으면 애달프다. 아이들도 아픈 것에 만성이 되어 울어도 되는데 울지 않는 모습은 더 속이 쓰라린다. 다 큰 성인도 이렇게나 치료가 버거운데 맑은 아이들의 마음이 얼마나 힘겨울지, 부모는 가슴이 얼마나 찢어질지.
입구에서 출입증을 찍고 온도 체크를 하면서 눈물을 훔쳤다. 남편에게 지나가던 아이를 보았냐고, 마음이 너무 아프다고 했더니 남편도 비슷한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비록 나의 눈에 비친 아이는 슬퍼 보였을지라도 그날 하루 아이는 더없이 행복한 날이었을 수 있다. 아프다고 꼭 슬픈 날만 있는 건 아니니까. 그래서 행복한 하루였기를 바랬고 아이를 위해 진심으로 기도했다.
금방 나을 수 있기를.
넓은 세상을 더 많이 볼 수 있기를.
삶은 배우다 가는 거라고 누군가 말했다. 누구에게나 상실의 경험은 다양하다. 누군가를 꼭 잃어야만 상실이 아니다. 병을 얻는 것도 상실이고 취업에, 사업에 실패해도 상실이다. 상실을 겪게 되면 혹독하게 치러야 할 과정이 크지만 그만큼 가져다주는 가르침이 많다.
그동안 나는 내가 겪은 것이 아닌 이상 안타깝긴 하지만 상대를 위한 눈물이 많지 않았다. 공감 못하는 영역들이 많았다는 소리다. 여전히 그대로인 모습도 있지만 이제는 조금씩 타인이 보인다.
아이를 낳고 부모의 마음이 되어보니 알겠고,
아파보니 아픈 이들의 마음을 알겠다. 지금은 마주치는 나와 타인을 동시에 품는다. 그리고 아이, 그들, 누군가를 위해 기도한다. 특히 자라나는 꿈나무들이 아프지 않기를 기도한다.
한편, 눈물을 닦고 결연히 치료실로 들어섰다.